[정비록] 신탁사 위법 논란에 여의도한양 재건축 표류하나

정영희 기자 2023. 11. 13. 10:3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탁이라 믿고 맡겼는데"… 한양 주민, KB신탁 상대 소송 예고

[편집자주][정비록]은 '도시정비사업 기록'의 줄임말입니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해당 조합과 지역 주민들은 물론, 건설업계에도 중요한 이슈입니다. 도시정비계획은 신규 분양을 위한 사업 투자뿐 아니라 부동산 시장의 방향성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현장을 직접 찾아 낡은 집을 새집으로 바꿔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겠습니다.

여의도 1호 재건축 단지로 꼽히는 영등포 여의도한양 아파트 전경./사진=정영희 기자
서울 시내 재건축 사업장마다 조합과 시공사 간 크고 작은 마찰이 끊이질 않는다. 여러 재건축 대상 단지들이 몰려있는 여의도 역시 바람 잘 날이 없다. 서울시가 지난 5월 '한국판 월스트리트' 조성을 청사진으로 하는 '여의도 금융중심 지구단위계획'을 통해 높이 제한을 해제하고 파격적인 용적률 인센티브를 제공한다고 발표한 이후 가장 핫한 지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여의도 소재 아파트들은 1967년 개발계획에 따라 1970년대 세워진 노후 단지들이 대부분이다. 재건축 시점이 한참 지났지만 높은 용적률과 계속 바뀌는 서울시 정책에 발이 묶여 지지부진했던 사업은 올 초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올해로 입주 52년이 된 최고령 시범아파트는 지난 10월 재건축 신속통합기획안을 확정했고 인근 공작, 목화, 미성아파트도 단계를 밟아가고 있다. 하지만 가장 먼저 재건축의 길을 나섰던 한양아파트는 서울시의 시정 조치를 계기로 사업에 급제동이 걸렸다.


"절차 위반" 서울시 권고에 시공사 선정 총회 엎어져


지난 11월6일 찾은 여의도 한양아파트. 1975년 준공된 12층짜리 아파트는 군데군데 도색이 벗겨졌고 벽면에 실금이 보였다. 리모델링을 하지 않은 가구는 외풍을 막기도 어려울 것 같았다. 부족한 주차공간 탓에 단지 내 통행로가 막혀 있을 정도다. 주변에 더현대서울, 파크원, IFC 등 고층 오피스빌딩이 밀집한 것과 상반된 모습이었다.

서울시는 지난 1월 이 아파트를 국제금융 특화 주거단지로 재건축한다는 내용의 신통기획을 확정했다. 현재 588가구가 최고 층수 54층의 아파트 956가구와 오피스텔 210실 규모로 거듭날 예정이다. 서울시가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을 최종 확정하며 도입한 '비욘드 조닝'이 적용된 첫 타자인 만큼 유연한 도시계획을 통해 융복합 도시공간을 조성한다는 취지에 맞게 용적률 600%라는 인센티브가 제공됐다.

이 단지는 2017년 6월 재건축 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고 조건부 재건축을 확정했다. 여의도 한양 재건축추진운영위원회(이하 '운영위')는 이듬해 6월 KB부동산신탁(이하 KB신탁)을 시행사로 선정했다.

원활히 진행되던 재건축은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멈췄다. 지난 10월19일 서울시가 영등포구청에 시공사 선정 추진 과정에서 발견된 위법사항을 시정조치토록 한 것이 계기가 됐다. 서울시는 사업시행자인 KB신탁이 시공사를 선정하며 권한이 없는 단지 내 한양상가 부지를 사업 면적에 포함한 점을 문제 삼았다. 1485㎡ 규모의 한양상가는 롯데쇼핑이 단일 소유주로 롯데마트를 운영하고 있다. 롯데마트는 KB신탁을 재건축 사업 시행자로 선정하는데 동의하지 않아 사업 부지에서 빠졌다. KB신탁은 시공사 선정을 위한 입찰 공고를 내면서 동의를 받지 못한 상가를 구역에 포함시켰다.
영등포 여의도한양 아파트는 1975년 지어져 올해로 준공 49년 차를 맞은 노후 단지다./사진=정영희 기자
정비계획 내용을 따르지 않고 시공사 입찰을 공고한 사실도 지적 대상이 됐다. 신통기획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현재 3종 일반주거지역인 용도지역이 일반상업지역으로 상향돼야 재건축 시 용적률 600%를 적용받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선 토지 등 소유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 정비계획을 확정해야 한다. KB신탁은 정비계획이 정해지기도 전에 시공사를 선정했다는 게 서울시 판단이다.

시정 지시에도 시공자 선정 절차를 강행하면 법적 절차에 나서겠다는 엄포에 KB신탁과 운영위는 당초 10월29일로 예정된 시공사 선정 총회를 무기한 연기했다. 권고를 무시하고 시공사를 선정했다가 결의 무효가 되면 소송전이 불가피하고 이 경우 사업이 크게 지연돼 더 큰 손해가 예상되기 때문. 시행자 측은 서울시 주장과 달리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입장이다.

KB신탁 관계자는 "서울시 판단에 대해 법률 검토를 진행했으나 관련법을 위반했다고 보긴 어렵다는 의견을 받았다"며 "최대한 분쟁 없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운영위, 영등포구청 시공사 선정 재개를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 결정된 건 없다"고 설명했다.


경쟁자에서 '낙동강 오리알' 된 현대건설·포스코이앤씨


시공권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던 현대건설과 포스코이앤씨는 KB신탁과 운영위 결정만 애타게 기다리게 됐다. 여의도 한양은 국제금융로를 중심으로 여의도 주요 업무지구와 인접해 있고 도보 거리에 학군이 형성돼 있으며 한강공원도 가깝다. 여의도 1호 재건축 단지라는 상징성까지 있다 보니 두 건설업체는 수주를 위해 적잖은 공을 들였다.

현대건설은 하이엔드 오피스텔 분양을 통해 개발이익을 극대화함으로써 소유주에게 최소 3억6000만원 이상을 환급하겠다는 파격 제안을 했다. 동일 주택형 입주 시 모든 소유주가 분담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했다. 미분양 발생 시 준공 시점의 감정평가액이 아닌 최초 일반분양가로 현대건설이 대물 인수하겠다는 조건도 내걸었다.

포스코이앤씨는 현대건설(3.3㎡당 823만원)보다 낮은 공사비(3.3㎡당 797만원)를 내결었다. 소유주 부담을 줄이기 위해 총 1조원의 사업비를 직접 조달하고 분양 수익에 따른 공사비 수령과 사업비 우선 상환 등의 조건을 제시했다.

여의도라는 입지적 특성과 함께 분양가 규제를 받지 않는 오피스텔도 짓기로 돼 있어 적잖은 수익이 예상되는 만큼 두 업체 간 기싸움이 팽팽했다. 지난 10월 단지 내에 나란히 주택홍보관을 짓고 소유주 지지 확보에 나섰다. 하지만 시공사 선정이 언제 재개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구청 권고로 철거됐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우선 KB신탁 입장 표명을 기다리고 있다"며 "시공사 선정 절차가 재개되면 홍보 비용을 이중으로 다시 써야 하는데 이런 문제가 생기기 전에 정확한 지침을 세워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 관계자는 "현재 제안한 입찰 조건은 추후 시행자 결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공사를 수주해야 하는 시공사 입장에선 신탁사에 별도의 요구를 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영등포 여의도한양은 KB부동산신탁을 사업시행사로 선정 후 시공사 선정 절차를 밟던 도중 절차상 법적 하자가 발견됐다는 이유로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사진=정영희 기자
주민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소유주 A씨는 "재건축은 속도전이 핵심인데 신탁사와 운영위는 대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또 다른 소유주 B씨는 "주민들 사이에선 KB신탁과 운영위원장 간 신뢰 문제도 제기되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지난달 27일 소유주 100여명은 KB신탁에 시공사 선정 중단에 대한 원인을 규명한 뒤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지 못하면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내용의 문서를 보냈다. 소유주들은 "사업이 지연되는 게 기정사실이 된 지금 시공사를 뽑는 절차만 다시 하면 되는 것인지 사업이 초기 단계부터 다시 진행돼야 하는지 어느 것 하나 명확한 게 없다"며 불만을 표했다.

주민들이 소송을 예고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대표변호사는 "손해배상청구는 정확한 손해액을 입증해야 제기할 수 있는데 KB신탁이 시공사 선정에서 명백한 과실을 저질렀음을 증명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정비계획 수립 전 시공사 선정에 나선 건 사실이지만 이로 인한 사업 지연과 객관적 손해액 산정이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성 미흡에 떨어지는 신탁방식 신뢰


신탁 방식 선택 시 조합 설립이 필요 없어 비교적 사업 속도가 빠르고 불필요한 분쟁을 없앨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신탁사 자체 자금이 있으니 비용 조달이 쉽고 자금 관리 또한 투명하게 진행된다. 소유주 입장에선 신탁사가 가져가는 총 일반분양 수익의 1~3% 수준의 수수료를 기꺼이 지급하고 재건축을 지연 없이 추진하는 게 장기적으론 이득일 수 있다. 여기에 지난 6월 정부가 도심 주택 공급 활성화를 위해 신탁방식 정비사업에 대한 특례를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며 재개발·재건축 시장에서의 신탁방식 인기가 더욱 높아지는 추세다.

실제로 부동산 신탁사들도 몸집을 부풀리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인가를 받은 부동산 신탁사는 14개로 이들의 위탁받은 총 재산은 2020년 277조5000억원에서 올 8월 398조3239억원으로 늘었다.

문제는 다수의 신탁사들이 미숙함을 보인다는 데 있다. 이들은 정비사업에 능통한 전문가가 아니어서 여의도 한양 사례처럼 허술한 운영이나 절차상 하자를 드러내기도 한다. 양천 목동신시가지7단지(목동7단지)에선 일부 소유주 단체가 전체 주민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예비신탁사를 선정해 마찰이 일었다. 영등포 신길우성2차·우창아파트 재건축사업에선 신탁사가 공사도급 가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소유주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며 주민들의 반발을 샀다.

사실 국내에서 신탁방식으로 완공된 단지는 별로 없다. 그나마 경기 안양 한양수자인 평촌리버뷰(코리아신탁)와 대전 동구 e편한세상 대전 에코포레(한국토지신탁) 등의 사례가 있을 정도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저작권자 ⓒ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의 경제 뉴스'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머니S & moneys.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