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라이트는 홈런이지만···시리즈 흐름을 만든, KT와 이정용의 ‘두 장면’

LG 이정용이 지난 10일 수원 3차전 9회 1사 만루를 병살로 넘긴 뒤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이라이트는 대부분 홈런이 터지는 장면이었다. 지난 7일 한국시리즈 잠실 2차전 LG 박동원의 역전 투런홈런을 시작으로 3차전 KT 박병호의 투런홈런에 이은 LG 오지환의 ‘되치기’ 스리런홈런 등이 이번 한국시리즈의 최대 명장면이 되고 있다.

그러나 두 팀 벤치는 드러난 하이라이트 뒤에 숨은 승부처에 더 큰 의미를 두고 복기했을지 모른다. 적어도 한국시리즈 4차전까지 흐름 형성 과정에는, KT 타선과 LG 우완 이정용이 마주 선 ‘두 장면’이 크게 작용했다.

첫 장면은 2차전 1회다. 1차전을 어렵게 잡은 KT는 지난 8일 잠실 2차전서 1회부터 LG 선발 최원태를 흔들었다. LG 벤치는 KT 5번 타순을 지나며 준비된 불펜 카드인 이정용을 올렸다. 이정용은 배정대에게 적시타를 맞아 승계주자 2명에게 홈을 내줬다. 이정용은 2회 다시 마운드에 올라와서도 1사 뒤 조용호에게 좌중간 장타를 맞았지만, 조용호가 2루를 돌아 3루까지 뛰다가 횡사한 틈에 위기를 넘겼다. 이정용은 이날 6타자를 상대로 3안타를 허용했다.

흔히 ‘결과론’이라고도 하지만, 4차전까지 시리즈 흐름을 두고 복기의 복기를 하다 보면 도달하는 지점이 바로 이곳이다. KT는 2차전 1, 2회 이정용 등판 상황에서 LG를 코너로 몰고도 결국 숨통을 열어줬고, LG는 가까스로 숨을 돌리며 기사회생했다.

이정용은, 염경엽 LG 감독이 시리즈를 앞두고 굉장히 크게 보고 준비한 ‘+1 카드’였다. 롱맨이 필요한 상황서 내기로 작정한 경기의 두번째 투수였다. 이정용이 고개를 들고 숙이는 것에 따라 LG 투수 운용의 전체 그림과 자신감까지 달라지는 구도에서 두 팀 희비가 엇갈렸다. LG는 2차전에서 이정용이 위기를 넘긴 것을 포함해 8.2이닝을 불펜으로 버티며 가용 자원 폭까지 넓힌다.

또 한번의 결정적 만남은 수원 3차전 9회였다. 현장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뭐 이런 야구가 다 있냐”는 얘기가 나온 날이었다.

KT 박병호의 8회 투런홈런을, LG 오지환이 9회 스리런홈런으로 받으며 LG가 8-7로 앞서던 9회말. 1사 1·2루에서 LG 이정용이 등판한 가운데 초구 포크볼이 뒤로 빠지며 1사 2·3루. 타석의 배정대가 자동 고의4구로 나가며 1사 만루가 됐다.

KT 김상수는 2구째 슬라이더를 콘택트 위주의 스윙으로 맞히려다 투수 땅볼 병살타로 물러났는데, 결과적으로는 한복판 초구 직구(144㎞)를 놓친 것이 아쉬울 수 있었다.

LG 이정용이 지난 10일 수원 3차전 9회 1사 만루를 병살로 넘긴 뒤 선수들과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초구에 직구를 다시 찔러넣은 이정용의 뱃심도 조명된 장면이었다. 이정용은 지난해 키움과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4-3이던 7회 2사 1루에 등판해 대타 임지열에게 초구 직구(145㎞)를 던져 역전 투런홈런을 내주고, 다음타자 이정후에게 다시 초구 직구(146㎞)를 던져 연속타자 홈런을 맞은 이력이 있었다.

1년만에 다시 맞은 결정적 순간. 그리고 다시 던진 초구 직구. 이번에는 방망이가 나오지 않았다.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