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경제다 ③ ESG의 끝, ESE의 등장 [더 나은 세계, SDGs]

황계식 2023. 11. 13.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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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스톡
 
유럽 의회(EP)는 지난달 18일 기업의 비재무적 활동 내용을 공시하도록 규정한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CSRD) 도입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 공시 지침은 EP가 지난 7월 승인했던 유럽 지속가능성 보고 기준(ESRD)을 따르고 있으며, ESRD에 따르면 공시 대상 기업들은 물과 공기 오염, 지역사회에 주는 영향 등을 구체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현재까지 유럽의 비재무적 공시 규정은 비재무 정보 공개 지침(NFRD)으로, NFRD는 유럽 최대의 증권거래소인 유로넥스트(Euronext) 등 유럽연합(EU) 기반의 거래소에 상장된 기업 1만2000여곳이 의무 대상이다.

이와 달리 ESRD는 EU에 법인과 자회사를 둔 모든 기업이 해당하기 때문에 5만곳 이상이 이 지침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CSRD는 기존 NFRD 적용 기업은 당장 2024년 회계연도부터 도입되며, 총자산 2000만유로 이상, 총매출 4000만유로 이상, 연간 평균 직원 수 250명 이상 중 두가지 이상 조건에 해당하는 기업은 2025년 회계연도부터 적용된다. 또 오는 2026년 회계연도부터는 상장 중소기업, 신용기관, 보험회사들까지 모두 CSRD를 의무적으로 따라야 한다.

프라이스 워터하우스 쿠퍼스(PWC) 등 주요 컨설팅 업체들은 국내 시가총액 100대 기업의 30% 이상이 영향권에 들 것으로 내다보고 적극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기반으로 성장세를 이어가는 회계 컨설팅사와 신용평가사, ESG 컨설팅 업체, 관련 언론, 시민단체들도 한목소리로 빠른 대비를 촉구하는 등 ESG 공시를 둘러싼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다.

현재 유럽의 경제 상황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러한 ESG 규제 기조가 유지될지 의문이다.

EU의 통계청인 유로스타트는 지난달 31일 유로존 내 20개국의 올해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직전 분기 대비 0.1% 하락했으며, 10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2.9% 상승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4분기 -0.1%(이하 직전 분기 대비 기준)를 시작으로, 지난 1분기 0.2%, 2분기 0.6%, 3분기 –0.4%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사실상 유럽 경기가 침체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기에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해 7월부터 연 0%인 기준금리를 지난 9월까지 10회 연속 인상하여 현재 4.5%로 유지하는 등 강력한 긴축정책을 펼친 끝에 유럽 내 소비 지출이 크게 위축됐다. 실제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전인 지난해 1월 유로존 소매판매 대비 지난 1~8월 월간 평균은 7.5% 감소했다.

고금리와 전쟁의 여파만으로 유로존의 경제위기를 설명하긴 어렵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미국 역시 40년 만에 최대의 고강도 긴축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경제가 눈에 띄게 회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 상무부는 미국의 3분기 GDP는 직전 분기 대비 4.9% 성장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달리 유럽의 경기 회복은 장기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예상 밖으로 길어져 유가가 급등할 우려가 있는 등 예측할 수 없는 외부 위험요인이 계속 생겨난 탓이다.

유로 증시의 전망도 어둡다. 유로넥스트는 지난 3분기 매출액이 3억140만유로를 기록하며 지난해 동기 대비 14% 감소고, 같은 기간 거래 수익 역시 5.2% 줄었다고 밝힌 바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달 발표한 세계 경제 전망에 따르면 내년에 가장 빠르게 성장할 국가 상위 20위 안에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가 10곳, 북아프리카 및 중동 국가가 2곳, 아시아·태평양 국가가 7곳, 중남미 국가 1곳 등으로 유럽 대륙은 단 1곳도 포함되지 않았다.

물론 기록적인 국가 부채와 청년 실업률, 기술 발전, 교육·복지 시스템은 아직 이들 상위 20위 국가가 유럽과 미국을 추월하기에 역부족임을 보여주지만, 미래 경제 성장의 양대 날개로 꼽히는 자원과 인구 측면으로 보면 양상은 다르다. 오는 2050년 전망 기준 세계 15~24세 인구 분포가 아프리카(35%), 아시아(43%), 남미(6.9%), 유럽(5.1%) 순이 될 것으로 전망되며, 생산가능인구 비율, 경제 성장 가속도와 비례하는 인구배당효과에서 이들 국가가 가파르게 상승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예단하긴 어렵지만, 미국은 고금리와 고유가, 장기 인플레이션 기간에도 계속 경제가 성장 중이다. 실제로 지난 1년 전 대비 GDP는 3% 가까이 올랐고, 인플레이션은 전년 대비 2.1% 낮아졌으며, 부동산 임대비용 상승도 지난 7월을 정점으로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다. 앞으로 금리 변동 등의 상황을 봐야 하지만, 적어도 지난 3월 실리콘밸리 은행(SVB·Silicon Valley Bank)이 파산하면서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올 것이라던 시장 예측은 멀어지고 있다.

그러나 유럽發 경제위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실제로 유로존의 실업률과 에너지 위기, 식품 물가 상승률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럽과 미국이 주도한 글로벌 ESG 정책 확산은 둔화할 가능성이 높다. 당분간은 유효할 수 있지만, 내년 미 대통령선거를 기점으로 이 기조는 꺾일 전망이다. 만약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재입성하면 오히려 미국 주도의 ‘반(反) ESG 열풍’이, ESG 규제로 잔뜩 취약해진 우리 산업계가 상당한 비용을 부담할 가능성이 있다.

EU의 정책은 ‘유로존의 경제 부흥’이라는 목표로 큰 틀에서 ‘탄소 중립’, ‘강력한 환경 규제’, ‘에너지 전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만, 세부 지침은 계속 바뀌고 있다. 최근에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형편이다. 전기차 운용 수준의 자동차 배기가스 배출 규제 정책인 ‘유로7’의 도입을 둘러싸고, EU 집행위원회(EC)는 내연기관 승용차는 오는 2025년, 대형 상용차는 2027년에 각각 도입할 것으로 예고했었지만, EP는 지난달 12일 승용차는 2030년, 대형 상용차는 2031년에 도입하는 것으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실물경제와 유럽 내 제조산업 성장을 우선해 이같이 선회했다는 게 일방적인 평가다.

따라서 한국 정부와 ESG 컨설팅 기업들이 ‘EU 중심의’, ‘미국 중심의’ ESG 정책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조심스럽게 예측해보자면 ‘환경’과 ‘사회’, ‘거버넌스’를 하나로 묶는 ‘ESG 생태계’는 곧 끝날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각각의 이슈를 분리해 경제와 지역 성장, 자국 생존에 미치는 영향을 세부적으로 판단하여 대비할 때다.

최근 글로벌 경제·금융·산업·학계를 중심으로 경제적 지속가능성(Economic Sustainability)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데, 나는 여기에 ‘모두를 위한’을 더해 ‘ESE’(Economic Sustainability for Everyone) 개념을 세계 최초로 제시하고자 한다.

김정훈 UN SDGs 협회 대표 unsdgs@gmail.com

*김 대표는 한국거래소(KRX) 공익대표 사외이사, EU 유럽기후협약 대사, 유엔사회개발연구소(UNRISD) 선임 연구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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