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온 ‘오케스트라 3대장’… 완벽한 선율에 매료된 서울
바이올린·팀파니 ‘황금빛 연주’… 완성도 높은 음악
■ RCO
베이스 입체감 뚜렷… 합주 악기 많을수록 선율 ‘다채’
■ 베를린필
지휘자의 세밀 통제에 현·목관악기 잘 어우러져
빈 필하모닉, 로열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 베를린 필하모닉까지. 세계 오케스트라 ‘3대장’이 일주일간 대한민국 서울을 음악으로 수놓았다.
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만난 빈필의 음악은 명료했다. 티 하나 없이 깨끗한 고해상도로 고전음악의 정수가 매혹적으로 펼쳐졌다. 가느다란 실이 굉장히 촘촘히 엮여 있어 악장과 악장 사이에서만 봉제선이 보이는 느낌이었다.
1부 베토벤 교향곡 4번은 존재감이 강력한 3번 ‘영웅’과 5번 ‘운명’ 사이에 위치한 곡으로 슈만이 “두 명의 북구 거인 사이에 끼인 그리스의 미인”이라고 칭한 작품. 빈필은 효율적인 편성으로 민첩하면서 섬세한 아름다움을 선보였다. 각 악기들은 저마다 최상의 상태로 움직이며 이상을 추구했고, 한데 모여 찬란한 아름다움을 빚어냈다. 황금빛 색채를 보여준 바이올린과 함께 팀파니의 유려함이 돋보였다.
2부 브람스 교향곡 1번은 1부보다 높은 완성도로 온전한 음악의 아름다움을 선사하며 감동을 줬다. 1악장의 느린 템포에 고개가 갸우뚱했던 것도 잠시, 2악장에서 보여준 악장 라이너 호넥이 선사하는 끊어질 듯한 바이올린 현은 절창이었다. 3악장에서 속도를 내기 시작하더니 4악장에서 끝내 이상적이고 찬란한 빈필 사운드를 홀에 가득 채우며 여태 들었던 연주 중 가장 아름다운 브람스 1번을 들려줬다.
지휘자 투간 소키에프는 악단에 공간을 내어주는 데 탁월한 면모를 보였다. 솔리스트로서도 인정받는 단원들이 모여 있는 빈필이기에 가능한 방식이었다. 지휘와 딱딱 맞아떨어지는 빈필의 움직임은 감탄을 자아냈다. 여러모로 브람스는 소키에프와 빈필이 만나는 최적의 약속 장소 같았다. 앙코르에서 들려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봄의 소리 왈츠’와 ‘트리치 트라치 폴카’에선 지휘를 최소화하며 아예 단원들의 자율에 맡겼다. 빈의 대표 음악가 슈트라우스의 작품을 통해 빈필은 순식간에 관객들을 빈 한복판으로 인도했다. ‘오늘 밤 여러분들이 빈 시민입니다’라고 선포하는 듯했다. 그들의 몸이 기억하는 ‘밀당’(밀고 당기기)의 아름다움이 돋보였다.
11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만난 RCO는 앙상블의 균형감이 돋보였다. 사흘 전 만났던 빈필에 비해 베이스 현의 두터움을 강조했는데, 레이어를 쌓아가면서 입체감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둔 듯했고, 탁월한 선택이었다.
환상적인 색채감을 보여준 베버의 ‘오베론’ 서곡에 이어 들려준 리스트 피아노협주곡 2번은 강렬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균형이 핵심인 작품이다. 러시아 출신 미국 피아니스트 예핌 브론프만의 완력과 RCO의 헌신이 적절한 균형을 이뤘다. 브론프만은 스치기만 해도 유효타를 넣는 피아니스트였다. 박력은 물론, 특유의 서정으로 객석을 압도했다. 오케스트라보다 하루 일찍 한국에 들어온 브론프만은 공연 당일까지 피아노를 고를 만큼 최선의 무대를 위해 고심했다. 어떤 지시가 오든, 어떤 소리가 들리든 받아주겠다는 RCO의 안정감도 돋보였다.
2부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은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처럼 어둠에서 광명으로 나아가는 작품이다. 호쾌한 마무리를 보여줄 수 있어 국내에서도 자주 연주됐던 곡인데 이날 해석은 다소 평이했다. 1악장부터 극도로 느린 템포로 시작했다. 유장함을 살리려는 취지 같았지만, 뛰어난 협응력을 가진 RCO의 장점을 묵히는 역효과가 더 큰 것 같았다. 그럼에도 RCO는 극강의 밸런스로 다채로운 음색을 세밀하게 보여주며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2악장의 호른이 인상 깊었고, 작품의 전환점인 3악장에서 현과 목관, 금관이 함께 달려나갈 때 RCO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RCO는 팀플레이를 중요시하는 벌떼 농구를 하듯 모두가 함께 달릴 때 더 빛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함께 달려나가다 보면 엉키기 마련인데 소리의 밸런스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합주하는 악기의 종류가 많으면 많을수록 보다 아름다운 소리가 다채롭게 겹쳐졌다. 아시안 투어 객원 지휘로 나선 파비오 루이지는 이탈리아 출신답게 곳곳에서 활기찬 ‘노래’를 들려줬다.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는 소리 통의 크기부터 다른 오케스트라보다 큰 것 같았다. 전반적으로 더블베이스나 첼로 등 저음 현이 돋보였는데, 풍부함이 남달랐다. 12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만난 베를린필 얘기다.
공연의 시작은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열었다. 이날 조성진의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4번은 조성진답지 않았지만, 그런 만큼 그의 다음을 기대케 했다. 그간 박력과 서정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감을 갖춘 연주로 안정감을 줬다면, 이날 조성진은 자유롭고 대담한 연주를 선보였다. 1악장과 3악장 카덴차에서 특히 그랬다. 1악장의 성찰, 2악장의 비탄, 3악장의 희망 등 악장마다 확실하게 캐릭터가 바뀌며 직관적으로 표현했다. 순간순간 느낌을 드러내니 보다 자연스러웠다.
연주를 마친 조성진은 상임지휘자 키릴 페트렌코와 포옹했다. 이날 공연은 조성진이 내년부터 베를린필의 상주음악가로 활동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첫 협연이란 측면에서도 특별했다. 앙코르는 리스트의 순례의 해, 두 번째 해 ‘이탈리아’ 중 페트라르카의 소네트 104번. 조성진은 6분 정도의 곡으로 드라마 한 편을 써 내려갔다.
2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영웅의 생애’는 이틀간 펼쳐진 베를린필 내한의 클라이맥스였다.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한 소리가 들렸다.
이 작품은 작곡가가 자신을 영웅으로 상정하고, 아내(바이올린 독주), 자신을 핍박하는 비평가(목관악기) 등을 직접 표현하는 곡. 조잘대는 듯한 목관악기들은 생동감을 부여했고, 승리를 암시하는 금관악기들의 존재감도 돋보였다.
페트렌코는 치밀하게 준비해 오케스트라를 면밀하게 통제했다. 조금이라도 과하면 길을 잃을 수 있는 작품을 세밀하게 분석해 청중들이 보기 쉽게 내놨다. 다만 의외성은 떨어져 저마다 최상급 연주자들인 베를린필 단원들이 매력을 최대한 표출하지 못한다는 아쉬움도 동시에 들었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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