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써도 왜 이렇게 나를 울리나” … 떠나야 할 그 사람[주철환의 음악동네]
작곡가는 악보를 채우고 연출가는 무대를 채운다. 그때 그 자리에 딱 맞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3가지(시간, 공간, 인간)가 맞으려면 안목은 기본이고 정보력과 섭외력은 필수다. 편한 사람, 쉬운 사람, 나한테 잘하는 사람으로만 무대를 채우면 관객이 알고 떠난다. 연출가 혼자 다 할 수 없기에 스태프와의 하모니 또한 중요하다. 그들도 서로 맞아야 한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주인(혹은 주변)과 잘 맞지 않는 개가 있을 뿐이다. 사람 사이도 비슷하다. 나쁜 사람이라고 가볍게 규정하지 말 일이다. 살다 보면 좋은 사람의 반대말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싫은 사람이란 걸 깨달을 때가 온다. 노래도 마찬가지다. 나쁜 노래가 아니라 싫은 노래(사실은 모르는 노래)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 싫으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이 대체로 서늘하다. “그냥 싫어요.” 당사자가 들으면 유쾌하지 않을 터이므로 그런 상황에선 이렇게 답하는 게 예의다. “저와는 안 맞는 것 같아요.”
작곡가라면 최선을 다해 만든 곡을 최고의 가수가 불러주길 바랄 거다. 어렵사리 그 가수에게 노래가 전달됐는데 돌아온 답이 이렇다면. “저와는 안 맞는 것 같아요.” 가요사에 이런 노래들이 한두 곡이 아닐 텐데 지금 퍼뜩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 20년 전(2003)에 작곡가 윤명선은 당대 최고의 가수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제발 불러만 달라고 사정(헌정)했다. 하지만 번번이 거부당했다. 결국 중고 신인 장윤정이 그 노래(‘어머나’)를 녹음했고 알다시피 대박을 터트렸다. 그렇다면 당시 섭외받은 기성 가수들이 지금은 아쉬워할까. 내가 건너 들은 바로는 답변이 그대로다. “저와는 안 맞는 것 같아요.”
나에게 맞는 사람은 찾으면 되고 나에게 맞는 노래는 고르면 되지만 나에게 맞는 엄마는 선택할 수가 없다. 느닷없이 이런 얘기를 꺼내게 된 건 ‘스타 다큐 마이 웨이’(TV조선)에서 낯익은 얼굴을 보아서다. 그날(10월 29일)의 주인공은 쌍둥이 듀엣 바니걸스의 동생 고재숙이었다. 세상을 떠난 언니(고정숙)와는 음악적으로 잘 ‘맞는’ 사이였는데 문제는 엄마였다. 나의 기억은 4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는 연예인의 엄마들도 방송사를 드나들었다. 스튜디오뿐 아니라 PD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에도 자주 나타났다. 지금으로선 가늠이 안 되겠지만 엄마가 매니저 역할을 겸하던 순박한(?) 시절의 풍경임을 감안하고 듣기 바란다. 어디선가 특유의 사투리 억양이 들리면 그곳에 바니걸스의 어머니가 계셨다. 영향력이 대단한 분이셨다.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 딸들은 다른 말을 한다. “당신 뜻대로 사업하시면서 번 돈을 ‘탕진’했다. 딸들을 위해 저축한다든지 이런 게 전혀 없었다.” 참 야속하다는 속내까지 털어놓는다. ‘어머니는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god ‘어머님께’)까지는 아니더라도 이건 엄마가 내 자장면까지 다 드셨다는 말로 들린다. 마음에 맺힌 게 많아 보인다.
바니걸스의 데뷔곡은 ‘하필이면 그 사람’(1971)이다. 이 노래의 작사 작곡가는 대중음악계의 보배인 신중현이다. MBC 가수왕(1969) 펄 시스터즈를 배출한 역량으로 바니걸스를 키워보려 했을 텐데 왜 결별했을까. 딸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엄마가 화를 내며 저희를 데리고 나온 거죠. 그분과는 안 맞는다면서.” 당시 미성년자였던 바니걸스는 엄마의 판단에 자신들의 미래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안 맞는 사람들 사이의 불화가 여기저기서 넘쳐난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써도 왜 이렇게 나를 웃기나 왜 이렇게 나를 울리나’(‘하필이면 그 사람’). 잠시 머리를 식히려면 신중현이 작사 작곡한 노래 한 곡을 이어서 듣기 바란다. 제목은 ‘떠나야 할 그 사람’이다.
작가·프로듀서·노래 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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