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리커창 시대에서 ‘시진핑 신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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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커창 전 중국 국무원 총리가 지난달 27일 상하이에서 심장마비로 숨져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지난 2일 시진핑 국가주석과 부인 펑리위안,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2019년 사망한 리펑 전 총리 때와 비슷한 영결식이 열렸다.
또 리커창 사망 뒤 중국의 가장 중요한 관영매체인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의 뉴스 방송과 신화통신 누리집 등은 리커창 사망 소식을 시진핑과 리창 총리의 일반적인 일정 보도에 이어 세번째로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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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
[세계의 창] 왕신셴 | 대만 국립정치대학 동아연구소 소장
리커창 전 중국 국무원 총리가 지난달 27일 상하이에서 심장마비로 숨져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지난 2일 시진핑 국가주석과 부인 펑리위안,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2019년 사망한 리펑 전 총리 때와 비슷한 영결식이 열렸다. 중국공산당 18·19차 당대회에서 당내 서열 2위인 국무원 총리로 뽑혀 지난 10년 동안 중국을 이끈 리 전 총리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20~30년 동안 총서기와 총리 사이에는 업무상 분업이 이뤄져 장쩌민-리펑의 ‘장·리 체제’, 장쩌민-주룽지의 ‘장·주 체제’, 후진타오-원자바오의 ‘후·원 체제’로 이어졌고, 2012년 말 시진핑-리커창의 ‘시·리 체제’가 출범했지만 이제는 ‘시진핑 신시대’로 바뀌었다. 이에 다음과 같은 사실이 관찰된다.
첫째, 시진핑-리커창의 관계는 2007년 제17차 당대회 전부터 시작됐다. 당시 총서기였던 후진타오는 같은 파벌인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소속이었던 리커창에게 총서기를 맡기려다 당내 다른 파벌의 반발을 불렀고, 그해 6월 말 중국공산당 역사상 유례없는 ‘민주 추천’이라는 이름의 투표가 실시됐다. 당 중앙위원과 후보위원, 은퇴한 원로들이 참여한 투표에서 시진핑이 리커창보다 많은 표를 받으면서 시진핑이 총서기를, 리커창이 총리를 맡는 ‘18차 당대회’ 결과가 결정됐다. 시진핑은 집권 뒤 국가안전위원회와 개혁심화영도소조 등을 설치해 ‘소조에 의한 국가 통치’를 강화했고, 특히 개혁심화영도소조는 국무원의 의사결정권을 넘겨받는 등 당과 국무원 관계에 변화를 줬다.
둘째, 정책 결정권 외에도 지난 10년 동안 시진핑과 리커창 사이에 많은 정책적 갈등이 있었다. 예를 들어, 농촌·농업 문제에 있어 리커창은 ‘신형 도시화’를 주장했지만 시진핑은 ‘농촌 진흥’을 주장했고, 결국 후자가 승리했다. 정부와 시장의 관계에서도 리커창은 시장 메커니즘을 선호했지만, 시 주석은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고 결국 국영기업이 앞서고 민영기업이 뒤에 서는 ‘국진민퇴’가 강력히 추진됐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시진핑이 ‘정확한 빈곤퇴치’와 ‘전면적인 샤오캉 사회 건설’의 성과를 내세울 때 리커창이 “현재 6억명의 사람이 한달에 1천위안 정도밖에 벌지 못한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또 리커창 사망 뒤 중국의 가장 중요한 관영매체인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의 뉴스 방송과 신화통신 누리집 등은 리커창 사망 소식을 시진핑과 리창 총리의 일반적인 일정 보도에 이어 세번째로 보도했다. 영결식이 열린 지난 2일 신화통신은 리커창의 전기를 발표하며 그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위원회의 강력한 지도 아래 있었다’는 언급을 빼놓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많은 언론이 리커창의 죽음이 1976년, 1989년 발생한 1, 2차 천안문(톈안먼) 사건과 같은 대규모 사회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전망했지만, 사실 리커창은 당내 지위나 정책 영향력 면에서 저우언라이 총리나 후야오방 총서기에 미치지 못한다. ‘사람이 하는 일을 하늘이 보고 있다’ 등 리커창의 발언이 주목받고 인터넷에서 그에 대한 추모 열기가 뜨거운 것은 현 상황에 대한 불만이 투영된 것이다. 몇몇 지역에서 애도의 꽃이 산을 이룬 것은 중국 당국이 강력하게 통제하는 한편 대중이 불만을 분출할 수 있도록 ‘구멍’을 뚫어줬기 때문이지 대규모 집단행동의 전조는 결코 아니다.
두번의 총리 임기를 포함해 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세차례 연임한 리커창의 사망은 공청단 파벌의 급격한 쇠퇴뿐 아니라 중국 공산당에서 앞으로 더욱 동질적인 목소리가 나올 것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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