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재학교 교사 출신, 마음교육 전문가 김소연
수많은 교육 정보 속에서 옥석을 고르고 싶다면 교육 선진국이 주목하는 새로운 에듀 트렌드 ‘사회정서학습 교육법’에 주목하자.
미국은 현대사회에 걸맞은 인성교육 방향으로 '사회정서학습 교육법’을 꼽으며 150조 원이라는 거대한 금액을 투자했다. 사회정서학습은 아이의 정서와 감정을 살펴 자존감을 높이고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키워주는 커리큘럼이다. 미국을 비롯해 캐나다, 영국, 싱가포르 등 교육 선진국이 주목하는 교육으로, 미국 정부는 "아이들의 행복을 보장하는 유일한 교육"이라고 칭송한다.
미국 시애틀 교육구의 초등학교 및 영재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현재 '해피매스’라는 교육크리에이터로 활동 중인 김소연 마음교육 전문가는 사회정서교육을 토대로 아이들을 지도하며 그 효과를 생생하게 목격했다. 사회정서교육을 받은 아이들 대부분은 자존감이 높고,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과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다는 것. "사회정서교육은 학업성취를 높일 뿐만 아니라 실패와 좌절에도 나아갈 수 있는 단단한 내면의 힘까지 길러준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한국에서 사회정서학습 교육법은 아직 낯설다. 이름 자체도 생소할뿐더러 그 방법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는 사람도 없기 때문. 이를 위해 김소연 마음교육 전문가를 만났다. 그는 "사회정서학습 교육법이 미국에서 장기간 인정받아온, 신뢰할 수 있는 교육은 맞지만 미국 교육이니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미국의 교육 환경과 영재교육에 대한 이야기부터 들려줬다.
끈기와 도전을 강조하는 미국 영재학교
학업을 위해 학원을 가거나 과외를 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이가 학교 학습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사교육을 실시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예체능에 초점이 맞춰져 있거든요. 수영이나 자전거, 체조, 축구, 미술과 같이 스트레스 해소나 팀워크 향상, 창의적인 표현 공간을 마련해주는 교육 위주로요. 학년이 올라가면 코딩이나 체스같이 논리적인 사고가 요구되는 특별활동을 선택하기도 해요. 미국도 수학, 영어, 논술 등의 학원이 존재해요. 하지만 몇몇 대도시를 제외하고 대중교통이 원활하지 않은 데다 맞벌이 가정이 많아요. 때문에 방과후 돌봄 기관에서 소규모 수업을 듣거나 개인 과외를 받는 것이 그나마 일반적인 사교육의 모습인 것 같아요.
수업 분위기는 어떤가요.
토론식으로 자유롭게 이뤄져요. 토론이라고 하면 조금 딱딱하고 거창한 느낌이 들지만 그렇지 않아요.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매일 그림책을 읽고 생각을 표현하거나 의견을 주고받는 등의 대화를 권장합니다. 이 과정에서 친구의 생각에 자신의 의견을 덧대거나 반론하는 연습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으니까요. 연극, 모형 만들기, 학습 내용을 노래 가사로 담아내기 등 아이들이 이해한 바를 스스로 표현하는 능동적인 학습도 지향하고 있고요.
한국 영재라 하면 선행학습을 빼놓을 수 없어요. 미국도 비슷한가요.
미국에서도 선행학습은 이루어져요. 의미는 조금 다르죠. 높은 학년의 진도를 미리 학습해놓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지루해해서’ '궁금해해서’ 선행학습을 실시하는 경우가 많죠. 미국 초등학교는 학생들에게 과도한 숙제를 내주는 것을 지양하는 분위기예요. 보통 10~30분 정도의 짧은 독서 숙제 정도만 내주는 편이고요.
미국 영재학교는 어떤 절차를 통해 입학하나요.
교육구 및 주 정책에 따라 선별 과정에 차이는 있지만 영재학교 입학을 위해서는 두 학년 이상의 월반 학습과 웩슬러 지능검사(언어능력을 요하는 문항에 치중된 검사들을 개선하여 비언어적인 부분까지 측정하고자 만들어진 검사법)와 같은 인지적 점수가 요구돼요. 학기가 시작되면 무력감을 호소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항상 잘한다는 칭찬만 받다가 소위 엄친아라고 불리는 아이들 속에서 열등감을 느끼거나, 타인과 자신의 결과물을 비교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죠. 이를 위해 영재학교에서는 학업성취도가 행복과 비례하지는 않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오고 있습니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주어진 바를 '빨리’ 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바를 찾아 '결국’ 해내는 것이니까요.
영재학교에 대한 수많은 편견이 있어요. 가장 잘못된 것이 있다면 뭘까요.
또래 관계에 대한 오해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대표적으로 빠른 지적 발달을 보이는 아이들이 모이면 사회적 교류 또한 남다른, 고차원적인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편견인데요. 아이들의 모든 역량이 동일한 속도로 발달하지는 않습니다. 무언가를 배우는 속도가 빠르더라도 사회성, 스트레스 관리, 자기조절능력 등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영역은 분명 있으니까요. 특히 유치원, 초등학교 시기에 영재 판정을 받은 대다수 아이는 빠른 학습자 유형인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그 능력이 벽을 만나는 시점은 반드시 찾아옵니다. 끈기를 가지고 계속 도전하는 능력을 꾸준히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죠. 이를 위해 영재학교에서는 정서, 감정, 관계 학습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고요.
정서 학습이라는 것이 추상적으로 느껴져요.
정서교육은 '자아가 튼튼한 아이로 키우는 교육’을 의미해요. 자신을 잘 알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는 거죠. 이런 아이들은 타인도 귀한 존재로 여기는 것 같아요. 정서교육을 하며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삶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태도가 곧 자신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는 거예요. 이를 통해 아이의 첫 상호작용의 대상인 부모님과의 관계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죠.
감정교육은 부모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 중 하나예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요.
‘아이가 항상 기쁘고 행복하길 바란다’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면 안 돼요. 살다 보면 아이도 힘들거나 질투 나는 일이 생기고 이유 없이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매일 즐거울 수만은 없잖아요. 그럴 땐 일부러 아이의 감정을 바꾸려고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항상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면서, 행복하지 않은 자신의 감정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의심하거나 마음을 들여다보는 기회 자체를 상실할 수도 있거든요.
자주 욱하거나 폭력적인 아이에게는 어떤 방법으로 감정교육을 해야 할까요.
감정뿐만 아니라 충동을 조절하는 연습을 시켜줘야 해요. 지도자의 일관성 있는 태도 및 교육 방법이 전제돼야 하고요. 충동을 조절한다고 하면 거창한 교육법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은데, 일상생활에서도 충분히 연습할 수 있습니다. 양말을 제대로 펴서 빨래 통에 넣는다든지, 식사가 끝난 뒤 접시를 싱크대에 올려놓는다든지 등이요.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하기보다는 규칙이나 사회에 부합하는 행동을 할 수 있도록 계속 권하고 설명해주는 거죠. 여기에 신체적 충동을 조절할 수 있는 '그대로 멈춰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같은 놀이를 통해 참는 기쁨을 알게 해주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관계 학습은 아이의 사회성을 의미하는 건가요.
사회성 및 자기 옹호 능력을 키워주는 교육이죠. 타인과 인연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융통성이나 공감 능력뿐만 아니라 갈등이 생겼을 때 조화롭게 대처해나가는 방법을 담고 있습니다. 관계 학습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공감’이에요. 단순히 친구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따라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친구가 왜 우는지 그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아이로 키우는 거죠. 이해도가 높아지면 상대를 '내 집단’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갈등 요소가 크게 줄어들 수 있습니다. 공감할 수 있는 대상의 폭이 넓어지면 타인과의 소통이 더욱 유연해지고, 관계로부터 얻는 만족감도 자연스럽게 올라갈 거라고 생각해요.
또래끼리 충돌이 일어날 땐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요.
아이에게 꼭 지도해야 할 것 중 하나가 잘 싸우는 기술, 갈등을 슬기롭게 극복해나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물론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대립 상황에 어른이 개입하는 건 옳지 않아요. 하지만 아무런 지도 없이 아이들이 알아서 해결하길 바라는 건 오히려 갈등의 골을 더 깊게 만들 위험이 있다고 생각해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평소 아이에게 또래 갈등 대처법을 미리 교육하는 거예요. 특히 교류의 범위를 넓혀가는 어린아이들에게는 불편한 감정을 초래하는 친구에게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게 연습시키는 거죠. 소리를 지르거나 몸을 밀치는 등 과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상처 주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고요. 모든 아이와 친하게 지낼 필요는 없지만, 모두에게 친절을 보일 필요는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죠.
사회정서교육의 핵심은 정서, 감정, 관계 학습
맞아요. 사회정서교육은 크게 자기 인식, 자기 관리, 사회적 인식, 관계 형성과 유지, 책임감 있는 결정 이렇게 5가지 영역으로 분류돼요.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단단한 중심을 가진 아이로 키우는 정서교육, 자기 마음의 주인이 될 수 있게 돕는 감정교육 그리고 타인과 관계를 형성하는 데 꼭 필요한 사회성 교육 3가지를 함께 다루는 교육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사회정서교육 지도법이 궁금해요.
진정한 사회정서교육은 여러 환경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질 때 시너지가 커지는 것 같아요. 이를 위해서는 가정과 학교가 항상 같은 가치를 추구해야 하고요. 사회정서교육 지도법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첫 번째는 명시적 지도, 쉽게 말해 가르치고자 하는 것을 대놓고 지도하는 겁니다. 교사나 학부모가 학습목표를 먼저 알려주고 지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에요. 아이가 내면을 들여다보고 타인과 소통하는 데 필요한 감정, 전달법 등을 직접적으로 가르쳐주는 거죠. 무드 미터나 표정 카드를 사용해 감정 어휘를 지도하고, 친구와 화해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나 전달법’이 그 예고요. 두 번째는 암묵적 지도입니다. 지도자가 통일된 눈빛과 행동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거예요. 이때 지도자의 마음가짐이 중요해요. 계획이 틀어질 때마다 안절부절하거나 좌절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는 혼란스러울 수 있어요.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인정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는 그 과정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되겠죠.
세 번째는요.
융합적 교육 기회를 만들어주는 거죠. 학교에서는 수업 시간에 해당 교과목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협동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팀워크 전략도 함께 수행해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책임감과 인지력을 함께 향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세요. 가족 나들이를 준비하고 있다면 아이가 적극 참여해 시간표를 만들어본다거나, 하고 싶은 활동을 적어보는 식으로 자기 주도적인 탐구를 통해 과정의 지식을 얻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지도하는 거죠.
미국은 사회정서학습을 과목으로 분류하나요.
대부분 학급은 사회정서학습 수업을 위해 개별적인 시간을 매일 20~30분씩 분리해놓아요. 시간표에 사회정서학습 시간이 교과목처럼 배정돼 있는 거죠. 이 시간에는 친구와의 갈등 해결을 위한 자기 학급만의 규칙을 토론하거나, 마음 조절 도구의 사용을 배우는 등 명시적 지도가 이루어져요. 하지만 과목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사회정서학습은 학교 전체에 항시 스며들어 있는 교육 신념과도 같은 느낌이거든요. 예를 들어 교내 복도나 급식실에도 감정을 색으로 나타낸 포스터가 붙어 있어요. 아이들은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그 포스터를 보며 자신의 기분을 들여다보는 루틴을 만들죠. 또 과학 시간에 과학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리더십을 발휘하는 방법을 함께 교육하며 융합적 지도를 실시하고요. 때문에 아이들의 정서와 감정, 사회성과 관련된 내용을 다루는 시간을 정확히 측정하긴 힘든 것 같아요.
미국이 사회정서교육을 위해 150조 원이라는 비용을 투자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계기는 1990년대 일어난 미국의 교육개혁이에요. 교육 방식을 문제 상황이 발생한 뒤 처벌하는 '반응형 교육’에서 본질을 미리 들여다보는 '예방형 교육’으로 전환하자는 목소리가 나왔거든요. 그 해답을 사회정서교육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았고요. 여기에 심리학자 대니얼 골먼 박사가 집필한 'EQ 감성지능’이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으면서 대중도 관심을 보이게 됐어요.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아이들의 정신 건강이 위태로워지자 미국 정부가 해결책으로 사회정서교육을 강조하며 획기적인 투자를 결정하게 됐죠.
사회정서교육은 성적 향상과도 연결되나요.
미국 공교육에 사회정서학습이 도입됐을 때 학업성취도와의 관계에 대해 궁금해하는 부모님들이 많았어요. 사회정서학습 때문에 주요 교과목에 할애하는 시간이 감소하는 건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고요. 이런 경각심은 사회정서학습을 연구해온 대표 기관인 CASEL의 추적연구 결과를 통해 수그러들었어요. 해당 교육을 받은 학생 약 11%가 성적 향상을 보였거든요. 뛰어난 뇌가 단단한 마음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정서학습을 통해 안정감을 갖춘 아이들의 학습 능력이 더 훌륭했던 거죠. 외부 요소에 쉽게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내면의 힘을 통해 건강한 공부 정서를 쌓게 된 거고요.
국가마다 교육 방법도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자라는 아이를 위한 교육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야 할까요.
한 연구에서 한국 청소년을 대상으로 가장 자랑스러웠던 성공 경험과 고통스러웠던 실패 경험에 대해 물었더니 어떤 대답이 나왔는지 아세요? 상반되는 질문임에도 답변은 동일했어요. '성적’이었죠. 아직도 학업성취가 곧 자신의 가치라고 믿는 학생들이 많은 거예요. 자신의 행복을 성적이 아닌 다른 것에서 찾을 수 있게 지도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해요. 또 한국 학생들은 질문하는 것을 굉장히 조심스러워하는 경향이 있어요.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건 당연한 거예요. '세상에 어리석은 질문은 없다’라는 메시지를 어렸을 때부터 심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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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영 기자 sy2823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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