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봄학교 전국 확대까지 1년…속도 높이다 ‘날림 공사’ 될라

송진식 기자 2023. 11. 13.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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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담인력·공간 없어 졸속 우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10월21일 국회 앞에서 개최한 ‘졸속 유보통합· 늘봄저지 전국교사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전교조 제공

[주간경향] 지방의 한 도시 외곽에 있는 A초등학교. ‘늘봄학교’를 시범운영 중인 이곳은 몇 달째 방과후 프로그램을 맡아줄 강사를 찾고 있다. ‘늘봄학교’는 초등학생 방과후 활동지원을 통해 교육과 돌봄에 대한 국가책임을 강화하고자 교육부가 올해부터 시범도입한 제도다. 기존 초등돌봄교실 정책인 ‘온종일돌봄’과 ‘방과후학교’를 통합한 개념이다. 학부모가 원할 경우 오전 7시부터 최대 밤 8시까지 학생을 학교가 맡아준다.

제도의 도입 취지에도 불구하고 A학교의 경우 강사를 못 구해 교사들이 돌아가며 프로그램을 맡아 ‘품앗이’ 중이다. 도시 외곽에 있다 보니 교통편이 좋지 않고, 강사료도 1회당 4만원 내외 수준으로 높지 않은 탓에 강사에 지원하는 인력 자체가 없다. 학생들을 방치할 수 없게 된 교사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방과후 프로그램까지 맡게 됐다. 늘봄학교 운영을 위한 행정, 회계 업무 등도 교사가 맡고 있다. 교육부는 “늘봄학교 운영 과정에서 교사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고 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내년부터는 A학교와 비슷한 문제를 겪는 학교들이 전국에 생겨날 우려가 있다. 교육부가 2025년 예정이던 늘봄학교의 전국 확대 시행을 1년 앞당겼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정부부처와 지방교육청과의 협업, 특별법 제정 등으로 차질 없이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일선 학교 현장에서는 그러나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는 늘봄학교 정책이 가져올 각종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교사들의 업무 과중 문제가 논란이 되는 와중에 정부가 보육 문제까지 학교에 모두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시범운영 부실” 목소리에도 “전국 확대”

늘봄학교는 ‘속도전’ 그 자체다. 올 1월 늘봄학교 도입방안이 확정됐고, 3월부터 전국 5개 시·도교육청(인천·대전·경기·전남·경북)에서 총 214개교가 참여한 가운데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정부가 5월 ‘초등돌봄 대기 해소와 2학기 늘봄학교 정책 운영계획’을 발표할 때까지만 해도 전국 확대 시행은 2025년이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8월 9일 충남 천안의 한 초등학교를 찾으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이 부총리는 늘봄학교 프로그램을 참관한 뒤 “학부모 수요가 높아 본래 2025년이던 (늘봄학교) 전국 시행을 1년 앞당기려고 한다”고 말했다. 뒤이어 교육부는 “2024년 1학기에 2000여개 학교, 2학기에 전국 6000여개 모든 초등학교로 늘봄학교를 확대하겠다”고 설명했다. 시범운영을 시작한 지 채 반년도 안 돼 늘봄학교의 전국 확대 시행을 전격 결정한 셈이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8월 9일 충남 천안의 한 초등학교를 찾아 늘봄학교 방과후프로그램을 참관하고 있다. 교육부 제공

늘봄학교는 시범운영 추진 단계에서부터 이미 “졸속추진”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늘봄학교 도입으로 인해 늘어나는 교내 학생 돌봄 추가 업무를 ‘누가’ 맡느냐가 불분명했다. 돌봄전담사들이 속해 있는 학교비정규직노조는 시범운영 단계에서 이미 “늘봄학교 업무를 추가로 맡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교사단체들 역시 “전담인력·공간 마련 없이 시작하는 늘봄학교는 파행될 것이 뻔하다”며 철회를 요구했다.

교원단체인 ‘좋은교사운동’이 시범운영에 나선 5개 교육청에 정보공개청구를 한 결과 늘봄학교 업무는 자원봉사자, 기간제 교원, 비정규직 행정인력 등이 담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규직 돌봄전담사가 업무를 맡은 사례는 없었다. “학부모 수요가 높다”는 이 부총리의 말과 달리 시범학교 내 늘봄 수요는 시간이 지나면서 줄어든 것으로도 확인됐다. 늘봄학교는 돌봄수요 시간대별로 ‘아침돌봄’(오전 7~9시), ‘저녁돌봄’(오후 7시 이후), ‘오후돌봄’(일시·틈새돌봄) 등으로 나뉜다. 4월에 비해 9월에 더 늘어난 수요는 아침돌봄(75→79개교)뿐이었다. 같은 기간 저녁돌봄(202→117개교), 일시돌봄(58→16개교), 틈새돌봄(140→95개교) 등은 모두 수요가 줄었다.

교사노조연맹이 지난 6월 초 교사 7745명을 대상으로 늘봄학교 관련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비전문인력 투입으로 인한 학교 혼란 증가’, ‘학생들의 이른 등교, 늦은 하교로 안전 및 건강 문제’, ‘담당교사의 업무 부담증가’ 등을 주요 부작용으로 꼽았다. 10명 중 7명은 “실제 교사가 늘봄강사인력으로 투입되고 있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공간 부족 문제로 특별실이나 교실 등이 돌봄교실로 활용되면서 정규수업의 장소나 시간이 변경되는 등 제약이 생긴 경우도 다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상규 좋은교사운동 초등정책위원은 “시범 운영 사업의 특성상 일시적으로 비정규직 인력을 활용할 수는 있지만 질 높은 돌봄 프로그램을 운영하기엔 한계가 있다”며 “돌봄전담사를 확충하거나 정규직 돌봄 전담인력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윤미숙 교사노조연맹 늘봄학교대응팀장은 “시범운영 되고 있는 학교에서 예산 낭비, 인력 부족 등의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데 전혀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며 “그럼에도 전면시행을 앞당긴다는 것은 교육부의 돌봄에 대한 이해 부족과 무책임한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희정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은 “(돌봄확대 보다) 정서행동위기학생, 가정의 돌봄이 부족한 학생, 특수교육대상학생, 다문화학생 등에 대한 수업 지원이 무엇보다 절실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늘봄학교의 초등학교 1학년 학생 대상 교육지원 프로그램인 ‘에듀케어’에 대해 특히 학부모들의 만족도가 높고, 제도의 확대를 요구하는 요구가 많다”며 “일단 에듀케어를 중심으로 늘봄학교의 전국 확대를 추진하되 인력 문제 등은 교사, 돌봄전담사 등과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가칭)늘봄학교 지원특별법’을 제정해 전담인력의 선발과 배치 등 늘봄학교 운영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올해 하반기 중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전국 확대 시점인 내년 3월까지 법안 발의와 본회의 통과가 가능할지가 관건이다.

■“학교에만 맡길 일 아냐”

늘봄학교 전국 확대 시행에 따른 논란이 처음 나온 문제는 아니다. 2004년 ‘방과후 교실 시범도입’, 2010년 ‘초등돌봄교실 확대도입’, 2018년 ‘온종일 돌봄 도입’ 등 학교에 ‘보육기능’이 추가되고 확대될 때마다 진통과 논란이 계속됐다. 예컨대 늘봄학교의 직전 이름이자 도입된 지 10년도 훌쩍 넘은 초등돌봄교실의 경우 아직도 법적 근거가 없다. 일부가 교육부 고시 등 행정명령으로 운영되고 있을 뿐이다. 매년 국회에서는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해 돌봄교실의 설치 및 운영 규정을 마련하려는 시도를 하지만 “학교가 보육기관인가”를 놓고 교육주체 간 견해가 엇갈리면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서이초 교사 사건으로 부각된 ‘교권 추락’ 문제의 원인 중 하나로 ‘학교의 보육기관화’를 꼽는 시각도 적지 않다.

노동시간이 길고 맞벌이 부부가 많은 국내 현실 속 ‘돌봄 공백’ 문제는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극대화된다. 어린이집, 유치원 등은 필요에 따라 오후 6~7시까지 아이를 맡길 수 있지만 초등학교 1학년의 경우 늦어도 1시 30분이면 정규 수업이 끝난다. 육아정책연구소가 지난해 12월 공개한 ‘아동돌봄의 통합적 운영기반 구축연구’ 보고서를 보면 0~12세 자녀를 둔 부모 218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2022년 9월 진행)에서 ‘언제 돌봄공백을 느꼈나’라는 질문에 24.0%(중복응답)가 ‘초등학교 1학년’을 꼽았다. 0세(29.7%), 1세(24.6%)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반면 초등학교 입학 후 돌봄 지원체계와 인프라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해당 연구에서 대학교수, 연구원 등 아동돌봄전문가 60명에게 아동의 연령대별 돌봄지원체계에 대한 평가를 맡긴 결과 임신출산기~유아기(0~6세)의 돌봄지원체계는 5~5.6점(7점 만점)을 기록한 반면 초등 저학년(1~3학년)은 3.7점으로 ‘보통 수준(4점)’에도 못 미쳤다. 늘봄학교와 같은 초등돌봄서비스 외에도 지역아동센터(보건복지부), 다함께돌봄사업(지자체) 등이 취학 후 아동을 위한 돌봄지원제도로 운영 중이다. 서비스 인지도, 만족도, 선호도 등 모든 면에서 초등돌봄서비스가 타 돌봄지원제도를 많이 앞서는 것으로 각종 조사에서 나온다. 정권마다 학교의 ‘보육 기능’을 강화하고 나서는 건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한 결과다.

그렇다고 학교에 보육책임을 더하는 것만이 해법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한성민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투자정책실장은 “여성의 고용률을 보면 특히 30~40대에서 낮은데, 이는 초등학생 자녀를 둔 여성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파악된다”며 “정부가 초등 돌봄 서비스를 확대하며 대응하고는 있지만, 돌봄 서비스에 대한 법적 제도 정비, 양적 확대, 질적 수준을 높이려는 정책적 노력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박민아 정치하는엄마 활동가는 “늘봄학교 시간만 늘리는 데 급급한 정부를 보면 돌봄 업무를 맡는 사람에게도, 돌봄을 맡기는 사람에게도 ‘저녁 8시까지 일하라’고 얘기하는 것으로 들린다”며 “노동시간 단축, 유연근무 확대 등 가정양육 환경을 만들 수 있는 노동여건 개선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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