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가 만든 ‘파이-1.5’와 일론 머스크의 ‘그록’[이경전의 행복한 AI 읽기](2)
지난주도 인공지능 분야는 숨 가쁜 하루하루였다. 마이크로소프트가 11월 6일 파이-1.5(Phi-1.5)를 발표했다. 오픈AI가 챗GPT를 2022년 11월 30일 공개한 이래, 오픈AI의 파트너이자 주요 고객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주가는 1년 내내 상승 중이다.
이렇게 주가가 계속 좋은 이유는 오픈AI에 마이크로소프트가 2019년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를 투자한 데 이어, 2023년 1월에는 100억달러(약 12조원)를 투자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검색 엔진 ‘빙’은 오픈AI의 GPT-3.5와 GPT-4를 전면 사용 중이고, 오피스 제품에도 이들을 적용하고 있다. 이제 마이크로소프트의 시가 총액은 세계 1위 애플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다.
이렇게 오픈AI의 덕을 톡톡히 본 마이크로소프트가 GPT-4를 일부 대체하겠다며 파이-1.5를 내놓았다. 파라미터(외부로부터 투입되는 데이터) 수가 1조개가 넘는다고 추정되는 GPT-4와 비교해 파이-1.5는 13억개이니 1000분의 1 크기다. 물론 크기를 키워 데이터를 많이 입력하면 인공지능의 성능도 더 좋아지겠지만, 문제는 학습시키는데, 그리고 추론시키는 데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이다. 그래서 요즘은 크기를 줄이면서도 같은 성능을 내려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초경량 멀티모달 모델 파이-1.5는 최근의 흐름에 부합한다. 학습데이터를 구하는 데만도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에 착안해 파이-1.5는 챗GPT를 이용해 만든 데이터만 학습해 효율을 높였다. 그 결과 학습 비용(컴퓨터 임대 비용)은 2000달러밖에 안 들었다고 한다.
마이크로소프트 ‘파이-1.5’ 개발의 교훈
오픈AI의 GPT시리즈를 사용해 혁혁한 성과를 내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파이-1.5 개발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려운 업무에는 비용이 많이 드는 GPT-4를 사용하지만 간단한 업무에는 자체 개발한 파이-1.5를 사용함으로써 비용 절감을 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천하의 마이크로소프트라도 인공지능 기술을 오픈AI에만 의존할 경우 여러 위험성이 뒤따를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한 데 따른 혁신 의지라고 볼 수도 있다. 이를 통해 비즈니스에서는 역시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되새긴다. 동시에 어떤 기업이라도 인공지능 기술을 한 회사에 의존하면 안 된다는 점을 여실히 깨우쳐준 생생한 사례다. 독립적인 기술을 갖추려 노력해야 하고, 인공지능 기술을 도입하는 거래처도 다각화해야 한다는 점이 바로 파이-1.5 개발이 일깨워준 교훈이다.
일론 머스크는 지난 11월 4일 자신의 인공지능 전문회사 X.AI가 그록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grok.x.ai’에서 사용신청을 할 수 있는데, 아직 한국에 있는 사용자는 이용할 수 없는 상태다.
캐치프레이즈가 역시 일론 머스크답다. “우주(Universe)를 이해하기 위한 대화형 인공지능”이란다. 그는 이 인공지능의 목적이 우주를 이해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그래서 이름도 그록(Grok)이다. Grok이라는 단어가 좀 생소해 GPT-4에 물었다.
“grok이 understand와 어떻게 다른지 한글로 설명해줘” 이렇게 프롬프트를 입력했다.
“‘grok’이라는 용어는 하인라인의 소설 <낯선 땅 이방인>(Stranger in a Strange Land)에서 유래된 단어로, 단순한 이해를 넘어서서 깊이 있게, 직관적으로, 완전히 이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Understand’가 일반적인 이해를 나타내는 반면, ‘grok’은 보다 심오한 수준의 이해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개념을 ‘understand’한다고 할 때는 그 개념을 알고 그것에 대해 설명할 수 있음을 의미하지만, 그 개념을 ‘grok’한다고 할 때는 그것이 가진 깊은 의미나 본질까지 완전히 통찰하고, 그것이 실제 생활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내면적으로 이해한다는 더 깊은 차원의 이해를 의미합니다.” 이런 답변이 떴다.
머스크가 소설 속 화성어에서 따온 ‘그록’
아, 로버트 A. 하인라인(1907~1988)의 소설에서 처음 나온 단어란 말이야? 스티브 잡스, 벤저민 프랭클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전기를 쓴 월터 아이작슨이 지난 9월에 출간한 일론 머스크의 전기 <일론 머스크>는 7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책이다. 필자는 지난 추석 연휴 기간을 활용해 이 책을 완독했다. 이 전기를 읽어보면 하인라인이 두 번 언급된다. 한 번은 일론 머스크로, 또 다른 한 번은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저스와 관련돼 등장한다. 이 책에 의하면, 10대의 일론 머스크는 지적 능력이 특출하고 게임을 즐기는 아이들 지혜의 원천으로 알려진 공상과학 소설들에서 많은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 학교와 지역 도서관의 공상과학 섹션을 죄다 휩쓸고 다니며 사서를 졸라 더 많은 책을 주문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가 가장 좋아한 책 중 하나가 바로 하인라인의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이다. 이 책은 달에 범죄자들을 보내 식민지를 건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식민지는 자기 인식과 유머 감각을 획득할 수 있는 마이크라는 별명의 슈퍼컴퓨터가 관리하는데, 식민지에서 반란이 일어나 세를 키우자 그 컴퓨터는 자신을 희생시킨다. 이처럼 이 책은 훗날 머스크 삶의 중심에 자리 잡게 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인공지능은 과연 인류를 보호하고 이롭게 하는 방식으로 발전할 것인가, 아니면 기계 스스로 의지를 갖게 되며 인간에게 위협이 될 것인가?
GPT-4에 한 번 더 물었다. “하인라인의 소설 <낯선 땅 이방인>(Stranger in a Strange Land)은 도대체 뭐야?”
그의 답이다.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소설 <스트레인저 인 어 스트레인지 랜드>(Stranger in a Strange Land)는 1961년에 출간된 고전적인 과학 소설입니다. 이 작품은 화성에서 인간에 의해 키워진 인간 남성, 발렌타인 마이클 스미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그는 지구로 돌아온 후 지구의 문화와 사회에 적응하려 노력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과 화성에서 배운 초자연적 능력을 통해 인간 사회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소설은 당시의 사회적·종교적·성적 규범에 대한 도전과 탐구를 통해 인간 본성과 사회의 모순에 대해 심오한 물음을 던집니다. ‘Grok’이라는 용어는 이 소설에서 처음 소개됐으며, 지구의 언어로 완벽하게 번역될 수 없는 화성어로서, 완전하고 직관적인 이해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됩니다. 이 소설은 하인라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로, 과학 소설의 고전으로 꼽히며 많은 독자와 평론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았습니다.”
과연 일론 머스크답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SF작가 하인라인의 소설에서 나온 신조어, 화성어인 Grok을 서비스 이름으로 선택했다. 일론은 지난 4월 마약, 범죄, 폭력, 핵무기 등에 관한 질문에 답변을 회피하는 오픈AI의 챗GPT를 비판하면서 자신은 오직 진실만을 추구하고, 모든 질문에 답변하는 ‘TruthGPT’를 만들어 발표하겠다고 했다. 그 약속을 어느 정도나마 지키려는 의지가 보인다.
일론 머스크는 지난 11월 4일 다음과 같은 포스팅을 X(트위터의 새로운 이름)에 올렸다.
이 이미지를 AskUp에 넣었더니 글자를 인식해준다. 이 내용을 GPT-4에 번역을 맡겼더니, 마약 관련 내용이라며 번역을 거부한다. 할 수 없이 DeepL에 번역을 맡겼더니 해준다. 마약에 관한 내용이라며 번역은커녕 답변조차 하지 않는 GPT-4가 옳을까, 아니면 범죄의 실행 여부는 인간의 의사결정에 맡기고, 마약 제조법에 대해서는 답변을 제공하는 그록이 옳을까. 어떤 정책이 바람직할까? 생각해볼 문제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학과·빅데이터응용학과·첨단기술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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