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원들이 성에 차지 않습니다”[안주연의 다시, 연결]
2023. 11. 13. 07:01
[안주연의 다시, 연결]
저는 B사 총괄마케터입니다. 최근 들어 혼자 일하는 게 맞을지, 직원으로 계속 일할지 고민이 됩니다.
팀원들끼리 단체톡방이 있다는 것도 최근에 알았습니다. 그것은 상관이 없지만, 그 방에서 저를 뒷담화하는 정황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낙하산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고 일을 많이 시킨다고요. 일이 많은 편입니다. 위에서 내려오면, 제 선에서 처리하고 직원들에게도 분담합니다. 저 역시 많은 업무를 부담하느라 휴일에도 일을 합니다. 그게 옳은 건 아니지만 싫다고 불평한 적도 없습니다.
상사라도 믿고 의지할 수 있으면 계속 회사를 다니려고 했는데 사장도 저보다 오래 일한 팀원의 편이란 생각이 듭니다.
양쪽에서 관계가 어긋난 느낌이 들어 고립된 것 같습니다. 심리적 ‘왕따’인 것 같고요. 저는 회사의 주인이라 생각하며 변화와 혁신을 추구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성에 차지 않습니다.이젠 나가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만두자니 우산이 사라지는 것 같고 창업에 자신이 떨어집니다. 나서서 주도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창업을 하는 게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는 덜 받을까 싶어 고민하게 됩니다.
선미(가명) 님, 반갑습니다.
직장에서의 갈등으로 힘드시겠지만, 선미 님에게는 앞으로의 진로를 고민하며 본인의 성향에 대해서도 되짚어보는 중요한 시점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적절한 시점에 본질적 질문을 던지는 선미 님의 사연이 반갑기도 하고 묵직하기도 합니다.
‘나의 성향을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일하며 살아가야 할 것인가’는 여러 회기의 대면 상담으로도 다 논하기 어려운 포괄적인 주제입니다. 그래서 이 답장에서는 선미 님이 지금의 고민을 해나가며 생각해볼 몇 가지 포인트를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이 논점들이 선미 님이 스스로를 이해하고 만족스러운 진로 방향을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현 상황을 정리해 보자면, 중견기업 총괄마케터로 스카우트되어 열심히 일해왔으나 팀원들이 선미 님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엇나간다고 느끼며 스트레스가 시작되었습니다.
최근에는 팀원들이 단체대화방에서 선미 님의 뒷말을 하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 사장은 오래 있던 팀원의 편을 들거나 방관하는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성과를 내려고 열심히 일했는데 양쪽에서 관계가 어긋나 고립된 느낌에 억울하고 잠이 오지 않을 지경입니다. 보호해주던 우산이 사라지는 것 같고 나이도 마음에 걸려 이직이나 퇴사를 생각하기가 어렵지만, 나서서 일하는 본인 성향과 관계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창업이 답인가 고민된다고 하셨습니다.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이 없어진 요즘 많은 직장인들이 이직이냐 창업이냐의 고민을 합니다. 대학 때부터 창업 및 업장 운영, 직장생활 경험을 두루 가지고 성과를 내오신 선미 님이라면 더 선택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우선 이런 때일수록 급변하는 주변 상황보다는 선미 님 내면의 자원들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하였지요. 선미 님의 강점과 약점, 일을 해나가는 태세와 취향을 조망하면, 어떤 일에 유리하고 어떻게 포지셔닝하는 것이 스트레스를 덜 받을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제가 느낀 선미 님의 특성은 유능하고, 업무지향적이며, 주관이 뚜렷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감각도 뛰어나고 창의적인 일, 새로운 것을 기획하는 일을 잘하시는 듯합니다. 또한 즉흥적이고 성격이 급하며 효율을 중시하는 편이어서 답답함을 잘 못 참고, 이런 면들로 인해 팀원들과 관계가 틀어지게 된 게 아닌가 하셨습니다. 즉 선미 님은 성취감, 효능감, 영향력을 중심으로 직업과 사람들을 바라보고 계신 것 같습니다.
선미 님, 그동안 함께 일해온 사람들을 돌이켜보세요. 선미 님과 비슷한 정도의 열정과 성과주의를 가진 사람이 많았나요. 많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본인의 업무 탁월성은 타고났고 길러온 부분이며 자랑만도 흉만도 아니고, 다원적인 삶의 목표를 갖거나 업무에 매진하지 못하는 사람도 열등한 것만은 아님을 깨닫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자기 인지를 통해 본인이 평균보다 성과지향적이며 인정욕구가 높다는 점을 중립적으로 받아들이면, 높은 기여를 하지 않는 팀원들을 답답해하는 일이 줄어들 것입니다. 이런 인지는 평균적인 업무 몰입을 가진 팀원들이 과도한 압박을 받지 않으면서 성과를 높일 수 있는 관리 계획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창업을 하든 근속을 하든 좋은 팀을 만들어 성과를 내기 위해 꼭 갖춰야 하는 덕목입니다. 본인의 성향에 대한 객관적 인식과 나와 다른 타인에 대한 수용이 없다면, 선미 님의 장점이 소통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주세요.
의사소통에 대해서도 살펴볼까요. 지인들은 출근 전부터 지시를 하던 사장님의 태도를 걱정했으나, 선미 님은 성과를 보이고 싶고 사장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는 이유로 무리한 업무 요청을 수용하며 일해왔습니다. 선미 님의 일을 되게 하려는 성향, 팔로십이 드러납니다. 그것이 다일까요? 사장님의 워커홀릭 성향이 선미 님이 업무에서 지향하는 변화, 기획, 성과, 효율의 리듬과 속도에 부합하기에 그 요청에 더 적극적으로 부응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사장님이 선미 님에게 개혁 및 성과를 내는 중역이면서 기존의 팀원들을 잘 리딩하는 팀장의 모습까지 기대했기에 이 지점에서 어긋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사실 조직적으로나 인간관계적으로나 팀원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설득해볼 책임 및 권한은 선미 님에게 있다는 것을 선미 님도 무의식적으로는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해요. 동물적 감각이 뛰어나고 직관적인 타입이라 논리적, 감성적으로 설득하는 일이 번거로운 선미 님에게는 이런 과정이 시간낭비처럼 느껴질 수 있고, 팀원들이 본인이 사장에게 그랬듯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으면 하겠지만 서열문화가 약화된 요즘에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물론 성과를 이루고 싶을 때는 선미 님의 저돌성을 부추기다가 팀이 깨질 것 같으니 다른 직원들을 케어하며 조변석개하는 사장님의 모습은 많이 아쉽습니다. 그렇지만 바로 지금이 사장님이 원하는 변화의 속도와 방향은 어떠한지, 어디까지 지원해줄 수 있는지, 직원들의 동요에는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 사장님과 솔직하게 대화할 적기입니다. 꼭 시도해보셨으면 합니다.
일이 삶의 의미인 선미 님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든 시도하고 해냅니다. 그러나 동료들에게는 선미 님의 업무에 대한 기준과 기세에 완벽하게 동조하고 협조하기를 은연중에 바라고, 그렇지 않을 때는 이것을 본인이라는 사람에 대한 거절이나 무시로 느끼고 괴로워하시는 듯합니다.
그리고 이 고통과 실망이 성찰과 개선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분노, 오기 등의 감정과 복수의 다짐으로 연결되는 것 같아요. 이는 내재된 분노나 해소되지 않은 슬픔 때문일 것으로 생각되며 전문가와의 깊은 상담이 필요해 보입니다.
선미 님의 생존과 성과가 중심이 된 삶, 쉬었던 한두 달을 ‘힘들다’로 표현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궁금함과 안타까움이 동시에 일었습니다. 그동안의 노력과 치열함에 수고하셨다고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일에서만 보람과 재미를 찾으신다면,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번아웃이 올 수도 있습니다. 일을 잘하는 것만큼 집을 살기 좋게 유지하는 것, 깊은 인간관계를 가꿔가는 것, 취미를 발전시키는 것, 휴식을 취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것도 소중한 삶의 영역들입니다. 더욱 오래, 더 넓고 멋지게 일하기 위해서도 좀 더 균형 잡힌 삶을 일궈 가시기를 강력히 권유드립니다.
선미 님, 막막하고 지친 지금이 오히려 자신과 삶의 여러 부분에 대해 넓게 조망해보고 큰 그림을 그릴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선미 님의 근성과 능력에 따뜻하고 균형 잡힌 자기 이해와 삶의 방향 설정이 더해진다면 어디에서든 더 담대한 실천가이자 리더로 성장해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미 님, 언제나 삶은 일보다 더 큽니다. 워커홀릭 선미 님의 라이프홀릭을 응원합니다.
안주연 마인드맨션의원 대표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한경비즈니스는 ‘안주연의 다시, 연결’을 연재하며 독자에게 상담 편지를 받고자 합니다. 직장인 마음 상담을 주제로 다양한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안주연 마인드맨션의원 대표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 직접 답하겠습니다. poof34@hankyung.com으로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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