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료 값은 하락했는데 먹거리 물가는 고공행진…기업 탐욕 탓?

농심·빙그레 등 식품기업 영업이익 호조…“기업만 이익 아닌지 의심” 비판도

서울 한 대형마트 매장에서 장을 보는 소비자. 연합뉴스 자료 사진

먹거리 물가가 상승 행진을 이어가면서 기업의 이윤 추구가 물가상승(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는 ‘그리드플레이션’(Greedflation)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밀·옥수수 등 주요 식품 원료의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식품 기업들은 좋은 실적을 냈기 때문이다.

13일 시카고상품거래소(CBOT) 선물 시장 등에 따르면, 이달 밀의 부셸(곡물 중량 단위·1부셸=27.2㎏)당 가격은 평균 5.69달러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가격이 치솟았던 지난해 5월 평균 가격(11.46달러)에 비해 50.3% 하락했다. 밀은 빵·과자·라면 등 식품의 주원료로 쓰인다. 다른 주원료인 대두의 경우 지난해 3월 16.73달러까지 올랐다가 이달 13.40달러로 19.9% 하락했다. 팜유(-41.8%), 옥수수(-39.4%), 대두유(-38.3%) 등의 가격도 정점 대비 내림폭이 컸다. 이들 원료 가격은 지난해 5월에 정점을 보인 바 있다.

이처럼 주요 식품 원자재의 가격이 하락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물가 상승 폭은 여전히 높다.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가공식품 물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6% 상승했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연간 상승률(7.8%)보다 0.2%포인트 낮아지는 데 그친 것이다.

외식 물가는 올해 같은 기간 6.4% 상승했다. 지난해 연간 상승률(7.7%)보다 1%포인트 넘게 떨어지긴 했으나, 지난해를 제외하면 1994년(6.8%)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식품 기업들의 ‘그리드플레이션’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적잖다. 기업들이 원자재 가격이 올라갈 때는 이를 즉각 반영하지만, 가격이 떨어질 때는 반영하지 않거나 훨씬 늦게 반영한다는 것이다. 그리드플레이션은 탐욕(greed)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기업의 이윤 추구가 물가 상승을 초래한다는 의미를 담은 용어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농심의 영업이익은 1175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204.5% 증가했다. 빙그레(160.3%)도 세 자릿수 이상의 영업이익 증가율을 기록했다. 해태제과(75.5%), 풀무원(33.2%), 동원F&B(29.7%), 오뚜기(21.7%), 삼양사(20.3%), SPC삼립(16.2%) 등 주요 기업들의 영업이익 증가율도 두 자릿수 이상으로 호조를 보였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지난 10일 성명을 내고 "(식품 기업들이) 원재료가 하락한 상황에서도 기업들 자신만의 이익만을 채우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원재료 가격이 뚜렷한 하락세로 나타난 만큼 소비자 가격 역시 조정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식품 업계는 수익성 지표인 영업이익률(영업이익을 매출액으로 나눈 값)이 다른 업종보다 낮다는 점을 내세우며, 그리드플레이션에 대한 비판은 과도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다른 제조업계의 통상 영업이익률은 10%를 상회하며, 밀 등의 가격은 내리고 있으나 다른 원재료 가격이 올라가고 있어 식품 가격을 쉽게 내릴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원재료 중 전분·설탕 등 가격이 상승한 품목도 있으며 인건비와 연구개발비 등 다른 비용 항목도 제품 가격 산정에 반영된다"며 "한 자릿수 영업이익률을 거두고 있는데 ‘폭리를 취한다’고 비판받는 건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노기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