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 야구 인생' 유니폼 벗는 김지용 "양상문 감독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두산에 꼭 은혜 갚겠습니다"

김용 2023. 11. 13.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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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김용 기자] "코치로 두산에 입은 은혜를 꼭 갚고 싶습니다."

2023 시즌을 마친 두산 베어스. 선수단 개편 작업을 진행중이다. 장원준의 은퇴 선언으로 인해 스포트라이트가 그쪽으로 집중됐지만, 또 한 명의 선수가 유니폼을 벗기로 했다. 투수 김지용이다.

두산보다는 LG 트윈스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선수. 파란만장한 야구 인생을 살았다. 한편의 영화로 제작해도 될 정도다.

고교 시절 야수였다. 덕수고에 자리가 없어 중앙고로 전학을 갔다. 프로 지명은 꿈도 꾸지 못했다. 야구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할 때 신생팀 강릉영동대의 부름을 받았다. 그리고 투수 전향이라는 모험을 택했다.

투수가 더 몸에 맞는 옷이었다. 졸업하는 해 성적이 좋았다. 2010년 드래프트 2차 9라운드로 LG 지명을 받았다. 김지용은 당시를 떠올리며 "아마추어 시절에는 프로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실력이 없었다. 그저 야구가 좋아 끈을 놓지 못했었다. 그런데 영동대에서 생각지도 못한 발전을 이뤘다. 그렇게 LG에 입단하게 됐다. 꿈인가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2년차에 어깨가 아팠다. 김지용은 "신인이고 어렸다.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몰랐다. 아프다고 말도 못했고, 치료도 못 받았다. 혼자 속앓이만 하다 시간이 흘렀다"고 돌이켰다. 그렇게 공익근무요원으로 병역 의무를 수행했다.

이 때가 김지용 야구 인생의 첫 번째 터닝포인트였다. 김지용은 "LG 2군에서 지도해주시던 최원호 코치님(현 한화 감독)께서 피칭연구소를 차리셨다. 이종열 코치님(현 삼성 단장)도 많이 도와주셨다. 그 때 근무 끝나고 함께 세미나를 하고, 야구 공부도 했다. 쉬면서 어깨도 좋아지고, 투구 매커니즘도 새롭게 만들다 보니 구속이 확 늘었다"고 설명했다.

김지용의 야구 인생을 진짜로 바꾼 건 2014년이었다.

2013년 병역 의무를 마친 뒤 2014년 신고선수로 다시 등록이 돼 2군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차였다.

9월 인천 아시안게임이 열렸고, 최정예 멤버로 구성된 대표팀은 연습 상대가 필요했다. LG가 파트너였다. 당시 LG에서는 2군에서 던지던 투수들을 불러 '배팅볼 투수' 역할을 맡겼다.

'명 투수 출신' 양상문 감독(현 SPOTV 해설위원)이 김지용의 능력을 한눈에 알아봤다.

슬라이더가 예술이었단다. 2015 시즌 스프링캠프. 당장 김지용의 자리가 생겼다. 그리고 4년 동안 '인생의 황금기'를 보냈다. LG의 필승조로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2016 시즌에는 포스트시즌에서도 중용되며 꿈 같은 나날을 보냈다.

김지용은 "양 감독님은 나에게 은인이다. 감독님 때문에 야구를 10년은 더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양 감독이 있던 시절 김지용이 너무 많이 던져 부상을 당한 게 아니냐고도 한다. 하지만 김지용은 "감독님께서 나에게 늘 미안해 하신다. 너무 많이 던지게 한 것 아니냐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난 감독님께 고마운 마음 밖에 없다"고 감사해 했다.

김지용은 이어 "나는 필승조 치고 적게 던졌던 편이다. 몸이 안 따라줬다. 체격이 크지 않다 보니, 확실히 부상이 빨리 오더라. 그게 아쉬웠을 뿐이다. 운동을 게을리 한 것도 아니었는데"라고 말했다.

2018년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하는 투수들은 팔꿈치 부상을 피해가기 힘들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을 날렸다. 김지용은 "수술 하고 2군에 있을 때 마음이 너무 아팠다. 1군에서 뛰던 때가 그리웠다. 그래도 3년 동안 희망을 생각했다. 그런데 LG에서 내 자리는 없었다. 후배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더라. 나는 1군 투수가 되고 싶었다. 구단에 간절한 마음으로 방출을 요청했다. 그리고 두산에서 부족한 내게 입단 제의를 해주셨다. LG, 두산 양 구단 모두 감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산에서의 2년간도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나이를 먹었고, 떨어진 구위를 끌어올리는 게 쉽지 않았다. 김지용은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했다. 어떻게든 나를 받아주신 두산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좋았을 때 구위가 안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두산은 김지용의 이런 노력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올 시즌 중반 플레잉코치로 정식 등록을 시켰다. 지도자로서의 발전 가능성을 본 것이다. 이제 선수는 끝이지만, 두산은 그와 정식 코치 계약을 할 예정이다. 보직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김지용은 이미 이천 마무리캠프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김지용은 "선수 생활을 그만둔 아쉬움보다, 그저 두산에 미안한 마음 뿐이다. 힘들 때 내 손을 잡아주셨는데, 난 해드린 게 아무 것도 없다. 그래도 지도자 생활을 두산에서 시작하게 됐으니, 만회할 기회가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선수로서 못한 걸 지도자로 꼭 갚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어 "나는 누구보다 많은 경험을 했다. 잘했던 적, 못했던 적, 아팠던 적 다 있었다. 이 경험들을 바탕으로 후배들을 많이 도울 수 있을 것 같다. 1군이든, 2군이든, 재활군이든 들려줄 얘기가 많다. 그게 지도자로서 내 무기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김지용은 어떤 선수로 팬들의 기억에 남고 싶을까. 그는 "위기 상황에서 늘 씩씩하게 막아냈던 김지용으로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김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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