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넘고 물 건너… 오지 환자들의 ‘등불’ [심층기획-지역의료 돌파구를 찾자]
왕진의사 양창모 원장 동행기
강원의료협동조합·水公 지원
차 타고 배로… 수몰지구 방문
거동 불편한 노인들의 주치의
춘천선 호호센터 양창모 원장 유일
방문 진료 5개면 주민 3만여명 중
연간 150여명만 재택 서비스 받아
고령화 가속… 농촌 의사 수 3.9%뿐
왕진수가 높인다고 해결될 일 아냐
국가서 전담, 전문인력 양성 나서야
“허리가 굽나 봐. 누가 그러는데 내가 걸을 때 엉덩이가 뒤로 나온대.” “안 좋은 신호네요. 처음 그렇게 시작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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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부까지 물으며 ‘따뜻한 진료’ 강원 춘천시 유일의 왕진 의사 양창모 호호방문진료센터 원장(가운데)과 최희선 간호사(왼쪽)가 7일 동면 신이리 소양강댐 수몰지역 한금자(80)씨 집 거실에서 한씨의 혈당과 혈압을 확인하며 방문진료를 하고 있다. 비교적 간단한 무릎 관절염 치료만 진행된 한씨 진료에는 30여분이 걸렸다. 다른 아픈 곳은 없는지, 못 만난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세세하게 묻고 답하며 이들은 이날 일반 한국 병원 진료실에서 좀체 경험할 수 없는 의료 서비스를 보여줬다. 춘천=남정탁 기자 |

이날 양 원장은 허리 통증에 시달리는 부부에 시술하기 위해 왔다. 병원 같았으면 바로 관련 증상에 관한 짧은 대화가 이어진 뒤 처방이나 치료가 시작됐겠지만 이곳 분위기는 달랐다. 양 원장은 우선 환자의 말을 들었다. 대화가 농담 등으로 이리저리 튀는데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중간중간 ‘음’, ‘음’ 하며 호응하며 계속해서 더 많은 말을 꺼내게 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처음 피웠다는 난로에서 퍼지는 훈기에 나른함마저 느껴졌다. 일반 병원 진료실의 차가운 긴장감은 없었다.
한참 대화 뒤 진료 기록을 다시 확인한 양 원장은 “허리 치료한 지 오래되셨네. 오늘 주사 맞으셔야 할 것 같으냐”고 물었다. “네”라고 김씨가 답하자 “알겠다”고 하며 주사 놓을 준비를 했다. 치료에 대한 결정권도 의사가 아닌 환자에게 있었다.

양 원장이 이 일을 하기 전 시내 병원에서 봉직의로 일했을 때 재본 환자 1인 진료시간이 6분이었다고 했다. 병원 측으로부터 그 시간도 줄여달라는 압력을 받았단다.
컨베이어벨트 같은 이 진료 시스템을 그는 ‘마치 오디션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짧은 순간 환자는 지난번 진료와 이번 진료 두 달 사이 있었던 것을 다 전해야 하고 의사 역시 그 짧은 시간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하는 오디션 장면은 이날 동행 취재 현장에 없었다.


이어 방문한 한금자(80)씨 집. 양 원장 일행은 문을 열고 제집인 양 들어가며 주인을 찾았다. 양 원장을 보자마자 한씨는 14일 동안 앓았다고 하소연했다. 독감에 걸렸던 것이다. 그는 “혼자 아프다 혼자 죽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수몰 전부터 이곳에서 산 한씨는 남편과 사별했고 자녀는 도시로 나가 혼자다. 두런두런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양 원장이 최근 병원을 다녀온 한씨에게 처방전 목록을 보여달라고 했다. 모르는 약은 일일이 스마트폰으로 약전을 뒤져 성능을 확인했다. 약 대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양 원장은 “혈압약은 양을 좀 줄여도 될 것 같은데 다음에 병원에 가면 물어보라”고 한씨에게 말했다. 양 원장이 특히 신경 쓰는 게 약이다. 한국에 중복·과잉 처방이 많아서다.

뒤에서 “어머니 냉장고 좀 열어볼게요”라고 말한 최재희 케어 매니저가 집안 살림살이를 들여다봤다. 최 매니저는 진료 일정을 잡는 게 주 업무지만 필요시 생활환경 개선과 요양보호사 연결 등의 업무도 지원한다. 최근 공들이는 일은 주거개선 사업이다. 미끄러운 욕실 바닥 타일 보수, 안전 손잡이 설치, 턱 난간 제거 작업 등이다.

시골에선 이동할 수 있어도 병원 찾는 일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체 의사인력 중 농촌지역 의사 수는 3.9%에 불과했다. 춘천이 속한 강원도의 경우 같은 해 국토교통부가 분석한 결과 가장 가까운 병원까지 도로 이동거리가 22.73㎞로 서울 1.97㎞의 20배가량 됐다.
양 원장이 올해까지 4년째 방문진료를 할 수 있는 건 센터가 속한 강원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과 한국수자원공사의 도움 덕이다. 조합이 이 사업을 기획했고, 수자원공사는 필요한 경비를 댄다. 소양강댐이 수자원공사 관할이라서다. 하지만 3명의 인건비와 사무실임대료, 차량유지비, 약제비 등 모든 비용을 포함한 센터 1년 운영비는 지난해 한국 의사 1인 평균소득보다 적다. 센터는 방문진료 시 어떠한 돈도 받지 않는다.
이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민간 조합과 공기업이 대신하는 기형적인 시스템이다. 양 원장은 “왕진 수가를 높이는 것만으로 방문진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보다 중요한 것은 왕진의 주체가 민간 의료가 아니라 공공의료 영역으로 바뀌는 것이다. 방문진료 전담 기관을 만들고 전문인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춘천=나기천 기자 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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