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안전" 이유로 유지보수 독점한 코레일, 외주사에 1300억 썼다

이민하 기자 2023. 11. 13.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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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성 주장 '민영화' 반대 외치던 코레일…민간 용역업체에 1300억원 규모 외주
(서울=뉴스1) 황기선 기자 = 한국철도공사 서울본부 모습. 2023.3.8/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철도시설 유지보수 업무를 독점 수행하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이미 업무의 상당 부분을 민간 외주업체 등에 맡겨 온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코레일이 해당 업체들에 지급한 비용만 1300억원에 달했다. 그동안 코레일이 주장해 온 유지보수 업무의 '일원화'와 상반된 행태라 작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코레일은 철도 시설의 경우 안전상의 이유로 열차 운행과 유지보수 업무를 모두 코레일이 독점적으로 맡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12일 국회 등에 따르면 철도시설 유지보수 업무를 사실상 독점하는 코레일이 이미 유지보수 업무의 14%를 외주화했다. 관련 외주업체는 지난해 코레일테크 등 일반철도 관련 120개, 고속철도 관련 105개 등 225개로 확인됐다.

코레일은 225개 외주업체에 1300억원가량을 업무비용으로 지급했다. 국가 철도공단에서 제출받은 '2022년 유지보수비 정산서'에 따르면 지난해 철도공단에서 유지보수비로 코레일에 지급한 총금액 9182억원 중 외부 업체 보수비는 1295억원이다. 이는 총금액 중 인건비성 비용을 제외한 보수비의 60% 수준이다. 지난해 일반 철도 유지보수 비용은 7367억원이다. 이 가운데 816억원이 외주용역 비용으로 쓰였다. KTX가 다니는 고속철도는 전체 유지보수 비용 1814억원, 외주 비용은 478억원이 집행됐다.
코레일의 철도 유지보수 업무의 외주용역은 그동안 표명했던 '일원화' 원칙과 배치된다. 코레일과 철도노동조합 등은 철도 유지보수 업무를 여러 기관이 나눠서 시행하면 국가 철도시설에 대한 안정적인 유지관리가 어렵다며 코레일 독점구조를 고수해왔다. 한문희 코레일 사장은 이달 7일 기자간담회에서 '코레일 일원화'를 거듭 강조했다. 한 사장은 "철도는 다른 교통 인프라에 비해 밀접도가 높기 때문에 아무래도 유지보수나 운행이 통합돼 이뤄지는 게 좋다"고 말했다.
코레일 시설 유지보수 업무 독점 바꾸는 '철산법' 개정 추진
철도시설 유지보수 업무는 원래 철도공단의 역할이지만, '철도산업발전기본법(철산법)'으로 코레일에 위탁하도록 정해뒀다. 현행 철산법 제38조는 '시설유지보수 시행 업무는 철도 공사(코레일)에 위탁한다'라고 명시해 사실상 코레일의 독점적 업무 지위를 보장한다.
그러나 열차탈선 사고와 작업자 사망 사고 등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코레일의 독점적 시설 유지보수 업무를 철도공단 등 다른 기관에 이관하자는 목소리가 커진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3월부터 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이달 중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국회에서는 지난해 12월 조응천 의원(더불어민주당) 발의로 해당 단서 규정을 삭제해 다양한 기관이 유지보수를 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추진 중이다. 단서 조항을 삭제해 코레일 외에 다른 기관 등이 철도 유지보수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법이 개정되면 철도산업은 과거 철도청 해체 이후 가장 큰 변화를 맞는다. 열차 운영부터 시설유지보수, 철도 교통관제·운영까지 맡았던 독점적 기관인 코레일의 위상과 역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코레일 외에도 공단, 제3의 기관 등이 철로 유지보수 업무를 맡을 수 있다.
코레일·철도노조 "민영화 촉진" vs 철도공단 "이미 위탁업무"
코레일과 철도노조는 크게 두 가지 이유로 법 개정에 반대한다. 첫째는 안전상의 문제다. 철도 유지보수는 열차 운행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지는 작업으로 열차 운영사에서 수행해야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작업이 가능하다는 이유다. 그러나 철도청이 해체됐던 2000년 초와 달리 현재 철도산업 환경이 크게 달라졌다는 반론이 나온다.

과거에는 코레일이 유일한 운영사였지만, 현재는 에스알(SR)·공항철도(AREX)·신분당선(네오트랜스)·진접선(서울교통공사) 등 여러 운영사가 존재한다. 철도공단 관계자는 "코레일이 운영하지 않는 노선들도 현행법에 따라 운영기관이 아닌 코레일이 일괄 유지보수를 맡는 기형적인 구조가 만들어졌다"며 "GTX 등 광역철도까지 늘어나면 이 같은 문제가 더 복잡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이유는 법이 개정되면 유지보수 업무를 외부 업체에 위탁할 수 있어 민영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철도노조는 국회 국민동의 청원을 통해 철산법 개정의 논의 중단을 요구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미 코레일에서 유지보수 업무의 상당 부분을 외부 업체에 용역을 맡긴다. 익명을 요구한 철도업계 관계자는 "코레일이 민간업체에 위탁하는 행위는 민영화가 아니고, 국가 사무를 대행하는 철도공단이 민간에 위탁하는 것은 민영화라는 주장은 '내로남불' 그 자체"라고 했다.
철도 시설 유지보수 체계 '구멍'…연 1조원 쓰는데 시설 노후화 개선 안 돼
현재 철도 시설 유지보수 체계는 안전 관리에도 '구멍'이 생겼다. 코레일과 철도공단 간 기형적인 업무 구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극단적인 예로 교량 위를 지나는 선로가 있다면 코레일은 선로만, 철도공단은 교량만 따로 점검하는 식"이라며 "시설 유지보수 체계에 구멍이 뚫려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안전 투자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연 유지보수 비용 1조원 중 70~80%가 인건비·경비로 쓰일 정도로 코레일은 인력 중심 구조로 보수비를 늘려 안전 투자에는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두 기관 사이에 유지보수 원가나 이력 관리 공유도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철도공단의 적극적인 투자도 기대하기 어렵다. 안전사고를 줄일 수 있는 지능형 폐쇄회로(CCTV)나 사물인터넷(IoT) 기반 철도 시설물 원격감시 등 첨단화 설비투자는 미미하다. 2021년 기준 철도시설 중 노후화로 안전 'C등급' 이하를 받은 시설이 절반(54.7%)을 넘는다.

이민하 기자 minhar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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