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크러시〉 제작진, “아직 많은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김영화 기자 2023. 11. 13.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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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크러시〉는 이태원 참사의 진상규명을 돕는 하나의 기록이다. 한국처럼 대규모 군중을 다루는 데 경험이 많은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비극이 일어났는지 묻는다.
이태원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크러시〉.ⓒ파라마운트+ 제공

열차에 사람이 너무 많을 땐 타지 않는다. 인파가 몰리는 곳은 되도록 피한다. 지하철 승강장에 서 있는 아리아나 이바라 씨의 얼굴을 비추며 다큐멘터리 〈크러시(Crush)〉는 시작한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온 그는 1년 전 10월29일 이태원을 찾았고, 거기에서 친구 앤을 잃었다. 트라우마와 자책감이 짓누르는 기억을 지닌 채로 서울을 떠날 수 없었다는 이바라 씨는 “친구들을 기억하기 위해”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그날 휴대전화로 찍은 영상들이 참사를 이해하는 하나의 단서가 되길 바라면서.

미국 방송사 CBS가 운영하는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파라마운트+’에 단독 공개된 다큐멘터리 〈크러시〉는 그날의 이태원을 치밀하게 파고든다. 첫 112 신고가 이뤄진 오후 6시34분, 8시, 9시7분, 9시51분, 서울시 재난안전상황실에서 처음 사태를 인지한 10시44분…. 생존자와 유족, 중앙응급의료상황실 관계자 등 28명의 증언을 차분히 따라가는 90분짜리 다큐멘터리는 다시금 풀리지 않는 질문에 당도한다. ‘한국처럼 대규모 군중을 다루는 데 경험이 많은 국가에서 왜 그 많은 청년들이 목숨을 잃었나.’ 생존자의 휴대전화 영상과 현장 주변 CCTV, 119 구조대원들의 보디캠 등 1500시간에 달하는 영상 자료를 바탕으로 그날을 재구성했다는 점에서 진상규명을 돕는 하나의 기록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 제작자는 한국인이 아니다. ‘올 라이즈 필름즈’의 제프 짐벌리스트는 실제 사건에 바탕을 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왔다. 넷플릭스의 음악 다큐멘터리 ‘리마스터드’ 시리즈에 이어 최근에는 2017년 라스베이거스 공연장 총기 난사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일레븐 미니츠(11Minutes)〉로 크리스토퍼 어워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에미상을 수상한 다큐멘터리 제작자 조시 게이너도 〈크러시〉 공동 총괄 제작자로 한국에서의 취재와 촬영을 담당했다. 탐사보도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두 감독에게 한국의 이태원 참사를 기록하는 것이 왜 중요했을까. 〈시사IN〉은 10월28일 서면 인터뷰를 통해 직접 물었다.

‘올 라이즈 필름즈’의 제프 짐벌리스트(오른쪽) 〈크러시〉의 총괄 제작자다. ⓒ제프 짐벌리스트 제공

이태원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한국에서 예고편조차 볼 수 없다. 일부 한국 시청자들은 가상사설망(VPN)으로 우회 접속하는 방법으로 다큐를 보고 있는데.

제프 짐벌리스트(제프):우리는 제작팀이라 배급 결정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파라마운트+와 제작사 간의 영상 공급 계약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애초에 미국 시청자를 타깃으로 만든 건가?

제프:우리가 만드는 모든 콘텐츠는 가능한 한 많은 시청자에게 다가가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다큐멘터리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시청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태원 참사를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한국 사회에서는 세월호 참사 이후 집단적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킨 사건이지만, 미국에서는 해외에서 일어난 많은 사건 중 하나가 아니었나?

제프:처음에는 어떤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어떻게 의료시설과 경찰 등으로 둘러싸인 대도시 지역에서, 더군다나 시위와 축제 등 대규모 군중을 다루는 데 경험이 많은 나라에서 이런 규모의 비극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좀 더 보편적인 질문이 들었다. 우리 모두 붐비는 지역에 가본 적이 있는데 이때처럼 상황이 위험해지면 어떨까?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으려면 우리 모두가 무엇을 해야 하나? 처음부터 우리의 목표는 그날 밤 이태원에 있던 사람들의 눈을 통해 비극을 들여다보고 참사를 예방할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었다.

국내 언론에 거의 공개되지 않은 방대한 분량의 영상들로 이태원 참사를 시간대별로 재구성했다.

제프:시청자들이 정치적 상황이나 분석에 얽매이지 않고 비극에 몰입해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했다. (참사와 관련한) 헤드라인 뉴스가 자주 등장하고 사라지기 때문에, 직접적인 스토리텔링을 통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즉각적이고 본능적이며 개인적인 것에 더 깊이 연결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이 다큐 시리즈는 인터뷰이들과 함께 슬퍼할 뿐 아니라 그들의 회복력과 용기를 축하하고 머리뿐만 아니라 가슴으로 사회변화를 고민하도록 유도한다.

내가 〈11Minutes〉를 제작한 의도와도 같다. 논란이 되고 분열을 야기하는 이슈에 대해 사람들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신의 견해를 재고하도록 영향을 주는 것이다(파라마운트+ 다큐멘터리 〈11Minutes〉는 미국 역사상 총기 난사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라스베이거스 총격 사건을 다룬다. 2017년 10월1일 라스베이거스 뮤직 페스티벌에서 벌어진 무차별 총격으로 58명이 사망하고 8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제프 짐벌리스트는 2022년 9월27일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비극적인 사건이 기억에서 잊힌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를 계속 유도할 수 있을까? 참사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도 이 사건을 진정성 있고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고 싶었다. 다만 누구에게도 트라우마를 주지 않는 방식을 고민했다”라고 말했다).

제작자로서 윤리적 고민도 컸을 것 같다.

제프:〈11Minutes〉와 〈크러시〉 두 시리즈 모두 시청자에게 충격을 주지 않으면서도 다큐멘터리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균형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최대한 자극적인 장면은 잘라냈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생존자들에게 우리가 올바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는 것을 설득하는 건 매우 섬세한 과정이다. 그들의 경험과 교훈이 치유와 사고 예방을 위한 중요한 역사적 도구라는 것을 납득시키는 과정도 그러했다.

다큐멘터리 제작자 조시 게이너는 한국에서 촬영과 취재를 담당했다. ⓒ조시 게이너 제공

다큐멘터리 제작에는 시간이 총 얼마나 걸렸나?

조시 게이너(조시):다큐멘터리를 위한 조사와 취재는 2022년 겨울부터 시작되었다. 2023년 초에 미국에서 촬영을 시작했고 올해 4월 말 한국에 입국해 한 달 가까이 취재와 촬영을 진행했다. 22명을 카메라에 담았고, 카메라 밖에서는 더 많은 사람을 인터뷰했다.

참사 생존자가 된 학생, 구조 활동에 참여했던 미군 병사까지 다양한 인터뷰이들이 경험을 자세히 털어놓는다. 촬영하며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

조시:모든 작품이 똑같을 수는 없지만, 이 일을 하다 보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의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제작진을 믿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경험을 공유해달라고 요청한다. 한국에서 보낸 시간이 다른 상황이었다면 좋았겠지만, 카메라 안팎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이다.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친절과 연민, 품위를 잃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기억에 남는 순간이 많지만, 어느 날 저녁 서울시청 앞 분향소에서 보낸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희생자 가족들이 이태원 희생자 159명의 이름을 모두 낭독하고 있었고,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를 때마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사망한 수많은 사람들의 사진을 배경으로. 유가족들이 느끼는 슬픔이 얼마나 클지 상상할 수 없다. 그날 밤 그곳에 있었던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인 경험 중 하나였다.

2월6일 서울시청 앞 이태원 참사 합동 분향소에서 한 시민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다큐멘터리는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가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이유에 주목한다면, 2부는 한국 정부 대응의 문제점을 전면적으로 비판한다.

조시:이번 비극에 대해 아직 많은 의문이 풀리지 않는 것 같다. 그날 밤 이태원에서 일어난 일로 159명이 사망했다. 핼러윈은 수년 동안 이태원에 많은 인파를 불러왔고 2022년 10월29일에도 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159명 중 대다수가 사망하기 몇 시간 전, 위험을 경고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긴급 전화를 수없이 걸었다. 이태원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더 많은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한국 정부, 경찰, 소방청 고위 관계자가 인터뷰를 거부했다는 자막을 끝으로 다큐멘터리가 마무리된다. 만약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면 어떤 질문을 했을까?

조시:정부 및 관련기관의 의사 결정권자들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카메라 인터뷰 요청은 모두 거절당했다. 지난해 10월29일까지의 준비 과정과 그날 밤의 대응에 관해 질문할 것이 분명 있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사람들은 정확히 무슨 일이, 왜 일어났는지, 그리고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어떤 구체적인 조치가 취해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영국 〈가디언〉과 한 인터뷰에서 “2014년 세월호 참사와 지난해 이태원 참사, 한국에서 벌어진 두 가지 대규모 비극은 참석자와 희생자 대다수가 젊은 세대였다는 공통점이 있다”라고 말했다. 〈크러시〉가 한국 사회에 어떻게 전달되길 바라나?

제프:우리의 바람은 다큐멘터리를 본 사람들이 이태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좀 더 명확히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참사 1주기를 맞아 그날 밤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명하고, 목숨을 잃은 159명을 추모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논의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

김영화 기자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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