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침체에… LG엔솔·포드, 배터리 합작공장 철회
배터리 제조사 LG에너지솔루션과 미국 완성차 기업 포드가 튀르키예에서 추진하던 배터리 합작법인 사업을 9개월 만에 철회했다. 업계에선 튀르키예 합작 공장에 약 3조원대 투자를 예상했는데, 전기차 수요 둔화를 감안한 포드가 지난달 발표한 120억달러(약 16조원) 규모 전기차 투자 연기 조치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였다.
글로벌 전기차 수요가 둔화하면서 최근 급성장했던 배터리 업계도 생산 시설 투자는 늦추고 신규 배터리 개발을 확대하는 ‘숨 고르기’가 이어지고 있다. LG엔솔·SK온·삼성SDI, K배터리 3사도 향후 전기차 핵심 시장인 북미 지역 증설은 충분히 채웠다는 판단하에 그간 배터리 라인업에서 약점이었던 ‘LFP(리튬인산철)’ 개발에도 집중하고 있다.
◇유럽 전기차 한파…배터리 공장 축소 도미노
이달 11일 튀르키예의 기업 코치는 LG엔솔·포드와 올해 2월 체결했던 배터리 합작법인 설립을 위한 3자 양해각서(MOU)를 철회했다고 공시했다. 3사는 포드의 유럽 판매용 전기차 배터리를 2026년 양산하겠다는 목표로 25GWh(기가와트시) 규모의 공장을 건설하고, 향후 45GWh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었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MOU였지만 9개월 만의 철회는 이례적이다. 수주 잔고 500조원을 돌파한 LG엔솔은 현재 운영·건설 중인 북미 8곳(342GWh) 공장을 포함해 폴란드·인도네시아·충북 청주 등에 생산 시설을 확충하고 있지만, 발표했던 합작 계획을 철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2월 합작 투자 발표 때 “향후 고성장이 예상되는 유럽 전기 상용차 시장 주도권을 확실하게 선점”이라는 3사의 사업 판단이 달라진 것이다. 3사는 11일 입장문을 통해 “현재 소비자들의 전기차 전환 속도를 고려했을 때 튀르키예에 건설 예정이던 배터리셀 생산 시설에 대한 투자를 지속하기에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는 것에 상호 동의했다”고 했다.
SK온과 포드도 2026년부터 가동을 목표로 한 미국 켄터키 2공장 연기를 검토한다고 최근 밝혔다. 폴크스바겐 그룹도 동유럽에서 추진하던 네 번째 전기차 배터리 공장 계획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이달 초 발표했다.
배터리 투자 축소는 유럽발 전기차 시장 둔화 영향이 크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EU 전기차 시장은 2017~2019년 연평균 40% 성장했지만, 작년은 15%에 그쳤다. 폴스크바겐도 배터리 4공장 철회를 발표하며 “유럽 시장 전기차 주문이 작년 30만대에서 올해 15만대로 50% 감소했다”고 밝혔다.
◇유휴 라인 활용하고, LFP 등 신규 라인업 개발하는 ‘실리’ 챙겨
배터리 공장들 입장에서는 신규 공장 계획은 철회됐지만 기존 공장의 유휴 라인을 활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오히려 시설 투자 등 수조원대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실리’를 챙겼다는 평가도 나온다. 튀르키예 공장은 무산됐지만 LG엔솔은 기존 생산 시설에서 포드 전기차에 탑재될 배터리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SK온도 이달 3일 콘퍼런스콜에서 완성차 회사들의 속도 조절에도 배터리 공장 스케줄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테네시 공장과 켄터키 1공장은 계획대로 2025년부터 양산에 돌입해 배터리 공급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숨 고르기에 들어간 K배터리 3사는 그간 중국 기업에 사실상 시장을 내줬던 중저가용 배터리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개발에도 힘을 쏟는다는 계획이다. 올해 1∼9월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LG엔솔과 중국 CATL이 시장점유율 ‘동률(28.1%)’을 기록하는 등 중국 기업의 LFP 배터리 시장 독점을 더는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권영수 LG엔솔 부회장은 이달 1일 “(전기차 LFP는) 가능한 한 빨리 (양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양산 목표인 2026년보다) 당겨야 한다”며 “LFP는 생산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리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장비 반입을 하고 건물을 지어야 해서 시간이 조금 걸리는데, 기술적으로 어려운 건 없다”고 했다. 삼성SDI도 2026년 에너지저장장치(ESS) LFP 배터리 양산을 목표로 현재 소재 생산을 검토 중이다. SK온은 올해 3월 영하 20도 수준 저온에서도 주행거리의 70~80%를 유지하는 LFP 배터리 시제품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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