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하던 전기차 성장 '주춤'…배터리 업계선 "오히려 좋아"

LG엔솔·포드, 튀르키예 배터리셀 합작공장 건설 철회
공격 투자 대신 제품 경쟁력 강화…LFP 양산은 서둘러

LG에너지솔루션·GM의 미국 합작법인 얼티엄셀즈의 오하이오주 전기차 배터리 공장 /사진=얼티엄셀즈 홈페이지

전기차 시장의 수요 둔화 신호가 점점 뚜렷해지며 국내 배터리 업계가 투자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당장의 사업 확장보다 공장 가동 시기와 가동률을 조정하는 등 속도 조절하며 내실을 다지는 시간을 가지겠단 계획이다. 중장기적인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엔 이변이 없다는 것이 업계의 전망이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11일 포드 및 튀르키예 코치그룹과 함께 준비 중이던 튀르키예 배터리셀 합작 공장 건설 프로젝트를 철회했다고 밝혔다. 3사는 지난 2월 2026년 양산을 목표로 튀르키예 앙카라 인근 바슈켄트 지역에 25GWh 규모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기로 한 상태였다. 이는 현지 자동차 시장이 전기차로 전환되는 속도가 예상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공장에서 생산된 배터리는 포드의 유럽 판매용 상용 전기차에 적용될 예정이었다. 3사는 입장문을 통해 "신중한 논의 끝에 현재 소비자들의 전기차 전환 속도를 고려했을 때 튀르키예에 건설 예정이던 배터리셀 생산시설에 대한 투자를 지속하기에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는 것에 상호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포드의 기존 상용 전기차 관련 계획은 그대로 진행된다. 기존 생산시설에서 상용 전기차용 배터리셀을 생산해 포드에 공급한다.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는 미국의 고금리 영향으로 소비자 부담이 커지고, 유럽 지역의 친환경 정책이 지연되며 주춤하고 있다. 전방 산업인 완성차 기업의 전동화 계획 수정도 잇따른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은 앞서 전기 픽업트럭 공장 가동 계획을 1년 연기했고, 포드는 120억달러의 전기차 투자 지출을 연기했다. 폭스바겐그룹은 2026년 독일 볼숨고프스부르크 신규 공장 설립을 백지화했다.

국내 배터리 업계도 투자전략 수정에 나섰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했던 GM과의 미국 테네시 합작공장 가동 시기를 내년으로 미뤘다. 또 폭스바겐의 전기차 생산 계획 축소에 맞춰 폴란드 공장 가동률을 조정한다는 계획이다. SK온과 포드는 2026년으로 예정돼 있었던 블루오벌SK 켄터키 2공장 생산 연기를 검토 중이다.

배터리 기업은 이김에 공격적인 투자를 잠시 멈추고 제품 경쟁력 강화에 힘쓰겠단 방침이다. 당장의 매출 증가율은 크지 않을 테지만, 숨 가쁘게 벌여온 그간의 사업을 정비할 시간을 벌었다는 반응이다. 업계는 가동률 저하, 인력 수급 등 문제를 돌아볼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은 지난 1일 '2023 배터리 산업의 날' 행사에서 전기차 수요 둔화에 대해 "오히려 잘됐다"라며 "우리가 급히 성장하다 보니 간과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을 다지는 해가 되면 K-배터리가 한 번 더 도약할 수 있는 시기가 분명히 올 것"이라고 했다. 이는 중장기 전기차 수요 성장세에는 변화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만 국내 배터리 3사는 중국 기업과 경쟁하기 위한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양산은 서두른다. 중국 기업들은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유럽 시장을 중심으로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배터리 3사는 LFP 배터리 양산을 조기에 시작해 대응할 방침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LFP 배터리 양산을 기존 목표인 2026년보다 앞당길 계획이다. 삼성SDI는 2026년 에너지저장장치(ESS)용 LFP를 먼저 양산한 이후 전기차용 LFP를 준비한다. SK온은 LFP 배터리 개발을 완료하고 현재 고객사와 공급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세연 기자 2counting@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