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조 세수펑크에 ‘총선용’ 감세 시동…“부자만 더 큰 혜택”

박종오 2023. 11. 13.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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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총선]대통령실·정부, 주식 양도세 부과기준 완화·상속세 개편 논의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제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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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과 정부가 150여일 앞으로 다가온 내년 총선용 의제로 김포의 서울 편입, 공매도 금지 조처에 이어 이번엔 ‘자산계층 감세’에 시동을 걸었다. 대주주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기준 완화, 상속세 개편 등 자산 과세 완화 카드를 꺼내들며 표심 떠보기에 나선 것이다. 올해 최악의 ‘세수 펑크’(세수 결손) 등 세수 부진이 이어지는데도 세금을 더 깎아주겠다며 나라 살림은 뒷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대통령실 관계자는 “주식 양도세 완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며 여러 의견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세제를 담당하는 기획재정부도 전날 보도자료를 내 “주식 양도세 과세 대상 기준을 완화하는 방안은 결정한 바 없다”면서도 “이와 관련해 정부는 다양한 의견을 청취 중”이라고 했다.

주식 양도세 완화를 검토하는 건 지난해 말 여야 합의를 불과 1년 만에 뒤집는 것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12월 주식 양도차익이 연 5천만원을 넘으면 세금을 부과하는 ‘금융투자소득세’ 시행을 2년 유예하고, 기존 주식 양도세 과세 기준을 당분간 유지하기로 했다. 현재 국내 상장주식 양도세는 매년 증시 폐장일 직전의 개별종목 보유액이 10억원 이상이거나 보유 지분율이 1%(코스닥은 2%) 이상인 세법상 ‘대주주’만 낸다. 그러나 이 보유액을 ‘50억원 이상’으로 올리는 쪽으로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말 당시 이 대주주 기준을 종목당 100억원 이상으로 높이는 세법 개정안을 냈다가 여야 합의로 보류했었다.

대주주 감세를 다시 추진하려는 표면적인 이유는 ‘증시 부양’과 ‘대통령 약속’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0일 페이스북에 “연말마다 대주주 지정을 피하기 위한 대량 매물이 쏟아져 증시는 왜곡되고, 일반 개미 투자자들이 직격을 맞고 있다”며 “국내 상장 주식 양도세 대개편은 지난 대선과 인수위 국정과제로 국민께 약속드린 사안으로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를 강력히 요구한다”고 썼다.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도 ‘주식 양도세 전면 폐지’를 공약했던 만큼 여야 합의를 건너뛰고 감세를 밀어붙이자는 주장이다.

이날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한국방송(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주식 양도세 대주주 기준 완화는 아직 방침이 결정된 건 전혀 없다”면서도 “현재 시장의 여러 목소리를 듣고 있다. 변화가 있게 되면 야당과의 합의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협의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대주주 기준은 소득세법 시행령에 규정된 까닭에 정부가 야당의 동의(법 개정) 없이도 기준 상향을 추진할 수 있다. 개인 투자자들을 위한다는 명분을 앞세우며 야당에 공을 넘기며 압박하는 모양새인 셈이다.

감세 검토 대상은 주식 양도세만이 아니다. 추 부총리는 지난 1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상속세가 제일 높은 국가이고, 38개국 중 14개국은 상속세가 아예 없다”며 “상속세 체제를 한번 건드릴 때가 됐다”고 했다. 불과 한달 전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회와 사회적 여건상 (상속세 개편을) 받아들일 태세가 조금 덜 돼 있는 것 같다”며 “사회적 논의를 활성화하는 작업부터 해야 할 거 같다”고 밝혔던 것과 대조적이다.

기재부는 애초 올해 초부터 상속세 과세 대상을 ‘물려주는 재산총액’에서 상속인 각자가 ‘물려받는 재산’ 기준으로 바꿔 세 부담을 완화하는 제도 개편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추가 논의 필요성과 역대급 세수 펑크 등으로 올해 세법 개정안에는 이런 방안을 담지 않았다.

이처럼 입장이 확 달라진 건 ‘표심’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투자자 등 유권자의 환심을 살 정책공약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특히 이런 감세 조처들은 일자리와 근로소득 증대 같은 민생을 위한 정공법 정책이 아니라 금융자산 등 불로소득 기대감을 부추기는 정책수단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문제는 선거용 날림 논의와 졸속 추진 가능성이 큰데다 최악의 세수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올해 정부의 기존 본예산 전망보다 덜 걷힐 것으로 예상되는 국세 수입 부족분은 59조1천억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기재부에 따르면 정부 세수는 지난해 395조9천억원에서 올해 341조4천억원, 내년 367조4천억원으로 크게 줄었다가 2025년(401조3천억원)에야 겨우 지난해 수준으로 돌아올 것으로 예측된다.

강병구 인하대 교수(경제학)는 “국내 상속세의 경우 지금도 실효세율(실제로 부담하는 세율)이 높지 않고 제도 개편 시 높은 세율을 적용받는 최상위 자산 계층이 더 큰 혜택을 받는 역진적 효과가 생길 수 있다”며 “주식 양도차익과 상속세 등 자산 과세 완화는 현 정부가 추진하는 재정의 건전성, 지속가능성에도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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