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준 닮은 시진핑"...중국 한류, 7년 한한령 뚫고 영광 되찾나 [칸칸 차이나]
편집자주
5,000년간 한반도와 교류와 갈등을 거듭해 온 중국. 우리와 비슷한가 싶다가도 여전히 다른 중국. 좋든 싫든 앞으로도 함께 살아가야 할 중국. '칸칸(看看)'은 '본다'라는 뜻의 중국어입니다. 베이징 특파원이 쓰는 '칸칸 차이나'가 중국의 면면을 3주에 한 번씩 보여 드립니다.
"남편의 젊었던 시절 사진을 보며 도민준과 똑같다고 생각했다."
2014년 7월 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한국을 찾았던 시 주석의 부인 펑리위안 여사는 서울 창덕궁을 탐방 중이었다. 한국 측 수행원들과의 대화 중 우연히 당시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한국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이야기가 나오자, 펑 여사는 청년 시절 남편의 모습이 드라마 주인공 도민준(김수현 분)을 닮았다고 말했다. 농담이었는지 진심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중국 최고 지도자를 한류 스타에 비유한 펑 여사의 한마디에 주변 분위기는 금세 화기애애해졌다. 중국 온라인에선 배우 김수현과 시 주석의 청년 시절 사진을 나란히 비교한 사진이 한동안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중국 국가주석 영부인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던 한류는 2016년 처참히 무너졌다.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결정에 중국이 '한한령(限韓令·한류 콘텐츠 제한령)'이라는 보복 조치를 감행한 탓이다. 중국 내 한류 콘텐츠는 자취를 감췄고, 이때부터 7년간 한한령은 한중 갈등의 상징으로 굳어졌다.
그런데 최근 콘텐츠 업계에선 이제야말로 한한령이 풀리기 시작할 것이란 기대감이 싹트고 있다. 지난해 이미 한 차례 중국 정부가 한한령 해제 움직임을 보였던 점, 조만간 서울에서 열릴 '한중일 정상회의'라는 외교적 호재가 남아 있는 점에서다. 중국 문화 업계 관계자는 "중국 측의 한국 콘텐츠 판권 계약 문의가 많아지고 있다"며 "막연한 장밋빛 기대가 아니라, 중국 업계도 한한령이 곧 풀리기 시작할 것으로 본다는 실질적 증거"라고 전했다. 7년간 K콘텐츠를 괴롭혔던 한한령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윤석열 정부 들어 '의외의' 한한령 이완 조짐
중국은 한한령의 존재를 공식적으론 부인한다. 하지만 2016년 사드 배치 결정 후 한국산 문화 콘텐츠의 대(對)중국 수출은 한중 관계 부침과 함께 요동쳤던 게 사실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 베이징비즈니스센터 자료에 따르면, 사드 배치 직후인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중국 3대 OTT(아이치이·유쿠·텐센트)에서 한국산 드라마 방영 횟수는 0건이었다. 반면 지난해엔 2월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를 시작으로 △3월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4월 '당신이 잠든 사이에' △5월 '이태원 클라쓰' △12월 '슬기로운 의사생활'(12월) 등 8편이 줄줄이 방영됐다.
게임 수출 추이도 비슷하다. 2018~2019년 0건이었던 한국산 게임 신규 판호(허가)는 2020년과 2021년 각각 1건만을 기록한 뒤, 지난해 '제2의 나라' '메이플 스토리' '에픽세븐' 등 7건으로 껑충 뛰었다.
비교적 친(親)중국 성향을 보였던 문재인 정부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한한령의 기세가 오히려 중국과 거리를 두며 한미동맹, 한미일 군사협력 중심의 외교 정책을 편 윤석열 정부 들어 약화한 것이다.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은 동맹을 중시하는 윤석열 정권이 미국에 경도되지 않도록 붙잡아 둬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며 "한국산 콘텐츠 방영을 풀어 주는 식으로 윤석열 정부에 유화적 제스처를 먼저 던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도 한중 관계 개선을 위해선 한한령 이완이 동반돼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됐다.
다만 유화적 분위기가 오래가진 않았다. 올해 2월 '나의 해방일지' 방영 이후 지난달까지 중국 OTT에 한국 드라마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 게임 판호 발급도 3건으로, 지난해 대비 절반 이하로 급격히 감소했다.
지난 4월 윤 대통령의 '대만 발언' 탓이 컸다. 당시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윤 대통령은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대만 문제와 관련해)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중국의 숙원인 '대만 통일'을 반대한다는 의미를 내포한 윤 대통령 발언에 중국은 "말참견 말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한중 간 분위기가 경색됐고, 한한령의 느슨해지던 흐름도 멈췄다.
"한한령 곧 풀린다"... 한중 물밑서 교감
한국 콘텐츠 업계 내에선 조만간 또 한 번의 '반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중 관계 개선 분위기를 가져다줄 '한중일 정상회의'라는 호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중일 정상회의는 2019년 12월 이후 코로나19 확산으로 4년간 열리지 못했다. 올해 말, 늦어도 내년 상반기에 열릴 이 회의에선 윤석열 대통령과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 간 별도 양자회담도 열릴 전망이다.
정부 관계자는 "정상회의 준비 과정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산 콘텐츠 유통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며 "중국 측 역시 한중 갈등의 이완 장면 연출을 위해서라도 한한령 해제 분위기를 띄워야 한다는 데 공감하는 눈치"라고 말했다. 다른 외교 소식통은 "한중 간 갈등 이완은 미국 견제 차원에서도 중국에 중요한 외교적 과제"라며 "한중일 정상회의는 한한령 해제를 위해 적절한 외교적 명분을 제공할 수 있다"고 짚었다.
이완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중국 OTT 텐센트는 한국 드라마 '봄밤'을 리메이크한 '워 즈다오 워 아이 니'를 조만간 방영할 예정이다. 텐센트는 지난 3일 공식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계정을 통해 이 작품 방영을 예고했다. '워 즈다오 워 아이 니'의 해시태그(#)는 53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한국 영화 '담보'의 리메이크작 '우자즈바오'도 10일 개봉했다.
이는 한국산 콘텐츠의 직접 수출이 아니라 리메이크 판권 수출이긴 해도 한국산 콘텐츠를 중국에 들이는 수입업자들의 정치적 부담이 가벼워지고 있는 신호로 해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산 콘텐츠 수입을 염두에 둔 양측 간 물밑 논의가 이미 활발하다"며 "내년 상반기부터 한국산 콘텐츠 유통이 풀리기 시작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깔려 있다"고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한중 역사 갈등 희생양 된 K콘텐츠... 옛 영광 회복은 무리
다만 한한령이 해제된다 해도 사드 사태 이전의 수준으로 한국산 콘텐츠 호황이 중국에서 재현되기는 힘들 것이란 관측이 많다. 최근 수년간 중국 내 한류 열풍은 빠르게 식었다. 한국산 콘텐츠 시장의 '큰손'이었던 중국 청년 실업률은 내수 경기 부진 탓에 지난 6월 기준 21%를 웃돌았다. 구매력 자체가 예전만 못하다는 의미다.
궈차오(國潮·애국주의 소비) 바람을 타고 상승한 '한류 거부감'도 변수다. 올해 5월 가수 겸 배우 정용화의 중국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예고됐지만, 녹화 며칠을 앞두고 돌연 취소된 적이 있다. 중국 매체들은 한국 연예인의 방송 출연에 거부감을 느낀 중국인들이 격렬히 항의한 데 따른 조치라고 보도했다. 2020년 10월 방탄소년단(BTS)도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국 2군단장 이름을 딴 밴플리트상을 수상하면서 "한미 양국이 함께 겪었던 고난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고 밝혔다가 생떼에 가까운 비난을 받았다. 한국전쟁을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움) 전쟁'으로 평가하는 중국인들이 "역사를 왜곡하지 말라"며 반발한 것이다.
비슷한 사례는 더 있다. 트와이스의 대만인 멤버 쯔위는 2016년 방송에서 대만 국기를 흔들었다가 곤욕을 치렀다. 중국 네티즌들이 거칠게 비난하고 나선 탓이다. 마잉주 당시 대만 총통까지 나서 "대만인이 대만 국기를 흔드는 건 정당하다"며 쯔위를 옹호했지만, 결국 소속사 측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한다"며 사실상 중국에 백기를 들면서 사태가 진화됐다.
업계에서는 한국산 콘텐츠가 한중 간 외교·역사 갈등의 종속 변수로 전락했다는 진단이 나온다. 중국의 한 온라인 플랫폼 업체 관계자는 "한류가 넘어야 할 걸림돌은 이제 사드가 아니라 한중 간 역사 갈등이 됐다"고 지적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디플로맷은 "한류의 운명은 여전히 중국의 정치적 감정에 취약하다"며 "한국 문화 콘텐츠의 중국행 통로가 다시 열리는 것과는 별개로, 한국인 예술가들이 양국 국민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는 시절은 이미 끝났을지도 모른다"고 짚었다.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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