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군인들… 탐욕과 원칙 사이서 역사를 뒤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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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권력자가 사라졌다.
영화 '서울의 봄'은 역사의 물길을 되돌린 44년 전 겨울 그날로 관객을 끌고 간다.
혼란기 그의 위세는 높다.
교활함과 대범함을 동시에 표현해내는 황정민, 신념 굳은 군인을 선 굵게 그려내는 정우성의 연기 대결이 시선을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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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기 탐욕과 신념의 군인 그려
힘 있는 연출, 배우들 호연 돋보여
절대권력자가 사라졌다. 힘의 공백기다. 누구는 권좌를 엿보고, 또 다른 이는 혼란을 수습하려 한다. 두 사람은 군인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계급이 둘 다 소장이라는 공통분모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신분 차이가 있다. 한 사람은 육사 출신으로 강력한 사조직을 이끌고 있다. 또 한 사람은 갑종(초급장교 단기 육성 과정) 출신으로 육군 비주류다.
격동기 두 사람은 충돌한다. 탐욕과 원칙이 맞선다. ‘12ㆍ12’로 흔히 불리는 역사적 사건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군사반란이지만 세세한 내막을 아는 경우는 드물다. 그날 두 사람과 두 사람 주변인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나. 영화 ‘서울의 봄’은 역사의 물길을 되돌린 44년 전 겨울 그날로 관객을 끌고 간다.
전두광(황정민)과 이태신(정우성)이 영화의 두 축이다. 전두광은 보안사령관으로 대통령 시해 사건 합동수사본부장을 맡는다. 혼란기 그의 위세는 높다. “개도 간첩으로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할 정도다. 상관인 육군참모총장 정상호(이성민)는 전두광이 못마땅하다. 육사 출신 사조직 하나회는 전두광의 든든한 배경 중 하나다. 정상호는 꼿꼿한 이태신을 요직인 수도경비사령관에 앉혀 전두광을 견제하려 한다.
영화는 전두광이 시해 사건 연루 혐의로 정상호를 무단 체포한 12월 12일 9시간에 집중한다. 사건 중심부에 있던 이들은 9할 넘게 군인이거나 군인 출신이다. “대한민국 육군은 다 같은 편”(이태신)이어야 하나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계산이나 소신에 따라 이합집산한다.
전두광은 탐욕으로 용감하고, 이태신은 신념에 따라 몸을 던진다. 어떤 장군은 시시각각 기회주의자의 면모를 보이고, 누군가는 비열하다. 어떤 장성은 못 이기는 척 대세를 따른다. “서울대 갈 실력이었으나 가난해서 육사에 진학한“(전두광) 엘리트들은 권력의 떡고물 앞에 무기력하다. 대통령의 재가를 받지도 않고 참모총장 체포를 실행하거나 상관의 명령에 반해 정예부대를 출동시킨다. 반면 끝까지 군인답게 행동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죽음 또는 형극의 삶이 기다린다.
선과 악의 대립이 명확하면 종종 서사의 힘이 약해진다. ‘서울의 봄’은 인물들의 다채로운 면면을 통해 이런 제약을 극복해낸다. 전두광의 계략과 반란, 이를 저지하려는 이태신의 노력이 맞부딪히며 상황은 엎치락뒤치락하고 서스펜스가 이어진다. 누구나 아는 내용이나 자세히 몰랐던 이야기는 영화적 상상이 더해지며 재미를 만들어낸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영화계가 내놓은 영화 중 가장 힘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인물들의 특징과 사건의 맥락을 이야기로 조화롭게 연결 짓는 연출력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스크린에 정교하게 복원된 1979년 서울 풍광에 배우들의 호연이 포개진다. 교활함과 대범함을 동시에 표현해내는 황정민, 신념 굳은 군인을 선 굵게 그려내는 정우성의 연기 대결이 시선을 붙잡는다. 대통령 최한규 역의 정동환, 국방장관 역의 김의성, 특전사령관 공수혁 역의 정만식, 헌병감 김준엽 역의 김성균, 9사단장 노태건 역의 박해준 등의 호연 역시 볼거리다.
영화 ‘비트’(1997)와 ‘무사”(2001), ‘감기’(2013), ‘아수라’(2016) 등을 연출한 김성수 감독의 신작이다. 김 감독은 지난 9일 오후 언론시사회(서울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점)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12ㆍ12가 있었던 때 (참모총장 공관이 있던) 한남동에 살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그때 고3 학생으로 총소리를 20분 정도 들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오랫동안 꽁꽁 숨겨졌다”며 “30대 중반이 돼 (내막을) 알게 됐을 때 당혹스럽고 놀라웠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우리나라 군부가 하룻밤 사이 무너질 수 있나 하는 놀라움과 의구심이 있었다”며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날이 한국 현대사의 전환점이 되었나 하는 생각은 제게 화두 같은 거였다”고 덧붙였다. 그는 “당시 신군부 세력에 끝까지 맞섰던 진짜 군인들이 있었기에 훗날 내란죄, 반란죄 입증이 가능했다”며 역사적 의미를 되짚기도 했다. 22일 개봉, 12세 이상.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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