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민생은 ‘서민 코스프레’가 아니다
어묵 먹방, 아기 사랑…
그게 어떻게 민생인가
매주 수퍼서 장본 獨 총리
관용차 없는 英 장관
자전거 출퇴근 국회의원…
일회성 이벤트 눈가림 안 돼
국정과 현장은 본래 하나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이후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과 행보가 크게 달라지고 있다. 핵심 키워드는 민생과 현장, 소통이다. 용산 대통령실 참모들에게 “책상에만 앉아 있지 말고 민생 현장에 파고들어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들으라”고 지시하는가 하면, 국무위원들을 향해 “도움을 기다리는 국민의 외침, 현장의 절규에 신속하게 응답하는 것보다 우선적인 일은 없다”'고 다그치기도 했다. 최근에는 카페에서 ‘타운홀 미팅’ 형식의 비상 경제 민생 회의를 직접 주재하기도 했다.
얼마 전만 해도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라 한 윤 대통령이었다. 그랬던 그가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고 말하기에 이른 것이니, 국정 기조가 냉탕 온탕을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을 감추기 어렵다. 게다가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고 하면, 애당초 국가 지도자란 왜 필요한가? 그럼에도 이참에 눈여겨볼 만한 대목은 하나 있다. “현장 방문을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시스템으로 정착시킬 것”이라는 발언이다. 민심에 가까이 다가가는 일을 상시화·제도화하겠다는 취지일 텐데, 말인즉슨 백번 반갑다.
하지만 현장 ‘방문’이라는 표현은 목에 걸린다. 왜 민생 현장은 굳이 ‘방문’의 대상이 되어야 할까? 이는 그만큼 우리나라의 정치와 행정이 평소에는 민생 현장과 유리되어 있다는 사실의 방증이 아닐까? 무릇 민생이란 일부러 챙기는 것이 아니다. 현장 또한 별러서 찾는 곳이 아니다. 소통 역시 보란 듯 벌이는 이벤트가 아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이 민주주의이긴 하지만 그래도 민주주의 선진국에서는 민생이나 현장, 소통 같은 단어가 각별하거나 새삼스러운 경우가 별로 없다.
가령 앙겔라 메르켈 전(前) 독일 총리는 재임 기간 내내 1주일에 한 번 단골 수퍼마켓에서 직접 장을 봤다. 그 수퍼마켓에는 장관이나 국회의원 손님도 많았다. 덴마크에는 공관(公館) 대신 이웃과 담장을 맞댄 사저(私邸)에 살면서 집 앞의 눈을 치우는 총리가 있었다. 그 나라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영국에서는 현직 장관들도 전용 관용차가 없으며 국회의원들 또한 공항 출입국장에서 일반인과 줄을 같이 선다. 일본 총리의 모든 일정은 다음 날 신문에 자세히 게재된다. 비록 ‘노는 물’이 다르긴 하지만 먹고, 마시고, 이발하러 다니는 동선(動線)을 보면 그래도 완전히 딴 세상 사람 같지는 않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고위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은 신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민생 현장에서 크게 떨어져 있다. 이들 중 자기 발로 다니며, 자기 돈을, 자기 손으로 계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얼마 전 택시 기본 요금을 묻는 질문에 국무총리는 “1000원쯤 되지 않냐”고 답했다. 한때 대통령을 꿈꾼 유력자들 가운데는 현금인출기 지폐 투입구에 지폐 두 장을 한꺼번에 밀어 넣는 이도 있었다. 하긴 현재 야당 대표는 도지사 시절 법인 카드로 샌드위치와 초밥, 쇠고기를 집으로 배달시킨 부하를 두었다고 하니 장바구니 물가를 체감하며 살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세상 물정 모르고 살기로는 특권이 186가지라는 국회의원들이 압권일 것이다. 국회 입성이란 우선 ‘생활 전선(前線)’에서 해방된다는 뜻이다. 연간 1억5천만 원 이상의 고소득자인 데다가 ‘무(無)노동 유(有)임금’의 장본인이다. 여기에 9명이나 되는 유급 보좌진이 그들의 눈과 귀, 손과 발이 되어 준다. 예비군 훈련마저 사실상 면제다. 이런 사람들이 허구한 날 공무원들을 국회로 불러내어 민생과 별 상관이 없는 대정부 질문을 벌인다. 자신들이 민생 현장에 무심한 것은 둘째 치고, 행정 관료들이 민생 현장에 나갈 시간조차 뺏는 것이다.
총선이 다가오면서 정치인들은 이른바 ‘오뎅 먹방’이나 ‘아기 사랑(baby kissing)’ 퍼포먼스를 위해 재래시장으로 줄지어 달려갈 것이다. 청년들과 생맥주잔을 기울이며 립서비스도 남발할 것이다. 정치의 계절을 맞이하여 공무원들은 ‘라면 값 50원 인하’나 ‘배추 비축 물량 방출’ 같은 생활 뉴스의 생산량을 늘릴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서민 코스프레가 현장 중심 민생 정치의 진정성을 담보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근본적인 정치 개혁이다. 다음 총선은 여야 승부를 넘어 유권자들이 정치권 전체를 심판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생 정치는 영원히 공염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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