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사회가 함께 치유해야 할 전세사기 피해

염창현 기자 2023. 11. 13. 03:0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세입자에게 큰 고통 주는 부당 행위 계속 느는 추세
부산에서도 대규모 발생, 주거 취약계층 보호 위해 더 강력한 근절 대책 필요

우리 사회에서는 새로운 현상이 생길 때마다 이에 빗댄 신규 단어가 만들어진다. 전세사기의 별칭인 ‘깡통 주택’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는 주택담보대출과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합친 금액이 주택 실제 매매가의 80% 이상을 넘어선 경우를 일컫는다. 이러니 만약 임대인이 주택담보대출금을 제때 갚지 못해 경매를 거쳐 집을 팔더라도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주기가 어렵게 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세입자에게 돌아간다.

전세사기 행각은 지난해부터 수도권을 중심으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더니 이제는 전국으로 확산됐다. 하루가 멀다 하고 피해자가 발생한다. 이들에게는 정말 마른 하늘에서 느닷없이 떨어진 날벼락이 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특히 전세사기의 덫에는 부동산 거래 경험이 적은 청년이나 사회 초년생이 많이 걸린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진다.

부산도 전세사기 피해의 청정지대는 아니다. 시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지난 9월 말을 기준으로 할 때 부산의 전세사기 피해 건수는 1142건, 금액은 1112억 원에 이르렀다. 잠정적 전세사기 피해 우려 건물도 62곳, 1903세대로 파악됐다. 또 국토교통부의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에 접수된 부산지역의 피해건수는 847건(9월 20일 기준)이었다. 전국 전체 수치(6063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0%에 그쳤으나 수도권을 제외하면 가장 많다.

상황이 이런데도 피해자에 대한 구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국토부 등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전국에서 전세사기 피해자를 위한 저리 신규 대출(버팀목 대출) 신청은 378건(471억9000만 원)이었다. 부산에서는 신청 건수 31건(29억 원) 가운데 15건(48.4%·14억 원)에 대해서만 실제로 대출이 이뤄졌다. 2명 가운데 1명만 승인을 받은 셈이다. 부부의 합산 연 소득 등에서 기준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 이유다.

전세사기 피해자가 기존 대출을 저금리로 바꿀 수 있는 ‘대환 대출 지원’ 역시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올해 1~9월 전국에서는 443건(660억 원)에 대해 대환 대출 승인이 났다. 신청 후 거절된 사례는 9건이었다. 부산에서는 23건(18억 원) 중 16건(15억 원)이 승인됐다. 저리 대출보다는 비교적 순조롭게 제도가 운용된 것이 아니냐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정도 수준으로는 전세사기 피해자의 아픔을 완전히 씻어내기 힘들다.

풀어야 할 숙제는 또 있다. 더불어민주당 허영 의원이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제출한 자료를 분석하니 부산에는 부채비율 80% 이상인 ‘깡통 주택’이 2만1648세대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세부적으로 개인 임대 주택 중 부채비율 80% 이상~90% 미만은 3255세대, 90% 이상은 5857세대였다. 임대사업자 주택은 80% 이상~90% 미만 3146세대, 90% 이상 9390세대로 조사됐다. 전체 보증 금액은 1조8085억 원(개인 7067억 원·임대사업자 1조1018억 원)에 이른다.

물론 정부가 마냥 팔짱만 끼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법무부 국토부 경찰청 등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전세사기 근절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상습적으로 세입자를 속였거나 규모가 큰 전세사기범은 구속했다. 당초 올해 말에 끝내기로 했던 단속 기간도 무기한으로 연장했다. 아울러 부산을 비롯한 전국에 전세사기피해 상담소를 설치, 운영 중이다. 저리 대출, 대환 대출 등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돕기 위한 조치도 이행 중이다.

그러나 정부가 전방위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전세사기를 완전히 뿌리 뽑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사안이 불거질 때마다 대책을 내놓지만 효과는 약해 ‘땜질식 처방’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과 기초의원 등은 지난 9일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발의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또 피해자와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전세사기, 깡통전세 문제해결을 위한 부산지역 시민사회대책위원회’도 그동안 여러 차례 정부와 시의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들은 말만 해서는 전세사기 피해자를 구제할 수 없다며 정부와 여당이 기존 법 보완을 통해 제도의 허점을 메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산뿐만 아니라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80%가량은 20~30대로 알려져 있다. 또 전세사기는 사회적 약자로 불리는 주거 취약계층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 어렵게 마련한 전세보증금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리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된다. 정부는 더 효율적이며 강력한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깡통 주택, 깡통 전세라는 단어가 눈 뜨면 쉽게 들을 수 있는 일상 용어가 되어버린다면 그곳은 상식과 정의가 모두 사라져 버린 사회다.

염창현 세종본부장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