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터치] 노랑에 물들다
미술관에 갔다가 첫눈에 반한 그림이 있습니다. 거칠게 긁어낸 노란색 바탕에 푸른 드레스를 입은 여인을 그린 유화입니다. 그림 속 여인의 크고 맑은 눈동자는 평온하고, 살짝 위로 올라간 입꼬리가 부드러운 웃음을 머금은 듯합니다. 참으로 사랑스럽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그림이었습니다.
빗줄기처럼 얇고 가늘며 길게 쓰인 화가 이름을 봤습니다. 직선을 많이 사용한 프랑스 화가 베르나르 뷔페였습니다. 그림의 모델이 된 사람은 가수이자 작가로 활동했던 아나벨 슈와브입니다. 뷔페는 소설가 사강을 통해 아나벨을 알게 되고 두 사람은 첫눈에 반해 결혼했습니다. 뷔페가 그린 아나벨 초상화에는 사랑이 가득합니다. 회색 백색 흑색 배경에 깡마른 인물과 텅 빈 사물을 통해 불안을 표현했던 뷔페는 아나벨을 만난 후 그림 채색이 밝아지고 부드러워졌습니다.
아나벨은 뷔페 인생에 유일한 사랑이자 뮤즈였습니다. 그 마음이 화폭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한동안 보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1928년에 태어난 뷔페는 2차 세계대전과 어머니의 죽음을 겪으면서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오로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뷔페는 1999년 10월에 삶을 마감했는데, 죽기 전 6개월간 죽음에 관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장기가 드러난 앙상한 뼈만 남은 해골 그림에는 붉은 심장이 강렬하게 돋보입니다. 파킨슨병으로 죽음을 준비하던 뷔페는 붉은 심장을 통해 생명과 희망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림을 통해 베르나르 뷔페는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뮤지엄숍에서 사 온 아나벨 초상화 그림을 거실 벽에 걸고 오가며 보고 또 봅니다. 짙은 노란 바탕은 따뜻합니다. 푸른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표정에는 생동감이 넘칩니다.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어둡고 눅눅한 기억들이 뒤로 밀려나고, 부드럽고 가벼운 털실 목도리를 두른 것처럼 마음이 풀어집니다. 이처럼 때로는 한 장의 그림이 일상의 고단함을 견디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그림을 보다가 문득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몇 번이나 꼭 가봐야겠다 마음먹었지만 단풍이 드는 시기를 놓쳐버려 가 보지 못한 운곡서원입니다. 딱 요맘때 가야만 넘실거리는 노란 은행잎을 볼 수 있습니다.
경주 운곡서원에는 300년이 넘은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하늘과 땅, 기와 지붕까지 물들인 노랑은 포장해서 저장하고 싶을 정도로 고운 빛깔입니다. 아름드리 은행나무 앞에 서면 작아진 키만큼 겸손해집니다. 마음을 어지럽히던 감정들이 나뭇가지를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가볍게 흩어지고, 혼자서 끙끙 앓던 고민과 상처받았던 아픈 기억들조차 탈색됩니다. 어엿하게 서 있는 나무는 바라보는 것만으로 큰 위로가 됩니다.
제게 노랑은 베르나르 뷔페의 해골 그림에 나오는 붉은 심장처럼 죽음과 아픔인 동시에 삶이며 희망입니다. 몇 해 전 세월호 기억의 숲 은행나무 심기에 참여했습니다. 얼마 전, 사진으로 본 은행나무는 잎이 달린 가지들이 제법 많이 뻗어있었습니다. 아픈 기억이지만 잊으면 안 되는 기억입니다. 그래서 노랑은 해 질 무렵 켜지는 노란 알전구처럼 어둠을 밀어내는 등불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노란 알전구가 켜지면 외출했던 가족들이 집으로 돌아옵니다. 식탁에 둘러앉아 따뜻한 된장국을 나눠 먹으며 소소한 대화를 주고받습니다. 제 마음속 노랑은 기다림이며 약속이고 내일을 기대하는 희망입니다.
찬 바람이 불면 본능적으로 따뜻함에 끌립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힘들고 아픈 시기가 있습니다. 마음의 감기에 심한 몸살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자신을 지키고 기운을 얻는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상처가 그리움이 될 때까지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그 힘은 한 점의 그림일 수도 있고, 노랗게 물든 은행잎일 수도 있습니다. 베르나르 뷔페와 아나벨처럼 연인이며 가족일 수도 있고, 마음을 위로하는 한 곡의 음악일 수 있습니다. 이번 가을, 우리 모두의 마음에 따뜻한 등불이 켜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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