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소리] 의대를 다니며 앞만 본 것에 대한 아쉬움
의과대학, 그곳은 어떤 곳인가.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꽤 정신없는 곳이라는 것이다. 눈이 두 개뿐이라서 아쉽고 손이 두 개뿐이라서 애석하고 몸뚱이가 하나뿐이라서 벅찬 곳이다. 오드리 헵번은 말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두 개의 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는 자신을 돕기 위한 손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이를 돕기 위한 손이다.” 하지만 의대생이 남을 돕기 위해서는 세 개의 손이 필요할 것만 같다. 의대를 다니며 무척 아쉬웠던 점이다. 주변의 어려운 친구를 챙길 틈이 없다고 느꼈다.
의대 생활이 바쁜 것은 사실이다. 다른 학과의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에 해당하는 양을 매주 시험 칠 때도 많다. 또한, 한 번의 시험만 망치더라도 F를 받을 가능성이 커지는데, 한 과목이라도 F를 받으면 그 학기 전체를 다음 해에 다시 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어서 부담이 매우 크다.
그렇게 반복되는 매주가 버겁고 나와 동기들의 성격도 예민해진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하루하루가 치명적일 수 있다. 특히나 시험 전날에 한눈을 파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집중 상태를 매주 끌어올리는 것도 전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럴진대 공부 외에 다른 요인이 신경 쓰인다면 상당히 골치 아프고 치명적인 일인 것이다.
의대생들이 평균보다 잘 사는 것은 맞는 것 같다. 부유한 집도 많고 부모님이 의사인 경우도 많다. 그중에는 정말로 공부에만 집중할 환경이 갖춰져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각자 안고 있는 개인 문제들이 분명 있고 일부 동기나 선후배의 사정을 들어보면 어떻게 저런 환경에서 공부하나 싶을 정도로 열악한 경우도 많다.
그럴 때 아쉬움이 피어오른다. 주변인의 어려움을 알게 되었을 때, 등을 쓰다듬어 주고 지지의 한 마디를 건네고 함께 고민해 줄 여유가 없다고 느꼈다. 친구가 본인의 가정사나 경제 사정을 용기 내어 입 밖에 냈을 때, 심란한 개인사를 토해냈던 동기에게서 불안하고 우울하다며 전화가 왔을 때, 공부하는 게 막막해서 울면서 공부하던 친구에게서 도와달라는 연락이 왔을 때, 마치 복싱의 전설 메이웨더가 숄더롤(나의 어깨로 상대의 주먹을 받아 흘리는 기술)로 상대의 펀치를 흘렸듯이 나도 주변 사람들의 힘듦의 토로를 쓱 받아서 적당히 옆으로 흘려버리는 기술만 늘어간 것 같다. 내 코가 석 자라는 이유로.
핑계라면 핑계일 수 있지만 내 공부를 하고 내 개인사를 처리하는 데만 해도 너무나 버거웠다. 이런 상황에서 주변 사람들의 고민과 어려움에 귀 기울일 여력이 없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분했다. 친구가 용기 내어 자신의 고민을 나누기도 했지만, 나는 공부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외면을 했다. 고민 끝에 친구가 진심 어린 조언을 구했을 때, 나는 “오늘은 좀 바쁘네”라는 말로 물리쳤다. 그 순간의 씁쓸함과 미안함은 지금도 내 마음 한 켠에 남아 있다.
주변인들이 울고 있을 때 난 무력했다. 슬픔을 보듬기엔 내가 너무 작았다. 졸업을 앞두고 학부 공부를 마무리하는 단계에 와있다. 졸업하고 의사가 되면 그럴 여유가 생길까?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앞으로는 두 개의 손만으로도 주변을 챙길 수 있는 여유가 허락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에 더 깊은 이해와 공감을 갖고,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의사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슬픔을 보듬고 무거운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도움을 줄 수 있는 의사가 되길 희망한다.
또한, 나의 후배들은 더욱 여유로운, 그렇기에 더욱 너그러워질 수 있는 조건에서 학교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 내 옆 사람의 곤경에서 눈길을 거두며 갈등하고 자책하지 않아도 되기를 바란다. 나를 둘러싼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이 싹 틀 수 있기를, 주변 사람을 상대로 너그러운 포용을 해볼 기회가 의학 교육과정 속에서 꽃 필 수 있기를 바란다. 두 개의 눈만으로도 옆을 돌아볼 수 있고 두 개의 귀만으로도 근처에 귀 기울일 수 있으며 두 개의 손만으로도 충분히 주위를 보듬을 수 있는 여건이 약속되기를, 어렵겠지만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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