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꿋꿋이 부산 지키며 후배들 롤모델 되고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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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2, 3년 연극을 하다가 '도저히 비전이 안 보인다'며 서울로 떠난 후배들이 많아요. 그런 걸 지켜보면서 저라도 부산을 지켜야 한다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80, 90살이 되더라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무대에 서서 후배들의 롤모델이 되어주고 싶었죠. 지금은 '선생님처럼 되고 싶어요'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
지난 50년간 부산 연극계를 지켜온 박찬영(70) 배우가 지역문화 발전을 위해 헌신한 공로자에게 주는 '제66회 부산시 문화상(공연예술 부문)'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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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시문화상 공연예술부문 수상
- 50년간 부산 연극계서 활동 보람
- 지역에 연극전용극장 꼭 생겼으면
“부산에서 2, 3년 연극을 하다가 ‘도저히 비전이 안 보인다’며 서울로 떠난 후배들이 많아요. 그런 걸 지켜보면서 저라도 부산을 지켜야 한다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80, 90살이 되더라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무대에 서서 후배들의 롤모델이 되어주고 싶었죠. 지금은 ‘선생님처럼 되고 싶어요’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
지난 50년간 부산 연극계를 지켜온 박찬영(70) 배우가 지역문화 발전을 위해 헌신한 공로자에게 주는 ‘제66회 부산시 문화상(공연예술 부문)’을 받았다. 지난달 31일 부산문화회관에서 만난 그는 “좋아하는 일을 한 것뿐이라 (상을 받을 거라는) 기대를 안 했다”며 “상을 받은 것보다는 이를 계기로 후배들과 술 한잔하는 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어 좋았다”고 웃어 보였다.
박 배우는 1972년 연극계에 입문했으며, 1998년 부산시립극단 창단 멤버로 입단해 2011년까지 활동했다. 올해로 만 70세가 됐지만, 여전히 바쁜 현역이다. “부산시립극단에 있을 때보다 퇴직한 이후에 작품 활동이 더 늘었습니다. 많을 땐 1년에 10편씩도 했고요. 올해도 벌써 대여섯 작품을 했는데, 다음 달에도 극단 ‘따뜻한 사람들’의 ‘아빠’ 공연이 예정돼 있습니다.”
물론 박 배우의 연기 인생이 순탄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젊은 시절, 경제적 이유로 배우의 삶을 잠시 뒤로 하고 취업하기도 했다. 그는 “직장을 다니면서도 연기의 감을 잃지 않으려 1년에 한 번씩은 꼭 무대에 올랐다”며 “결국에는 미련을 못 버리고 돌아오게 됐다”고 회상했다.
박 배우는 다른 인물의 삶을 간접적으로 살아볼 수 있다는 점을 연기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았다. “저는 연극 무대에서 진시황 장수왕 등 동서양의 왕이란 왕은 다 해봤어요. 영화에서는 판사 국정원장 장관도 했고요. 배우를 안 했다면, 오롯이 인간 박찬영으로만 살았겠죠.”
현재 연극 말고도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지만, 뿌리나 다름없는 부산 연극계에 대한 애정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는 “부산에 아직까지 ‘연극전용극장’이 하나도 없다는 게 아쉽다”며 “연극단체를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배우, 스태프 등 인재를 키우는 일 또한 부산시가 좀 더 의지를 갖고 해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연극은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라고 말하는 박 배우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관계’다. 그는 “무대에서는 선후배가 아닌 동등한 배우로 서야 연기도 잘 된다”며 “선배라고 후배들이 다가오기를 마냥 기다리지 않고, 현장에서 젊은 배우들과 어울리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 연극 무대를 함께 지켜가는 후배들을 위해 따뜻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객석에서 보면 무대가 화려하니까 배우가 멋있어 보일 수 있지만 실제 생활은 힘듭니다. 연극을 한다는 건 가난하고 배고픈 일이 될 수도 있는데, 그런데도 ‘꼭 하고 싶다’는 절실함이 있어야 해요. 그런 간절함으로 끝까지 버티다 보면 누구에게나 한 번은 반드시 기회가 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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