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321> 사십여 년 만에 고향집에 돌아와 읊은 초의선사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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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히 고향 떠난 지 사십여 년 만에(遠別鄕關四十秋·원별향관사십추)/ 흰 눈 같은 머리 깨닫지 못하고 돌아왔네.
/ 마음이 죽었는데 한(恨)은 어디서 일며(心死恨從何處起·심사한종하처기)/ 피가 말랐으니 눈물 역시 흐르지 않네.
위의 시는 조선 후기 우리나라 차의 이론을 정립한, 차성(茶聖)으로도 불리는 초의선사(艸衣禪師·1786~1866) 의순(意恂)의 시 '고향에 돌아와 지은 시(歸故鄕詩·귀고향시)'로, 그의 문집인 '초의시고(草衣詩藁)'에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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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히 고향 떠난 지 사십여 년 만에(遠別鄕關四十秋·원별향관사십추)/ 흰 눈 같은 머리 깨닫지 못하고 돌아왔네.(歸來不覺雪盈頭·귀래불각설영두)/ 새터 마을 옛집은 잡초에 묻혀 간데 없고(新基草沒家安在·신기초몰가안재)/ 옛 선영은 이끼만 수북해 발자국마다 수심이네.(古墓笞荒履跡愁·고묘태황리적수)/ 마음이 죽었는데 한(恨)은 어디서 일며(心死恨從何處起·심사한종하처기)/ 피가 말랐으니 눈물 역시 흐르지 않네.(血乾淚亦不能流·혈건루역불능류)/ 외로운 중(僧)은 다시 구름 따라 가리니(孤笻更欲髓雲去·고공갱욕수운거)/ 아서라, 수구초심이란 말조차 부끄럽네.(已矣人生傀首邱·이의인생괴수구)
위의 시는 조선 후기 우리나라 차의 이론을 정립한, 차성(茶聖)으로도 불리는 초의선사(艸衣禪師·1786~1866) 의순(意恂)의 시 ‘고향에 돌아와 지은 시(歸故鄕詩·귀고향시)’로, 그의 문집인 ‘초의시고(草衣詩藁)’에 들어있다.
전남 무안군 삼향면 초의길 30(왕산리 943)에서 출생한 선사는 16세 때 전남 나주시 남평 운흥사(雲興寺)에서 민성(敏聖)을 은사로 삼아 출가하고, 대흥사(大興寺)에서 민호(玟虎)에게서 구족계를 받았다.
그는 출가한 지 사십여 년 만에 고향을 찾았다. 옛집이 있던 자리는 잡초에 묻혀있고, 조상 산소도 이끼에 덮인 채 황폐해져 있다. 속세 인연을 끊은 선사이니, 고향집이 무너졌다고 무슨 한이 생길 것인가. 한이 없는데 눈물은 왜 흘리겠는가. 하지만 다시 고향집을 떠나는 발길에 눈물을 삼켰으리라.
필자는 초의선사와 차(茶)과 관련해 이곳저곳에서 강의하고 글도 종종 쓴다. 어제 화개장터 인근 화개터미널 옆 ‘쉼표하나 카페’에서 지인과 초의선사의 위 시에 대한 이야기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옆자리 손님 한 분이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커피를 마신지도 아세요?”라고 물었다.
지난 1일부터 필자의 남동생 조병훈(61)이 이 카페를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그전부터 필자는 주로 이곳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있다. “고종 임금이 처음 마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고 답했다. 1896년 아관파천 때 고종이 러시아 공관에서 커피를 마셨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커피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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