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양 불소기준 완화, 누구를 위한 선택인가[기고/최상일]
필자는 32년간 대학에서 토양 및 지하수 환경 연구와 교육을 마치고 정년퇴직한 환경공학자로 국가가 지정한 환경오염 기준치를 민간협회가 상향 조정을 요구하고 이를 국가가 받아들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환경오염 기준치는 국가가 국민과 생태계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설정한 약속이며 이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약속을 국무조정실이 먼저 저버려 매우 실망스럽다.
주택 건설 관련 민간협회는 불소가 자연 기원이며 치약에도 사용되는 물질이고 불소 오염 토양 정화에 따른 공사 기간 지연 및 공사비 증가 등을 이유로 불소 토양오염 기준 400㎎/㎏의 상향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 안전과 국가의 환경기준치를 완전히 무시하고 주택 건설업자들의 이익만 생각하는 이기적 주장으로, 오염 부지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특정 기업의 바람으로 국회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정부도 이에 동조하고 있는 느낌이다.
국내 지질 특성상 자연 기원 불소 오염 토양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우리나라 1지역 토양의 불소 평균 농도는 229.6㎎/㎏으로 현재 오염 기준 400㎎/㎏보다 확실히 낮은 값이다. 미국 국가연구위원회(NRC) 보고서에 따르면 불소에 대한 노출은 인체의 거의 모든 장기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정되며 과학적 연구 결과 잠재 유해성이 입증되고 있다. 따라서 불소가 자연 기원이든 인위적 오염이든 불소의 유해성 때문에 인체 및 생태계 보전을 위해 환경오염 기준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불소치약의 불소 함유량 한계를 1500ppm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이 수치는 유독한 불소가 아니며 화학반응에 의해 성질이 변한 플루오르화물(fluoride)을 의미하므로 토양 불소 오염기준치와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또한 최근 국내외에서 불소치약 대체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 인체에 영향이 있기 때문이다.
주택 건설 특성상 지하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굴착된 토양은 대부분 건설 부지 밖으로 반출되므로 반출된 오염 토양을 외부 토양 정화 업체에서 정화 처리한다고 해도 그에 따른 추가 공사 기간 지연은 발생되지 않는다. 또한 지난해 9월 15일 기준 서울특별시 사업시행인가 자료에 의하면 사업 추진 부지 총 162개 중 37개 현장이 환경영향평가 대상이며 그중 오염이 발견된 현장은 10개소다. 즉, 사업 추진 부지의 6.2% 정도에서만 정화가 필요한 셈이다. 따라서 국가 기준치가 잘못돼 있어 주택 건설 진행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과도한 주장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오염 부지는 매매 시 정화 비용 등을 고려해 거래되므로 추가적으로 정화 비용이 발생되는 부지는 극히 일부분일 것으로 판단된다.
토양 불소 기준 적용 사례 살펴보니…
불소 토양오염은 자연 기원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과거에 매립된 불법 폐기물의 용출로도 초래될 수 있으므로 토양오염 기준은 엄격히 유지되고 관리돼야 하며 건설 현장에서 발견되는 오염 토양의 반출 과정은 더욱더 엄격하게 관리돼야 한다. 만약 불소 토양오염 기준치를 올린다면 기존 기준치와 상향된 기준치 사이의 정화되지 않은 불소 오염 토양은 전국 어디에나 뿌려질 수 있다. 건설 전 땅속에 존재하던 불소 오염 토양이 굴착으로 파쇄돼 오염과는 전혀 상관없는 타 지역의 주거지 건설 현장, 농경지 복토, 운동장, 공원 조성 등에 사용된다면 국민의 불소 노출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원래 불소 오염 토양과 전혀 상관이 없는 대다수의 선량한 국민이 건강과 재산상에 큰 피해를 입게 된다.
불소 오염 토양은 인체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불소의 식물 축적은 식물 성장 저하 및 수확량 감소를 유발하며 곤충 및 가축의 경우에도 생육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최근 자연 기원 불소 함유 토양에 대한 용출 연구에서 정제수만으로도 0.03∼2.43%가 유출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포항·경주 지역 418개 간이 상수원 지하수의 광범한 수질 조사 결과 다수의 시료에서 불소 농도가 먹는 물 기준치(1.5㎎/ℓ)를 초과했다. 이렇게 토양오염은 그 특성상 지표수 및 지하수 수질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불소 오염 토양 기준을 해외 사례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각 나라의 환경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다. 즉, 우리나라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캐나다의 경우 국토 면적이 우리보다 98배나 넓지만 불소 기준은 200㎎/㎏(농경지)으로 2배 강하게 설정돼 있고, 독일 베를린주는 100㎎/㎏(민감지역)으로 4배 강하게 설정돼 있다. 호주는 우리와 비슷하게 440㎎/㎏으로 설정돼 있으며 미국과 일본 등은 자국의 환경 여건에 맞게 우리보다 약하게 설정해 적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환경 여건은 70% 이상이 산악 지역으로 인구 대비 이용 가능한 주거지·농경지 등 1지역이 극히 적어 해외의 토양 불소 기준을 설정해 적용하고 있는 나라에 비해 매우 열악하다. 따라서 불소 환경기준 완화는 우리나라의 환경 여건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사례도 없다. 또한 국민의 건강, 행복과 직결되는 환경기준치를 완화하려는 것 자체가 매우 위험한 발상이며 이는 다른 환경오염 물질들에 대해서도 환경기준 완화 요구 도미노 현상을 불러올 수 있다.
“토양오염 우려 기준치 지켜져야”
결론적으로 국가가 정한 주거지와 농경지의 불소 토양오염 우려 기준치 400㎎/㎏은 국민과 생태계의 안전을 위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불소 토양오염 우려 기준치를 초과하는 정화 대상 토양은 불소의 기원이 문제가 아니라 굴착 시 반드시 정화돼야 하고 정화된 안전한 토양은 생태계로 다시 돌려보내야 한다.
환경기준치는 국가가 국민과 생태계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설정한 약속이며 이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데 정부가 환경기준치를 규제로 취급해 지금까지와는 달리 돌발적 자해 행위를 하려는 것이 안타깝다. 지금이라도 현재 23개인 토양오염 물질을 미국의 100여 개와 같이 세계적 추세에 맞춰 추가 지정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한다.
최상일 광운대 환경공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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