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조선왕실 태실’로 돌아보는 생명탄생 문화
우리나라는 예부터 아기의 출산 후 배출되는 태(태반과 탯줄)를 함부로 버리지 않고 일정한 격식을 갖춰 땅에 묻었다. 이를 장태(藏胎) 또는 매태(埋胎)라고 했는데 어디에도 없는 우리의 고유한 풍습이었다. 1980년대 병원 출산이 일반화되기 이전까지 사람들이 태를 처리하는 방식 가운데 하나였다. 또 태를 왕겨불에 태운 뒤 물에 띄워 보내거나 태를 말려 조심스레 버리는 방식도 있었다. 방법은 달라도 생명의 시작인 태를 소중히 갈무리함으로써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생명문화의식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태를 묻는 장태 행위에 대한 최초의 문헌기록은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등장한다. 김유신의 태를 높은 산에 묻고 태령산(현 충북 진천)이라 불렀다는 내용이다. 고려왕실에서도 장태를 중시했다. 고려 인종의 태실이 경남 밀양의 구령산에 안치됐다는 기록이 있고 고고학적 유물도 발견됐다.
조선왕실에서는 태어난 아기씨의 태가 국운과 잇닿았다고 믿었기 때문에 더욱 중히 여겼다. 아기씨의 태를 좋은 땅에 묻어 주면 장차 태가 땅의 기운과 조응해 아기의 무병장수는 물론 현명함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과도 결부됐다. 왕실은 관상감(觀象監·조선시대 천문·지리·측후 등을 담당한 관청)을 통해 길지와 길일을 선정해 전국 곳곳에 태실을 조성했다. 또 아기씨 가운데 장성해 왕위에 오르면 ‘가봉(加封)’이라는 절차를 통해 태실에 격식있고 화려한 석물을 추가했다.
조선왕실의 가봉태실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고자 경기, 충남, 충북, 경북도가 손을 잡았다. 지난 10월27일 태실의 가치를 확인하는 국제학술심포지엄도 개최했다. 연속유산으로 추진되는 이 등재사업은 여러 지방정부와 이해당사자, 주민과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할 컨트롤타워도 필요하다. 일제강점기 이후 훼손된 태실의 정비 복원을 통해 세계유산으로서의 완전성을 정립하는 것도 앞으로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태실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 요소인 생명 탄생과 존중의 문화를 널리 알리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현대산업사회의 물질만능 풍토에서 문화유산을 통해 생명의 가치를 반추해 보는 소중한 역할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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