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드라마 그대로 베끼고도 ‘유니크한 K호러’라니

신정선 기자 2023. 11. 13. 03: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8일 개봉한 공포 영화 ‘뉴 노멀’
영화 ‘뉴 노멀’ 제5화 ‘피핑 톰’에서 옆집 여성을 엿보는 역할로 나오는 배우 표지훈. ‘피핑 톰’은 15년 전 방영된 일본 드라마 ‘토리하다’의 4화 1편 ‘공포는 항상 당신 곁에’와 기본 스토리가 동일하며 일부 장면은 카메라 앵글과 소품까지 같다. /언파스튜디오

지난 8일 개봉한 영화 ‘뉴 노멀’(감독 정범식)이 과거 방영된 일본 드라마의 기본 스토리를 그대로 갖다 쓰고도 한국 제작진 창작인 것처럼 홍보해 논란이 일고 있다. ‘뉴 노멀’은 영화 ‘기담’(2007), ‘곤지암’(2018)을 만든 정범식 감독의 최신작. 배우 최지우, 가수 정동원 등이 출연한다. 옴니버스식으로 이어지는 에피소드 6편 중 5편이 일본 후지TV 심야 드라마 ‘토리하다(소름)’의 이야기 구조와 사실상 동일하다. ‘토리하다’는 지난 2007년 3월부터 2009년 10월까지 6화 총 34편 에피소드가 방영됐으며, 2012년과 2014년에는 극장판도 나왔다. 반전이 기발해 ‘귀신 없이도 무서운 작품’으로 공포·스릴러 팬들 사이에서 상당히 알려진 드라마다.

‘뉴 노멀’은 첫 에피소드 ‘엠(M)’부터 ‘토리하다’의 판박이다. 혼자 사는 여성(최지우)에게 화재경보기 검침원이 방문하는 이야기로, 기승전결 전개와 반전이 일본 드라마와 완전히 같다. 뉴스에 등장하는 인물의 신장이 일본 배우 키 160cm에서 최지우의 키 175cm로 변형된 것, 로봇 청소기가 방해물로 나오는 정도만 다르다. 블락비 출신 배우 표지훈이 옆집 여성을 엿보는 에피소드 5 ‘피핑 톰’은 기본 스토리는 물론, 일부 장면은 카메라 앵글과 소품, 대사까지 똑같다. 데이팅 앱을 통해 남녀가 만나는 에피소드 3 ‘드레스드 투 킬’ 역시 동일하게 전개되며, 일본 드라마의 빨간 가방만 노란 가방으로 바꿨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주인공이 익명의 질문자에게 시체 처리법을 알려주다 죽음에 이른다는 내용 등 기본 골격을 고스란히 따라간다.

문제는 영화 공식 자료나 홍보물, 크레디트 등에서 마치 한국 제작진이 최근 한국 현실을 반영해 만든 작품인 것처럼 알려 관객을 오인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10여 년 전 일본 드라마의 주제와 문제 의식이 바탕인데도 ‘신선하고 독창적인 웰메이드 스릴러’ ‘유니크한 K-호러’라고 알리고 있다. 또 “대한민국의 현실에 기반한 생생한 캐릭터들”이라고 강조한다. 대부분의 이야기를 일본 것 그대로 가져왔으나 ‘감독·각본 정범식’ 혹은 ‘시나리오·감독(Written and Directed by) 정범식’이라고 표기돼 있다. 정 감독은 최근 언론 인터뷰와 보도자료 등에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현실에 기반한 현대인의 외로움과 고립을 속도감 있게 전개했다” “유례없는 혼돈의 뉴 노멀 시대를 통과하며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이자, 작가로서의 관점을 담아보고자 했다”고 밝혔다.

제작사 측은 지난 11일 본지 문의에 “‘뉴 노멀’은 ‘토리하다’ 판권을 사들여 제작한 것이 맞는다”며 “영화 상영 후 올라가는 크레디트에 판권 부분을 표기했다”고 답했다. 본지 확인 결과, 전체 엔딩 크레디트 중간 부분에 ‘일부 아이디어는 일본 텔레비전 ‘토리하다’ 시리즈에 바탕했다’라고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로 표기돼 있었다. 그러나 이야기 구조를 그대로 갖다 쓰고 대사와 앵글까지 동일한 장면이 많아 ‘일부’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많다는 지적이다. 그나마도 크레디트에서 한국의 ‘각본팀’ ‘아이디어팀’ 뒤에 표기돼 관객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홍승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저작권법은 친고죄이기 때문에 일본 저작권자가 표기 방식에 동의했다면 법적으로는 문제가 안 될 수 있다”며 “다만 관객에게 알리는 마케팅은 윤리적인 부분이라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