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속물과 동물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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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희와 전청조의 결혼발표로 시작된 희대의 스캔들은 전청조에게 사기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폭로가 잇따르며 점점 뜨거워지더니 마침내 그가 여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화산처럼 터졌다.
반면 전청조는 동물화한 인간이라 할 수 있는데 남현희에 비해 복잡하고 미묘하다.
물질에 대한 욕망은 공통적이지만 남현희의 허영심이 속물근성이라면 전청조의 사기행각은 맹수의 사냥본능 같다.
전청조에게 남현희는, 또 다른 피해자들은 그저 자신의 욕망을 위한 타깃이자 희생양으로 도구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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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희와 전청조의 결혼발표로 시작된 희대의 스캔들은 전청조에게 사기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폭로가 잇따르며 점점 뜨거워지더니 마침내 그가 여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화산처럼 터졌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다채로운 사기수법이 이목을 끌고 'I am 신뢰에요'라는 '전청조체'가 유행하고 성전환과 임신 등 은밀한 개인적 영역에 대한 가십까지 더해져 대중의 관심은 폭발적이다. 사기 피해자인 남현희가 공범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스캔들은 극점을 향해 치닫는다.
알렉상드르 코제브는 포스트모던 시대 인류의 존재양식이 동물화와 스노비즘으로 나뉠 것이라고 예견했다. 타인을 질투하고 또 질투를 받고 싶은 욕망이 인간의 조건인데 반대로 동물은 '욕구'만 갖는다. 식욕과 번식욕 같은 단순한 동물적 욕구는 인간의 '욕망'처럼 타자의 인정이나 질투, 사회적 관계를 바라지 않는다. 반면 스노비즘은 타인의 관심과 질투가 중요하다. 남의 시선과 평가에 주체성 없이 스스로를 맞추는 속물근성이기 때문이다.
전청조에게 받은 벤틀리, 다미아니 목걸이, 샤넬 백, 반클리프아펠 목걸이, 까르띠에 시계 등을 SNS에 자랑한 남현희는 스노비즘적 인간의 전형이다. 펜싱선수로 이름을 날리면서 벌만큼 벌었다는데 부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기도 하거니와 그것은 평생 운동선수로 산 그녀에게 은퇴 이후 새로운 인정투쟁이기도 하다. 명품들로 삶을 치장하면서 타인의 부러움에 찬 시선과 동경, 질투를 받길 욕망했다. 거기서 생겨난 우월감과 도취감은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켜 사기를 의심 없이 믿어버리게 했다. 전청조라는 사람의 본질보다 그가 펼쳐보이는 물질의 환상에 눈이 멀었다. 허술한 사기수법에 홀딱 속아넘어간 것은 돈을 믿었기 때문이다. 믿을 수 없는 것도 믿고 싶게 만들고 믿기로 한 순간 의심 없이 믿어지는 것이 물신(物神)이라는 신앙이다.
반면 전청조는 동물화한 인간이라 할 수 있는데 남현희에 비해 복잡하고 미묘하다. 물질에 대한 욕망은 공통적이지만 남현희의 허영심이 속물근성이라면 전청조의 사기행각은 맹수의 사냥본능 같다. 처음엔 상상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부자로 떵떵거리며 사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자 상상은 욕망이 되고 욕망을 위한 방법론으로 보통사람들은 노력을 택하지만 그는 거짓과 속임수를 택했다. 피해자들의 눈물을 돈으로 환전하면서 상상은 어느 순간 현실이 됐을 것이다. 거기서 멈췄더라면 괴물이 되진 않았을 텐데 부에 대한 달콤한 체험은 잔상을 남겨 더 큰 부를 욕망하게 했으리라.
대개 동물은 자기 욕구를 해소하는데 타자와의 사회적 관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타자를 그저 사냥감이나 흘레붙을 대상으로 본다. 전청조에게 남현희는, 또 다른 피해자들은 그저 자신의 욕망을 위한 타깃이자 희생양으로 도구화할 뿐이다. 이 과정에서 도덕과 양심, 정의 등 타자와의 공존을 위한 인간적 미덕은 사라지고 반사회적 이기심만 남는다. 굶주리면 동족도 잡아먹는 짐승처럼 말이다. 재벌 3세, 뉴욕 출신 컨설턴트, IT그룹 임원 등등 여러 신분을 사칭한 것은 카멜레온의 위장술 같다. 동물 중에는 생존을 위해 성전환을 하거나 아예 자웅동체인 종들이 있는데 전청조는 지렁이, 달팽이, 드렁허리, 용치놀래기를 연상시킨다. 거짓이 아니면 지탱할 수 없는 세계를 만들어선 변장과 코스프레를 일삼았다.
코제브의 견해대로라면 남현희와 전청조는 너무 흔하고 어디에나 존재한다. 스노비즘적 인간이 있는 한 그를 먹잇감으로 노리는 동물들도 있다. 우리는 속물과 동물 사이에 있는 걸까. 씁쓸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물과 동물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으면서 정직한 자기 얼굴로 묵묵히 삶을 가꿔나가는 사람들이 보편적 인간군상인 세상을 계속 믿고 싶다.
이병철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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