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관 칼럼]이준석의 복수, 윤석열의 해원
가치도 인물도 빈약한 ‘화풀이 정당’ 한계
문제 본질은 신당 자체보다 여권의 분열상
썩은 사과 취급보다 ‘회군’ 명분 주는 게 득
이 전 대표는 참 특이한, 기존 정치 문법으론 잘 해독이 안 되는 정치인이다. 26세 때 비대위원을 했고, 최고위원을 거쳐 당 대표까지 지냈으면서도 정작 지역구에선 3번 출마해 3번 낙선한 ‘가분수’ 경력을 말하려는 건 아니다. 12년 동안 정치를 하면서 치밀한 언론 플레이, 결코 지지 않으려는 자극적인 언사 등으로 늘 화제의 중심에 서 있었지만 권력게임에 능할 뿐 무슨 공동체 의식을 갖고 있는지, 무슨 가치를 지향하는지 알 수 없다. 늘 “내가 옳다”는 식이고,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말은 들은 기억도 없다. 그럼에도 메시지 전달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가 띄우는 신당도 마찬가지다. 정당은 지향하는 가치, 이를 실현하기 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그의 신당은 둘 다 빈약하다. 최근 그를 만난 정치권의 한 인사가 “국민의힘에 대한 복수 정당의 성격이 강했다”고 했다. 딱 맞는 진단이다. 복수(復讐) 심리로 누구를 망하게 하겠다는 식의 정당 깃발이 제대로 휘날릴 수 있겠나. 더불어민주당 비명계, 노회찬 정신의 정의당 등등 함께할 수 있는 대상을 툭툭 던졌지만 다들 선을 긋는다. 물론 이 전 대표의 최대 무기는 나이다. 실패해도 또 기회가 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도 곧 40대에 접어든다.
그 점에서 문제의 본질은 이준석 신당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런 목소리가 주목을 받는 현재의 정치 지형이다. 정권견제론이 정권안정론을 10%포인트 안팎 상회하는 상황이 거의 굳어진 형국이다. 연원을 따져 보면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거푸 승리한 뒤 잠시나마 50%를 넘었던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30%대로 급락한 것은 지난해 7월 초다. 인사 잡음 등 다른 요인도 많지만 이 전 대표를 쫓아낸 시점과 거의 일치한다. 섣부른 당권 장악 시도로 스스로 무덤을 판 탓도 있지만 ‘이준석 제거’는 1차로 그가 대변했던 20, 30대 남성의 이반으로 이어졌다. 당정 혼연일체론과 윤핵관 등 신실세의 부상은 ‘배제의 정치’로 읽히며 우군 이탈을 낳았다.
10·11 강서구청장 보선 참패 후 한 달이 지났다. 그나마 인요한 효과로 참패 직후의 초상집 분위기에선 벗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 변화는 아니다. 외과 수술은 이뤄진 게 없다. 그 사이 용산 참모진 개편 하마평에서 보듯 “이러다 폭망”의 위기감은 슬슬 사그라지고 정책 이슈 등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다는 안일함이 고개를 들고 있다. 수석을 비롯한 용산 참모들 상당수가 인 위원장이 말하는 ‘험지 도전’의 자세는커녕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지역구 낙점을 기대하는 듯한 모습이다. 당의 호가호위 세력들은 불똥이 튈라 바짝 엎드려 있는 형국이다.
사느냐, 죽느냐의 ‘본질 대 본질’의 싸움이 곧 다가온다. 담대한 중도 보수 진영 재편과 결집을 이뤄내지 못하고 집토끼에만 매달리다 내년 총선에서 패배하면 윤 대통령에겐 어떤 쓰나미가 몰려올지 알 수 없다. 만일 100석 이하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현실화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건 현 정권이 아무 개혁 성과도 내지 못하고 5년 임기를 허송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현 여권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규모의 인적 청산, 청년 정치인 대거 당선 안정권 투입 등 일반 국민의 상상을 뛰어넘는 국정 대전환을 이뤄낼 수 있을까. 그 연장선에서 이 전 대표를 향한 해원(解寃)의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미스터 린턴’ 설화에도 궤변으로 넘어가려는 태도까지 겹치며 “이젠 손절하라”는 보수 내 여론도 거세다. 그럼에도 ‘썩은 사과’ 취급하며 도려내는 게 능사일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대선 지지층 복원과 관련된 이슈이기 때문이다. 역대 총선을 보면 이질적인 당 안팎의 세력을 어떻게 한데 묶어내느냐가 승패를 가르곤 했다. 회군의 명분과 조건은 만들기 나름일 텐데…. 물론 그쪽으로 갈 가능성이 낮다는 게 문제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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