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어때]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는가, 재즈 영화 ‘블루 자이언트’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22번째 레터는 재즈 영화 ‘블루 자이언트’입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죠. 지난달 18일 개봉했으니 한 달 가까이 됐는데 이제야 전해드리네요. 원래는 돌비 애트모스관에서 한 번 더 보고 일반 영화관과 소리를 비교해서 레터를 보내려고 했는데(레터 독자를 위해 차별화된 콘텐츠를!) 차일피일 시간이 지나고 말았네요. 이러다 영화 내려가겠다 싶어 부랴부랴 씁니다. 거두절미. 이 영화, 꼭 극장에서 보세요. OTT는 이 느낌 절대 못 담습니다. 재즈 모르셔도 됩니다. 한번쯤 내가 좋아하는 걸 좋아하면서 인생을 화르르 불살라보고 싶다, 그런 기분이 들 때 보시면 절로 타오르게 되실 거에요.
영화 ‘위플래쉬’를 기억하시는지요. 재즈 드러머가 주인공이죠. 영화 시작하고 30분쯤 됐을 때 주인공 방 벽을 보여주는데 포스터가 걸려있어요. 거기에 적힌 말. ‘능력이 달리면 락 밴드에서나 연주하게 된다(If you don’t have ability, you wind up playing in a rock band)’. 전설적인 재즈 드러머인 버디 리치가 한 말이죠.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롹밴드를 저리 무시하나 싶을수 있는데, 비록 유튜브를 통해서지만 그의 연주를 보면 “그래, 이 정도면 그 정도 자부심 가질 수 있겠다” 싶어집니다. 과연 얼마나 하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감탄 또 감탄. (제가 이 레터 젤 아래에 동영상 붙일 테니 함 보세요. 저절로 빠져드실겁니다.)
오늘의 영화 ‘블루 자이언트’에도 재즈 연주자들이 나옵니다. 방년 18세 청년 셋이에요. 이 셋이 끓어오르다 못해 파랗게 불타는 영화가 ‘블루 자이언트’입니다. 뭐하다 타느냐, 그게 바로 재즈입니다. 별(星)도 그렇다잖아요. 진짜 뜨거운 별은 붉은 별이 아니라 파란 별이라고. 그래서 이 영화 제목이 ‘재즈의 거성(巨星)’을 뜻하는 ‘블루 자이언트’입니다.
제가 연초에 피아노를 다시 배워보겠다고 잠시 학원에 다녔거든요. 광화문에 그런 학원 있어요. 암때나 가서 혼자 칠 수도 있고 배울 수도 있는. 제가 꼬마 때 배운 건 클래식 피아노라, 높은음자리표 낮은음자리표부터 다시 그려보고, 지브리 음악 몇 곡 쳐보고, 그러다 재즈곡 배우기까지 갔는데요, 그때 든 생각. “이건 전부를 바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클래식 피아노는 정해진 길을 따라 우아하고 정확하게 걸어가야 된다고 보면, 재즈는 일단 길이 없고요, 악보에도 몇 가지 안 적혀있더군요. 본인이 알아서 리듬 타고 알아서 박자 맞춰 흥을 내야하는데. 엄청난 연습과 노력 또 노력 없인 어설픈 흉내 내려다 시간만 버리겠더군요. 기자 일도 잘 못해서 허덕허덕하는데…. 깔끔하게 내려놓고 ‘앞으로 재즈는 듣기만 하기’로 정리했습니다. 제가 불타는 건 기사만인걸로~
영화 ‘블루 자이언트’는 고등학교 졸업한 주인공이 “재즈로 세계 최고가 되겠다”며 도쿄로 상경하면서 얘기가 시작돼요. 돈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대도시 도쿄. 있는 건 재즈를 향한 집념뿐. 근데 이 집념 하나가 다른 모든 걸 이깁니다. 그 단순한 에너지의 힘이 엄청나거든요. 좌고우면이란 걸 모르던 10대의 집중력. 누구나 한때 가졌을 법한 순도 100%의 열정. 주인공 친구는 메트로놈 대신 콜라캔으로 박자 맞춰 주다 아예 재즈 드러머가 되고, 원래부터 피아노 잘 치던 다른 청년을 우연히 만나게 되고. 이 셋은 다른 거 정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재즈를 잘하는 게 목표고, 막노동에 공사장 교통 정리 알바까지 뭐든 하며 버텨요. 스무살이 되기 전 목표는 최고의 재즈클럽인 ‘쏘블루’ 무대에 서보는 것. ‘쏘블루’는 도쿄 아오야마에 있는 재즈클럽 ‘블루 노트 도쿄’가 모델입니다. 이 셋은 꿈의 무대에 설 수 있을까요.
먼저 단점부터. 이 영화는 작화가 아쉽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를 보다 이 영화를 보면 지나치게 선명한 비교가) 그리고 청각을 시각화하는 장면이 어설퍼요. 일부에서 CG가 별로라고 하던데, CG기술이 별로라기보다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창작자가 공감각적으로 장악하지 못했어요. ‘닥터 스트레인지2′에서 주인공이 베토벤 교향곡이 흐르는 중에 음표를 날리는 장면 기억하세요? 그런 아이디어 비슷한 거라도 냈으면 좋았을텐데.
그럼에도, 꼭 영화관에서 보시길 추천드려요. 위에도 말씀드렸던 집념과 열정의 에너지가 다른 장르도 아닌 재즈와 만나 펼쳐내는 힘이 대단합니다. 주인공 표현처럼 ‘뜨겁고 강력’합니다. 영리한 접근이라고 생각한 것이, 재즈의 전설 같은 음악가들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는 거에요.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재즈 인구가 줄어든게 어느샌가 재즈가 너무 어렵고 난도 높은 장르로 오해 받으면서 진입 장벽이 높아진 점도 있거든요. 마일스 데이비스, 델로니어스 몽크, 존 콜트레인... 그런 이름 모르면 어떻겠어요. 주인공 대사처럼 ‘재즈는 감정의 음악’인데요. 아무 것도 몰라도 ‘전력을 다하면 반드시 전해진다’고 믿는 주인공처럼, 예열 없이도 즉석에서 타오를 수 있는 게 재즈의 마력이니까요. 그냥 보다보면 듣다보면 빠져듭니다.
제 마음에 남는 장면 하나. 재즈 드러머가 된 친구가 초반에 잘 못하거든요. 하루 아침에 실력이 늘 리가 없죠. 혼자서 무진무진 노력하는데 어느 날 공연 마치고 나니 한 할아버지가 다가와 말해요. “자네, 지난 8개월 동안 좋아지고 있어. 나아지고 있어. 그 좋아지는 소리 들으러 왔어.” 듣는 저도 찡한데, 이 친구 눈에서 눈물이 어찌 아니 나겠습니까. 누군가가 그렇게 지켜봐준다는 것, 그것도 머리 하얀 할아버지가 자신이 나아지는 걸 보러 일부러 찾아와 준다는 것.
이 대목에서 지난 레터에서 말씀드린 홍상수 영화 ‘우리의 하루'의 대사가 생각나네요. “내 시집 많이 안 보면 어때? 넌 봤자나? 좋았으니까 그런 거잖아. 그거면 됐지.” 대략 이런 대사였던 기억. 누군가가 무언가를 위해 자신을 태웠다면, 그리고 다른 누군가가 그걸 알아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오늘의 레터 역시 얼마나 많은 분이 보실지 모르겠지만, 단 몇 분이더라도, 좋으셨다면, 그걸로 저도 됐습니다. 앞으로 더 나아지는 거 보러 ‘그 영화 어때’ 클릭해주세요. 저도 괜히 욕심 내다 늦어지지 말구 짧게라도 자주 보내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감사합니다. (위에 말씀드린 버디 리치의 드럼 동영상 아래에 붙입니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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