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인기 없는 바이든, 정책은 승리했다

박영준 2023. 11. 12.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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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주 공화당 영킨 주지사
인기 얻다 낙태 규제 강화 역풍
‘낙태권 지지’ 민주당 주의회 장악
대선서도 주요 쟁점 부상 예고

지난 4차례의 대선에서 모두 민주당의 손을 들었던 미국 버지니아주는 2021년 11월 주지사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인 글렌 영킨을 선택했다. 영킨 주지사는 학교에서 ‘비판적 인종 이론’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공약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인종차별 문제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문제라고 가르치는 비판적 인종 이론이 백인 아이들은 가해자로, 비백인 아이들은 희생자로 규정한다고 주장했다. 고학력·고소득층이 모인 북버지니아를 중심으로 자녀를 둔 중산층 백인, 특히 여성 유권자들이 결집하면서 영킨이 선거를 뒤집었다.

버지니아주에서 공화당 주지사로 선출된 영킨은 전국적인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2m가 넘는 훤칠한 키, 농구 장학생 출신, 하버드대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고 사업가로 성공한 이력까지 더해지며 공화당의 유력 대선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박영준 워싱턴 특파원
영킨은 취임과 동시에 비판적 인종 이론 교육을 금지했다. 18억달러 감세 계획을 실행하고, 세금을 환급했다. 가스세 인상 계획을 전면 철회했고, 식품 판매세도 폐지했다. 올해 3월에는 버지니아주 학부모에게 3000만달러의 ‘학습 회복’ 보조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교육 공백으로 학업에 뒤처진 학생들을 위해 유치원생부터 12학년(한국 고등학교 3학년에 해당) 학생 1인당 1500달러 보조금을 지급했다. 개인 교습이나 과외, 학원 등 주에 등록된 교육 기관에 보조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자녀가 두 명인 가구는 아이들 학원비 3000달러가 생긴 것이다. 교육 보조금은 지난여름부터 순차적으로 지급됐다. 지난 8월에는 주의회가 세금 감면 조치에 따라 개인 납세자에게는 200달러, 부부 납세자에게는 400달러를 환급하기로 했다. 환급금은 체크(수표) 형태로 주민들의 우편함에 배달됐다.

영킨 주지사는 지난 7일 버지니아주 주의회 선거 당일 투표 현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세금을 감면했다”면서 “코로나19로 인한 학습 부진을 따라잡기 위해 집중 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런데 버지니아 주의회 선거 결과가 놀라웠다.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세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양자 대결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이 열세를 면치 못하면서 버지니아 주의회 선거 결과 역시 공화당이 우세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으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민주당은 상원 다수당 지위를 지켜내고, 하원 다수당 지위를 공화당에서 빼앗아왔다. 주 상·하원을 모두 장악해 핵심 정책을 관철하고, 대선 후보로서 입지를 굳히려던 영킨의 구상은 물거품이 됐다. 버지니아주지사는 4년 단임제로 영킨이 정치적 타격을 회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버지니아 주의회 선거 결과를 바꾼 것은 낙태 정책이다. 영킨 주지사는 강간, 근친상간, 산모 건강 위험 등 특정 사유를 제외하고는 임신 15주 이후 낙태를 금지하는 법률 제정을 추진했다. 현재 버지니아주는 임신 26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는데 낙태 규제 강화를 예고한 것이다. 반대로 민주당은 낙태권 보호를 선거 전면에 내걸고, 낙태권 폐지 정책을 겨냥한 광고에 수천만달러를 쏟아부었다. 영킨의 교육 정책을 지지했던 고학력·고소득층, 그중에서도 여성 유권자들이 결집해 낙태 규제 입법에 제동을 걸었다.

버지니아 주의회 선거 이튿날 만난 지인의 말이 이번 선거를 잘 요약해 준다. 그는 “최근 우편함을 열었는데 와이프와 내 몫의 세금 환급금이라며 400달러 수표가 와있었다. 선거를 일주일 정도 앞두고 수표를 받으니 기분이 이상했다”며 “공화당에 투표해야겠다고 농담했더니 아내가 화를 냈다. 아내는 낙태 금지에 분명하게 반대한다”고 했다.

바닥을 치는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 선거를 앞두고 지원금과 세금 환급 등의 물량 공세도 낙태 정책에 대한 유권자의 선택을 이기지 못했다. 내년 미 대선도 낙태 문제가 주요한 쟁점이 될 전망이다. 미 언론은 ‘바이든은 인기가 없지만, 정책은 승리했다’고 분석했다.

박영준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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