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분쟁에 막힌 ‘이승훈 역사공원’

박준철 기자 2023. 11. 12.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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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묘역 공원화 사업 지연
인천 남동정수장 인근에 있는 이승훈 묘역 산책길이 12일 폐쇄돼 있다.
최초 천주교 영세자…명동에 교회 창설 뒤 신유박해 순교
공원 진입로 땅주인 보상 불만 이전 거부…2년째 ‘제자리’
시 “소송 후 내년 6월 준공”…천주교 측 “행정 미숙 탓”

12일 인천 남동구 장수고가교 옆 상수도사업본부 남동정수장. 도로 옆 보도블록은 깨진 채 방치됐고 철제펜스는 무성하게 자란 풀로 덮여 있었다. 남동정수장 옆 비좁은 도로를 따라가니 산 밑자락에 원형 모양의 2층짜리 역사문화체험관이 뼈대를 드러냈다.

역사문화체험관 왼쪽에 ‘한국 천주교 첫 영세자 이승훈 베드로 순교자 묘역’이라고 쓰여 있는 안내판이 보였다. 그곳에서부터 1.3㎞ 더 가면 이승훈 묘역이 나오지만, 묘역으로 올라가는 산책로 입구는 폐쇄됐다. 샛길을 따라 올라간 묘역에는 무덤 위쪽 중앙에 십자가와 묘비, 안내판 이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인천시와 천주교가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자인 이승훈(세례명 베드로)을 기리기 위해 추진한 ‘이승훈 역사공원 조성 사업’이 토지 보상 문제로 차질을 빚고 있다. 인천시에 따르면 2021년 착공한 이승훈 역사공원은 지난해 6월 개장할 예정이었으나 이전 토지 소유주와의 갈등으로 공사가 멈춰 선 상태다.

이승훈은 한국가톨릭교회 최초 영세자이다. 아버지를 따라 25세에 중국에 갔던 이승훈은 선교사들로부터 교리를 배웠다. ‘조선 교회의 주춧돌이 되라’며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1785년 서울 명동에 한국 최초의 천주교회를 창설했다. 이후 1801년 신유박해 당시 참수형으로 순교한 후 조상들이 살았던 장수동 조곡산 반주골에 묻혔다. 이승훈 묘 바로 밑에는 참수된 두 아들의 묘도 있다.

2021년 착공한 이승훈 역사공원은 이승훈 묘역 일원 4만5928㎡에 인천시가 111억원을 들여 역사공원과 산책길을 만들고, (재)인천교구천주교회유지재단이 70억원을 들여 역사문화체험관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성당과 전시관·영상관 등이 들어설 역사문화체험관은 공정률이 90%를 넘었다.

그러나 역사공원은 산책로가 완공됐음에도 개방하지 않고 있다. 역사문화체험관 쪽 산책로와 마찬가지로 남동정수장 꼭대기에서 이승훈 묘역으로 통하는 산책로도 폐쇄됐다. 도로 확장 등 공원 사업도 진척이 거의 없다.

천주교 신자들은 산비탈의 위험한 샛길을 통해 이승훈 묘역을 방문하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80대 신자는 “11월은 돌아가신 분을 위해 기도하는 위령기도의 달이어서 묘역을 방문했다”며 “하지만 묘역으로 가는 길이 폐쇄돼 샛길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인천시는 2018년 도시계획시설(공원)로 결정하고 토지 20필지에 대해 보상하고 지장물에 대한 소유권을 시로 이전했다. 그러나 원래 이 땅과 지장물을 소유하고 있던 A씨는 영업손실 보상 등을 요구하며 이전을 거부하고 있다. 인천대공원사업소는 이에 온실 등 8동의 지장물에 대해 12차례 자진철거 공문과 8번의 행정대집행 예고장을 보냈다.

A씨는 “인천시가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공원으로 결정했고, 토지를 강제로 수용하면서 보상은 턱없이 낮게 해줬다”며 “제대로 된 손실 보상을 해주지 않으면 절대 이전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인천시는 A씨를 상대로 명도소송을 진행 중이다. 내년 초 법원 판결이 나와 지장물을 철거하면 2024년 6월 역사공원이 준공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초 개장 계획보다 2년이나 지연되는 것이다.

천주교 관계자는 “인천시의 미숙한 행정 때문에 역사공원 조성 사업이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대공원사업소 관계자는 “A씨와 법적 분쟁이 마무리되면 공원 공사를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박준철 기자 terry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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