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이트] 시한폭탄 부동산 PF‥빚더미에 짓눌린 한국 경제

이준희 2023. 11. 12.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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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채 100억 원이 넘는 한강변 고급주택들.

화려한 명품 거리.

서울 강남에서도 땅값이 가장 비싼, 강남 속 강남, 청담동입니다.

청담동 프리마호텔이 있던 자리.

큰길을 따라 가림막을 쳐 놨습니다.

호텔을 철거하고 최고급 주상복합 건물을 짓기로 했습니다.

최고 49층, 한강 조망도 가능합니다.

그런데 개발이 중단됐습니다.

개발업체가 추진하던 4,000억 원대 대출이 막혔습니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PF 대출 연장이 거부됐습니다.

짓기만 하면 초고가 분양이 보장되던 강남.

그 불패 신화가 휘청이기 시작했습니다.

[청담동 부동산중개업소] "청담동에서 무너지면은 수도권이고 여기 다 문제 생기죠. 이렇게 좋은 땅도 안 되는데 나머지가 되겠냐고. 굉장히 안 좋겠죠."

국내 PF 대출은 133조 원.

저금리 시기 엄청나게 돈을 풀면서, 규모가 크게 불어났습니다.

하지만 금리가 치솟고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빚의 역습이 시작됐습니다.

PF발 경제 위기가 닥쳐오고 있습니다.

[김경민/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이게 무너지면 금융회사까지 다 전가가 될 수가 있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 막아주고 있는 형편인데 전체 중에서 일부는 굉장히 심각한 것들이 있기 때문에 빨리 빨리 터트려야 돼요. 빨리 빨리. 만약에 이게 내년 여름에 다 같이 터진다, 그때는 정말 큰 문제거든요."

◀ 이휘준 ▶

안녕하십니까, 이휘준입니다.

5년 가까이 이어진 부동산 호황이 끝나고, 언제 끝날지 모를 침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사이 엄청나게 불어난 빚이 지금 한국 경제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오늘 스트레이트는 부동산 PF발 위기론의 실체, 그리고 정부의 대처를 짚어봅니다.

이준희 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이 기자, 우선 이 PF가 뭡니까?

◀ 이준희 ▶

PF는 '프로젝트 파이낸싱'의 약자입니다.

담보나 신용이 아니라, 사업계획으로 대출받는 방식을 말합니다.

◀ 이휘준 ▶

담보나 신용으로 돈을 빌리는 게 아니라면, 뭔가 위험성이 있어 보입니다.

◀ 이준희 ▶

그렇습니다.

사업이 잘 될 때는 큰 돈을 벌지만, 지금처럼 경기가 안 좋을 때 문제가 터집니다.

조금 전 보신 청담동 사업,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 VCR ▶

사업이 중단된 청담동 현장.

땅값만 4천100억 원이나 되는 큰 개발 사업입니다.

시행사는 재작년 12월 3.3㎡당 2억 9천만 원에 이 땅을 계약했습니다.

땅값이 가장 높았던 때입니다.

[청담동 개발 시행사 회장] "15층 이상만 올라가면 한강이 기가 막히게 보입니다. 그런 면에서도 대한민국 최고의 땅이라고 저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돈은 10%, 410억 원만 냈습니다.

나머지는 어디서 구했을까요?

금융기관에서 빌렸습니다.

PF 대출입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은 주로 부동산 사업에서 쓰는 금융기법입니다.

원래 은행이 기업에 돈을 빌려줄 때는 담보를 잡거나 신용을 평가합니다.

그런데 PF 대출은 이런 일반적인 대출과 다릅니다.

프로젝트, 즉 사업 계획을 보고 돈을 빌려줍니다.

분양이 잘 될지 사업성을 따져서, 잘 되겠다 싶으면 돈을 빌려주는 겁니다.

그런데 사업 계획, 미래 수익은 언제나 불확실한 것이어서,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사업이 성공하면 금융기관도 큰돈을 벌지만, 사업이 실패하면 큰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돈이 넘쳐나고, 집값과 땅값이 뛰고,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는, 못 빌려줘서 안달이었습니다.

[청담동 개발 시행사 회장] "<제일 고점이 언제였죠?>. 20년, 21년이죠. <그때는 어느 정도였어요?> 시행사가 땅을 못 구해서 난리였으니까 구하기만 하면 금융사나 또는 시공사 서로 와서 도와주려고 난리를 떨던 시기였습니다."

청담동 개발 시행사는 지난해 5월 1년 만기로 땅값 4,640억 원을 빌렸습니다.

새마을금고 등 금융기관과 투자자 26곳이 돈을 빌려줬습니다.

그때만 해도 금리는 최저 4.5%, 높아야 7%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 금리가 치솟았습니다.

1년 만에 최저 10%, 최고 13%가 됐습니다.

이러니 PF 대출로 벌인 사업들이 줄줄이 중단되는 겁니다.

[충남 지역 시행사 임원] "한 3~4년 전만 해도 이게 4.5%니까 뭐 한 1천억을 빌렸을 때 한 45억? 그러면 1년 했을 때 그렇게 나눠서 내면 큰 부담이 없었는데 지금은 1천억 받았을 때 1백억 정도 가까이 이율이 나오니까 쉽지가 않죠. 그러니까 이게 사업해서 벌 돈을 다 이자로 내도 힘든 거예요, 사실. 다들 금리 때문에 PF 사업 자체가 지금 다 스톱돼 있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게다가 주택 분양시장까지 얼어붙었습니다.

사업이 잘될 거라는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시행사는 사업성이 좋다고 주장했지만 가장 많은 돈을 빌려준 새마을금고가 대출연장을 거부했습니다.

[새마을금고중앙회 홍보팀] "내부 심사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어떤 이제 사업성에 대한 부분도 검토가 됐을 거고요."

대출 연장 협의가 최종 결렬되면 어떻게 될까요?

시행사는 갚을 돈이 없습니다.

그럼 금융기관들은 땅을 경매나 공매에 부칩니다.

선순위 채권자는 돈을 어느 정도 회수하지만, 후순위 금융기관과 개인투자자들은 한 푼도 못 건질 수 있습니다.

[청담동 개발 시행사 회장] "예를 들어서 뭐 그 땅이 이제 5천억짜리 땅인데 4천억에 공매가 됐다, 그러면 맨 밑에 있는 후단은 돈을 한 푼도 못 받는 겁니다. 시행사도 마찬가지고."

청담동 일대에는 이런 최고급 주거 시설이 줄지어 개발되고 있습니다.

2020년과 2021년 부동산 호황일 때 3.3㎡당 2억~3억 원, 고가에 땅을 사들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슬아슬한 위기 상황입니다.

[청담동 개발 시행사 회장] "<지금 특히 상업 부동산 경기는 여전히 안 좋은 것 아닌가요?> 안 좋습니다. <그 근처에도 지금 분양이 예전만큼 잘 되고 있지는 않다고.> 맞습니다. 청담동 저 좋은 사업장들이 좋은 사업장이 이게 정말 EOD(대출 만기 전 자금 회수 요구)가 나고 공매가 되고 이렇게 되면 제가 보기에는 제2, 제3의 '레고랜드 사태'가 안 일어나리라는 법이 없습니다."

PF발 위기는 금융기관들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위험한 사업에 돈을 빌려주던 저축은행과 증권사들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박선영/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시행사가 거의 자본 없이 사업을 일으켜서 분양만 성공하면 거의 천문학적인 이익을 보다 보니까 오히려 그러다 보니까 이 사이클의 막판에는 더 이게 위험한 개발 건으로 계속 넘어가게 된 것 같아요. 부동산 상승기에 계속 본 거죠, 성공한 걸. 그러니까 더 위험한 지방, 상업용으로 계속 개발 사업이 더 위험한 쪽으로 넘어간 게 아닌가 싶습니다."

2020년 93조 원이던 국내 PF 대출은 가파르게 증가해 현재 133조 원.

그런데 이자를 제때 못 갚는 연체율도 가파르게 늘었습니다.

저축은행 연체율은 6개월 만에 두 배로 불어나 4.6%입니다.

증권사는 더 심각해 연체율이 무려 17%나 됩니다.

[박정호/명지대 특임교수] "지난 한 3~4년 동안 부동산 호황이 너무 가팔랐던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부동산 PF 시장에서도 '야 이거는 사업성이 꼭 확인된 것 같지가 않은데, 이거는 위험 부담이 좀 큰 것 같은데' 라는 프로젝트마저도 전부 다 추진을 해버린 겁니다. 바로 그런 과정에서 부동산 시장이 굉장히 빠르게 급랭해버리니까 이게 지금 다 좌초되기 시작한 거예요."

PF 부실은 건설사도 위협하고 있습니다.

위험한 대출이다 보니, 금융기관들은 시공사에 사실상 보증을 서게 만듭니다.

[이광수/부동산 애널리스트] "이게 웃긴 거예요. 그러니까 신용이라는 건 어떤 거냐면 기반이 있어야 되거든요. 근데 이거는 다단계 신용이에요. 무슨 얘기냐면 시행사에서 금융권에 가서 돈을 꿔줬는데 '아 이거 큰 건설사가 해줄 거예요.' 이렇게 꿔요. 그리고 건설사한테 가서는 또 이럽니다. '이거 큰 금융사가 우리하고 같이 하기로 했어요'. 일종의 피라미드 신용 다단계 신용 같죠. 그러니까 이게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심각하게 될 수가 있다는 겁니다. 마치 피라미드가 무너지듯이."

◀ 이휘준 ▶

PF 대출이라는 게 위험성이 있네요.

사업계획을 보고 대출해 주는 거니까, 금융기관들 입장에서는 사업성을 제대로 평가하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 이준희 ▶

그렇죠, 하지만 부동산 불패 신화 때문인지 한국의 금융기관들은 위험성을 제대로 따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대신 문제가 생길 경우에 대비해, 시공사에 사실상 보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 이휘준 ▶

그러니까 사업에 문제가 생기면 금융기관들뿐만 아니라, 건설사들도 위험해지는 거군요?

◀ 이준희 ▶

그렇습니다.

금리가 치솟고 분양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벌써 건설사들이 하나 둘씩 무너지고 있습니다.

◀ VCR ▶

울산 토박이 안수광 씨.

아침에 일어나면 창 너머 아파트 공사장 크레인부터 살핍니다.

[안수광] "어떤 날 돌아가면 아 이쪽은 작업하나 싶어 보니까 그게 아니고 저거는 바람에 따라서 움직이면 이래이래 바람 따라 움직이는 모양이라."

6개월 전 크레인이 멈췄습니다.

시공사가 부도났습니다.

공정률 33%.

27층짜리 아파트가 8층에서 멈췄습니다.

안 씨 부부는 속이 탑니다.

내년에 입주하기로 했던 아파트입니다.

[이영애/울산 아파트 입주예정자] "중도금 딱 내고 3차 중도금 냈는가, 그렇게 내고 나니 그 이튿날 딱 부도를 내버린 거야. 어떤 때는 막 생각해요. 죽으면 해결할 수 있다면 마 죽고 싶은 생각도 들어."

부도난 건설사는 시공능력 110위권의 (주)신일.

이 회사가 짓던 서울 방배동, 전북 완주, 제주 중문 등 전국 11곳 공사 현장에서 동시에 문제가 터졌습니다.

[임성찬/울산 지역 시행사 전무] "건설사가 어렵다, 어렵다 해도 우리 사업장이 설마 이렇게 되지 않을까 이런 걱정은 안 했습니다. 근데 갑자기 이렇게 되니까 황당하죠."

위기는 중견건설사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지난 9월 대우산업개발이 부도 처리됐습니다.

아파트 브랜드 이안을 가진 시공능력 75위 건설사입니다.

충남 천안에 짓고 있던 이안 아파트도 공사가 멈췄습니다.

[박민규/천안 아파트 입주예정자] "저기 18층에 청약이 됐습니다.<고층이네요. 전망도 잘 나오고.> 얼마나 좋겠어요, 들어가서 보면. 근데 못들어. 들어가지도 못해요 지금."

완공을 넉 달 앞둔 상황이었습니다.

[박민규/천안 아파트 입주예정자] "답도 없어요. 진짜 진짜 미쳐버리겠어요. 이게 사실 새로운 내 보금자리에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함께 행복한 생활을 해야 되는데 이게 점점 이게 물거품이 되는 거잖아요."

이 30대 가장은 웃돈 4천만 원을 주고 같은 아파트 분양권을 샀습니다.

아파트값이 고점을 찍은 2021년 겨울이었습니다.

[김영현/천안 아파트 입주예정자] "더 오를 것 같아서요. 이게 저희가 이거를 안 사면 더 오를 것 같다라는 그런 불안감. 그래서 지금이라도 안 사면 안 될 것 같다."

당장 이자 갚는 게 걱정입니다.

[김영현/천안 아파트 입주예정자] "전세자금대출을 받았으니까 거기에 대한 이자, 신용대출에 대한 이자, 그리고 여기 이 아파트 중도금의 대출에 대한 이자, 지금 3개 이자가 지금 저희가 감당을 하고 있는 거죠. 그 대략 금액이 180에서 200(만 원) 정도."

올해 들어 문 닫은 종합건설사는 459곳.

2006년 이후 18년 만에 최대입니다.

분양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올해 분양 물량은 15만 6천여 가구.

지난해 절반 수준입니다.

미분양이 쌓이고 있습니다.

전국 미분양 주택은 6만 가구.

완공됐는데도 분양이 안 된 '악성 미분양'도 9천 가구입니다.

올해 1월 입주를 시작한 전남 광양의 한 아파트.

주민 수십 명이 손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할인 분양을 중단하라'는 내용입니다.

이 아파트 1,100세대 가운데 20% 가까이가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채 남아 있습니다.

시공사는 대폭 할인을 시작했습니다.

3년 전 84㎡제곱미터가 최고층이 3억 2,700만 원이었는데, 지금은 5천만 원 싼값에 내놨습니다.

비싸게 다 주고 입주한 사람들은 잔뜩 화가 났습니다.

[박OO/광양 OO아파트 입주자] "갑자기 하루아침에 돈을 뜯긴 기분이에요. 어떻게 이렇게 할인 분양을, 많은 가격을 갑자기 한꺼번에 할인할 수가 있냐."

입주민들은 경고문을 붙였습니다.

할인 분양받은 세대가 이사 오다 적발되면 주차요금은 50배, 승강기 사용료는 5백만 원을 물리겠다고 했습니다.

[김OO/광양 OO아파트 입주자] "이슈가 되기 위해서 선정적인 문구를 쓴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희가 그 사이에 입주한 세대는 한 세대도 없고 그리고 저희가 그게 조금 반발이 되다 보니까 당일 철거를 했고."

할인 분양은 법적으로 신고나 허가 사항이 아니라 막을 수는 없습니다.

[광양 OO아파트 건설사 현장소장] "준공 후에 미분양 물량에 대해서는 회사가 알아서 처리할 수 있는 법적인 권한이 있는 부분이거든요. 그거를 입주민하고 협의를 해서 하는 데가 있나요?"

겉으로는 할인을 하지 않는 척하면서, 뒤로는 돈을 깎아주는 시행사들도 있습니다.

[대구 지역 분양사무소 직원] "만약에 사장님이 계약금 10% 넣고 이제 분양 계약서를 적으면 한 달 이내에 이것도 이제 이렇게 2천만 원에 세금, 소득세 빼고 1,934만 원 실수령을 뒤로 이제 통장으로 해 드린다는 거죠."

건설업계는 내년 분양 시장이 더 힘들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파트 분양 전망지수'는 석 달 연속 내림세입니다.

◀ 이휘준 ▶

문 닫는 건설사들이 저렇게 많다면, 2008년 금융위기 같은 경제위기가 또 닥치는 게 아닌지 걱정됩니다.

◀ 이준희 ▶

사실 한국은 10년 전에도 비슷한 위기를 겪은 적이 있습니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입니다.

◀ 이휘준 ▶

저축은행 사태요?

그때도 PF 대출이 문제가 됐습니까?

◀ 이준희 ▶

네, 맞습니다.

저축은행들이 30개 넘게 줄줄이 문을 닫았고, 건설사들까지 대거 무너졌습니다.

서민들도 큰 피해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그때 위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것 같습니다.

◀ VCR ▶

2011년 2월 17일.

총자산 9조 9천억 원, 국내 1위였던 부산저축은행이 영업정지됐습니다.

고객들의 예금 절반인 4조 6천억 원을 각종 PF 사업에 빌려줬다 막대한 손실이 났습니다.

저축은행 임원들이 직접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었고, 친인척을 바지사장에 앉혀 대출도 받아간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조금이라도 이자를 더 받으려고 저축은행에 예금한 서민들이 큰 피해를 당했습니다.

[저축은행 고객(2011년 2월)] "퇴직금 받아서 예금 조금 시켜놓고 단리로 해서 매달 이자를 받아서 생활하고 있거든요. 근데 참 난감하네요."

그 와중에도 이른바 VIP 고객들은 영업정지 전날 밤 대거 돈을 빼 간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저축은행 고객(2011년 2월)] "아무 일 없다고 해 놓고, 밤새 문 닫고, 이거 사기 아닌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저축은행 위기론이 계속 돌았습니다.

금융당국은 문제없다고 했지만, 결국 위기가 터졌습니다.

2011년 한 해에만 저축은행 16개가 문을 닫았습니다.

2012년 8개, 2013년 5개, 2014년과 2015년 1개씩, 모두 31개 저축은행이 망했습니다.

2010년말 기준 저축은행들의 부동산 관련 대출 비중은 48%, PF 대출은 19%에 달했습니다.

투기성 부실 대출의 여파는 너무 컸습니다.

예금자 보호를 받지 못한 10만명이 1조 3천억원을 날렸습니다.

LIG건설, 삼부토건, 동일토건, 진흥기업, 월드건설, 임광토건 같은 중견건설사들도 줄줄이 무너졌습니다.

그런 위기가 또 닥칠까요?

<스트레이트>는 교수, 국책연구기관과 민간연구기관, 금융계 전문가 20명에게 현재 PF 상황이 얼마나 나쁜지 물어봤습니다.

매우 심각 8명, 다소 심각 11명.

모두 19명이 심각하다고 답했습니다.

1명 빼고 모두 심각하다고 진단한 겁니다.

[윤지해/부동산R114 리서치팀장 (PF 상황/매우 심각)] "부실 사업장들이 지금 어느 시점에 터질지 지금 예측이 안 되는 상황이고요. 그래서 이 부분들을, 부실 부분들을 정리를 계속 못 하고 밀어낸 상황이니까 ‘현재 시점이 가장 심각하다’라고 평가를 하는 겁니다."

지금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나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만큼 위험하다는 경고도 나왔습니다.

[지규현/한양사이버대 디지털건축도시공학과 교수 (PF 상황/매우 심각)] "'브릿지론(PF 초기 대출)' 단계에서 대출 금리가 굉장히 높아서 이자를 계속 지불해야 되는 상황. 어떻게 보면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보다 좀 더 심각한 상황이지 않은가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저축은행들만 문제였지만, 이번에는 증권사들까지 PF 대출에 뛰어들었습니다.

[박덕배/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겸임교수(PF 상황/매우 심각)] 2011년도에 저축은행 중심으로 PF 문제가 한번 생겼습니다. 그때도 저축은행 입장에서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였지만 이번에 부동산 PF는 제2금융권 전체에 걸쳐서 PF 문제가 다 걸려 있으니까요.

2010년 말 저축은행들의 PF 연체율은 25%.

올해 증권사들의 PF 연체율은 17%까지 치솟았습니다.

[이보미/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연체율 그렇게 높게 나오는 거를 보면 ‘배운 게 없나’ 이런 생각을 하기는 하거든요. 그런 측면에서는 그때 옥석이 잘 안 가려졌다고 표현할 수도 있고 혹은 제대로 된 배움이 없었던 거죠. 그때 그 시기를 겪으면서 제대로 된 배움이 없으니까 지금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위기가 언제 터질까요?

전문가 9명은 내년 하반기가 가장 위험하다고 답했습니다.

내년 상반기라는 답은 5명, 지금이라는 답도 3명이었습니다.

[우병탁/신한은행 압구정역기업금융센터 부지점장(PF 위기/내년 하반기)] "‘내년에 있을 총선을 전후한 부동산 정책의 방향들이 어떻게 될 것이냐’라고 하는 부분하고 금리의 방향성에 촉각을 좀 세우고 있는 모습으로 보여지거든요."

[김규정/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연구소장(PF 위기/내년 하반기)] "연착륙 대책으로 제시되지 못한다면 내년 초반부터 악화 사업장들이 늘어나기 시작해서 2024년 중반 이후 하반기에는 좀 더 심각한 부실화 상황들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 이휘준 ▶

10년 전 저축은행 사태를 겪었으니까 교훈을 얻었을 텐데, 또 이런 위기론이 번지는 걸 보면 그렇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 이준희 ▶

그렇습니다. 조금 이따 보여드리겠지만, 금융기관들의 도덕적 해이나 묻지마 투자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 이휘준 ▶

위기가 터지지 않게 하려면, 정부의 역할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부실 위험이 있는 사업들은 빨리빨리 정리를 해서 더 번지지 않게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 이준희 ▶

그게 다수 전문가들의 조언입니다.

하지만 지금 정부가 하는 걸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 이휘준 ▶

뭘 하고 있습니까?

◀ 이준희 ▶

정부가 부실한 사업을 정리하고 있다고 하지만, 오히려 팔 걷고 나서서 수명을 연장시켜주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이러다가 위기가 더 커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습니다.

◀ VCR ▶

부산 기장군의 아파트 건설 사업.

여러 금융기관들이 PF 대출을 해줬습니다.

2백억 원을 빌려준 우리종합금융.

얼마나 벌었을까요?

1년 4개월 만에 73억 원을 벌었습니다.

그 중 이자는 23억 원이고, 나머지 50억 원은 각종 수수료 명목으로 받았습니다.

연 수익률로 환산하면 27%.

엄청난 수익률입니다.

부동산 활황기, PF 대출은 금융기관들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입니다.

PF 담당 임원들의 연봉은, 다른 임원들보다 훨씬 높습니다.

지난해 증권사 부동산 PF 담당 임원의 연봉을 봤더니, 하이투자증권 사장 65억 6,700만 원, 전 IBK투자증권 상무 39억 4,400만 원, 부국증권 부사장 36억 9,200만 원, 메리츠증권 사장 36억 200만 원, 유진투자증권 이사대우 35억 7,700만 원이었습니다.

최근 4년간 대형 증권사 9곳이 부동산 PF 담당 임직원에게 지급한 성과급은 8,500억 원이었습니다.

메리츠증권이 3,550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한국투자증권은 1년에 한 사람 평균 4억 원 넘는 성과급을 줬습니다.

증권사 임원들의 성과급은 단기 실적이 아니라 몇 년 동안 중장기 실적을 보고 주도록 정해놨지만, 상당수가 이걸 어겼습니다.

나중에 부실이 드러나든 말든, 일단 성과급부터 현금으로 챙겨줬습니다.

실적 경쟁과 부실을 부추긴 셈입니다.

[김경민/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2021년, 2020년에 브릿지론(PF 초기 대출) 가지고 돈 많이 벌 때는 자기들 엄청나게 많이 인센티브를 가져갔어요, 사실은요. 연말에 보너스를. 지금 그 사람들 때문에 지금 이 사태가 났으면 그 경영진이 책임져야죠. 왜냐하면 그게 자본주의예요, 사실은."

시행사들은 얼마나 벌까요?

한 시행사 내부 문건입니다.

분양이 완판되면 1조 6천억 원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땅값, 공사비, 금융비용을 빼고도 2,600억 원을 벌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이 시행사가 자기 돈 들인 건 400억 원 정도.

나머지는 다 빚입니다.

자기 돈 400억 원으로 2천6백억 원을 벌면 6배 장사입니다.

[이보미/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시행사는 시행사대로 한 10% 자기 해놓고 90% 레버리지 맞춰서. 어느 데는 5%, 전체 비용의 5%밖에 안 내거든요. 그리고 레버리지를 어마어마하게 지고. ‘이상하다, 그러면 그 꼴을 왜 그냥 다른 시공사나 은행들이나 금융회사들이 보고 있지’ 싶은데 보면 그게 서로들에게 이익이 되는 거예요."

거대한 빚으로 지탱되는 부동산 PF 사업.

성공만 한다면 금융기관도, 시행사도 떼돈을 버는 사업입니다.

하지만 실패하면 누가 책임질까요?

부동산PF발 위기론이 밀려들자, 정부가 구원투수로 나섰습니다.

지난 4월 금융기관 3천7백 곳을 모아, 대주단 협약을 맺었습니다.

시행사가 돈을 못 갚을 경우, 대출 만기 연장도 채무 재조정도 더 쉽게 해주기로 했습니다.///

상대적으로 건실한 시중은행들이 부실 사업장에 신규 자금을 투입하는 PF 정상화 펀드도 만들었습니다.

5월 1조 원에 이어, 9월에 1조 원을 더 늘렸습니다.

여기에 더해 정부는 PF 보증 규모도 15조 원에서 25조 원으로 늘렸습니다.

정부가 보증해줄 테니, 적극적으로 대출해주라는 뜻입니다.

부실이 터지면 세금으로 메꿔야 합니다.

[김경민/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어떤 친구는 7천만 원을 전세 사기를 당해서 자살했거든요. 상대적인 부자고 리스크를 자기들이 관리하지 못한 사람들, 기업에 대해서는 지금 15조에서 25조로 넣는다? 굉장히 이상한 거예요. 1조만 이쪽에 하자고요. 그러면 전세 사기 1억인 사람들 1만 명을 구제할 수 있는 겁니다."

정부는 연착륙을 위한 거라고 주장합니다.

[추경호/경제부총리(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 9월 21일)] "연착륙이 질서 있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최근 PF 대출 연체율 상승세가 크게 둔화되고 리스크가 점차 완화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좀비들에 대한 연명책으로 받아들입니다.

부실이 나중에 터지든 말든, 일단 뒤로 미뤄놓는 꼴이 될 거라는 겁니다.

[☎ 금융투자회사 PF 담당자] "만기 연장해 주고 이자 처박아라 이렇게 되는 거죠. 결국에는 이게 시장이 풀려서 분양이 돼야 되는데 그때까지 다들 기다리고 있는 거죠, 어떻게 보면. 수명 연장하는 거예요, 수명 연장. 산소호흡기 계속 달고 있는 거죠. 최악은 지났다가 아니라 최악은 피하고 있는 거죠, 지금."

한 신용평가사는 이런 대출 만기 연장 실태에 대해 "부동산 경기가 회복된다면 도움이 되겠지만, 경기 회복이 지연될 경우 이자 부담 증가와 사업성 하락으로 최종 손실 규모가 커진다"며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정부는 옥석을 가리고 있다며, 위기 가능성이 있는 사업장 187개 중 35개가 정리됐다고 밝혔습니다.

35개면 전체 PF 사업장 3천6백 곳의 1%입니다.

[이광수/부동산 애널리스트] "안 망하니깐요. 덜 망하니까. 나쁜 애들이 좀비처럼 살아있으니까. 그것도 강제로. 그건 시장이 아니죠. 퇴출돼야 될 거 아닙니까. 근데 부동산은 제가 강조하지만 퇴출돼도 된다. 땅이 남기 때문에. 그러면 그 땅을 누군가 싸게 사서 다시 공급해서 그게 공급을 더 원활하게 만들어서 오히려 주택 시장을 더 원활하게 만드는 사항이라는 거죠. 우리가 할 일은 뭐냐면 장기적 차원에서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그래야 경착륙이 안 돼요."

◀ 이휘준 ▶

전세 사기를 당한 청년들은 자기 잘못도 아닌 일에 7천만 원 때문에 목숨을 끊는데, 위험한 사업을 벌인 업자들에게 정부가 수십조 원을 지원하는 게 과연 공정한지 모르겠습니다.

◀ 이준희 ▶

정부는 그게 위기관리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위기를 뒤로 미루고 더 키우는 거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 이휘준 ▶

PF 대출뿐만 아니라, 가계부채도, 자영업자 대출도 엄청나게 불어났잖아요.

이건 어느 정도 위험한 수준입니까?

◀ 이준희 ▶

가계부채가 1,800조원 사상 최고 수준입니다.

어떻게든 줄이고 관리해야 할 상황인데, 정부 정책은 이것도 거꾸로 가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빚을 더 내라고 부추기는 모양새입니다.

◀ VCR ▶

사상 최대규모의 재건축 사업인 서울 둔촌주공.

1만 2천 세대나 되지만, 경기가 하락하면서 계약 포기 우려가 커졌습니다.

그런데 올해 초 정부가 나서서 규제를 대폭 풀었습니다.

분양받고 8년 동안 팔 수 없었던 걸, 1년 만에 팔게 해줬습니다.

실거주 의무 폐지도 약속했습니다.

분양가가 12억원이 넘어도 중도금 대출을 허용했습니다.

사실상 거주 목적이 아니어도, 빚내서 아파트 투기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겁니다.

가계 부채 1천8백조 원.

한국은 세계에서 가계 부채 증가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입니다.

그런데 정부가 오히려 대출을 더 부추기고 있습니다.

올해 초 정부가 내놓은 '특례보금자리론'

4%대 고정금리로 5억 원까지.

50년 만기, 소득도 따지지 않았습니다.

고소득층까지 몰리면서, 전체 금액의 40%를 연소득 7천만 원이 넘는 사람들이 신청했습니다.

지난달까지 41조 7천억 원이 풀렸습니다.

정부가 나서서 빚내서 집 사라는 신호로 읽혔습니다.

[박정호/명지대 특임교수] "50년 만기 주담대면 사망 후에 갚아도 되는 정도의 시간일 정도로 그렇게 넉넉하게 돈을 빌려드릴 테니 지금 사시고 싶은 실수요자는 사십시오. 생애 첫 주택 구입자는 사십시오. 이런 트랙을 만든 거예요."

심지어 금융감독원장은 올해 초부터 주요 은행들을 돌며, 대출금리를 내리라고 압박했습니다.

그 결과 주택담보대출은 올해 들어 34조 원이나 늘어났습니다.

다른 선진국들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며 돈줄을 죄고 있는데, 정부가 대출을 부추기는 셈입니다.

대통령실은 지난 정부를 탓하고 있습니다.

[김대기/대통령실 비서실장 (10월 29일)] "가계부채 위기가 발생하면 지난 97년 기업 부채로 인해서 우리가 외환위기를 겪었는데 그것의 몇십 배 위력이 있을 겁니다. 특히 과거 정부에서 유행한 '영끌 대출'이라든지 '영끌 투자' 이런 행태는 정말로 위험합니다."

한국은행은 여러 차례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이창용/한국은행 총재 (8월 24일)] "다시 또 그런 낮은 금리로 갈 거라는 예상에서 집을 사셨다면 상당히 조심하셔야 된다라는 말씀을 드릴 수 있고요."

[이창용/한국은행 총재 (10월 19일)] "금리가 다시 1%대로 예전처럼 떨어질, 기준금리가 떨어져서 이게 비용 분담이 금방 적을 거다 그런 생각을 해서 사신다면 그 점에 대해서는 제가 경고를 드리겠습니다."

2021년 고점을 찍고 떨어지던 집값이, 올 들어 다시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빚으로 집값을 지탱하는 건 과연 바람직한 걸까요?

[박정호/명지대 특임교수] "부동산이라는 급한 불을 끄면 가계부채라는 또 다른 불이 커지는 거고 가계부채라는 불을 끄려면 부동산을 또 어떻게 내수 경제에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부동산 또 어떻게 되는데, 이 딜레마가 지금 있는 게 지금 우리나라 경제의 아주 모순이죠."

<빚으로 지은 집>의 저자 아미르 수피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폭은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직전 상황(2001~2007)을 연상시킨다"고 했습니다.

가계부채의 급증은, 언제나 위기를 불러왔다고 말합니다.

[아미르 수피/미국 시카고대 교수 (유튜브 'Chicago Booth Review', 2018년 1월 12일)] "우리의 연구 결과는 가계 부채가 지속 불가능한 수준으로 증가하면 은행 위기와 금융 위기, 전반적인 경기 침체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빚으로 떠받치는 집값.

빚으로 연명하고 있는 부동산 PF.

이런 경제가 지속 가능할까요?

[임재만/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 "금융기관의 부실을 염려해서 너무 이 위험을 덮어두려고만 한다고 하는 것. 그래서 집값을 떠받치기 위해서 온갖 정책들을 내세우고 있는데 그것이 과연 바람직하냐는 측면이 가장 큰 거고요. PF 문제라든가 또는 거래 위축 문제라든가 또 가격 하락 문제라든가 이런 모든 문제에 있어서 정부가 나서서 시장을 안정시키려고, 또는 시장을 다시 상승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그런 선택이다."

◀ 이휘준 ▶

빚으로 지탱하는 경제는 위험하다는 걸 우리는 여러 경험으로 배웠습니다.

PF 발 위기를 키운 부동산 불패 신화.

오히려 정부가 나서서 조장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다음 시간에 찾아뵙겠습니다.

이준희 기자(letswin@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replay/straight/6542722_289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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