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만의 보답…부산 재건 아버지 위트컴, 시민 곁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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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턴 투워드 위트컴'.
부산역전 대화재 때 군수물자를 방출한 위트컴 장군의 인류애에 부산시민이 70년 만에 빚을 갚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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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턴투워드’ 맞춰 기념 조형물 제막
- 시민위원회 발족 1년 만의 결실
- 軍·유엔평화기념관도 힘 보태
‘턴 투워드 위트컴’. 70년의 세월이 걸렸다.
지난 11일 오전 11시 전 세계가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을 향해 묵념하는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에 맞춰 부산시민은 오전 10시 남구 유엔평화공원에서 6·25전쟁 때 유엔군 부산군수기지사령관으로 근무하며 부산 재건에 앞장선 리차드 위트컴(1894~1982) 장군을 기념하는 조형물을 제막했다. 시민 1만8359명이 1만, 2만 원씩 낸 성금(3억6565만6048원)으로 기념 조형물이 세워졌다.
위트컴 장군이 지난해 11월 11일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최고 등급인 무궁화장을 추서 받은 것을 계기로 ‘위트컴 장군 조형물 건립을 위한 시민위원회’(시민위원회)가 발족해 성금 모금이 시작된 지 1년 만에 결실을 보았다. 부산역전 대화재 때 군수물자를 방출한 위트컴 장군의 인류애에 부산시민이 70년 만에 빚을 갚은 셈이다. 1953년 11월 27일 밤에 발생한 부산역전 대화재로 29명의 사상자와 6000세대 3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는데 위트컴 장군은 천막과 담요 등 군수물자를 제공해 이재민에게 큰 도움을 줬다.
숨겨진 위트컴 장군을 발굴하고 재조명하는 데 국제신문의 12년에 걸친 지속적인 보도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게 시민위원회의 평가다. 국제신문은 2011년 6월 11일 자 1면 머리기사 ‘전쟁 폐허에 희망꽃 피웠던 부산 미군군수기지사령관 위트컴의 혼 깨운다’와 4면 해설기사 ‘위트컴 장군, 부산대·메리놀병원 확충 초석을 놓다’ ‘위트컴 장군 재조명 앞장 김재호 교수 강석환 대표’를 게재하며 장군의 인류애를 최초로 보도했다.
이어 2012년 6월 19일 자를 시작으로 3회에 걸쳐 ‘위트컴 장군과 부산, 전쟁 폐허에 피운 희망꽃’ 기획시리즈를 연재하며 장군을 체계적으로 재조명했다. 이 시리즈에서 위트컴 장군이 메리놀병원 신축 기금을 모금하기 위해 갓을 쓰고 한복 차림으로 부산 시내를 돌며 캠페인을 벌여 미국 격주간지 ‘라이프’(1954년 10월 25일 자 42쪽)에 보도된 일, 한국인 부인 한묘숙(1917~2017) 여사와 인터뷰를 통해 한 여사가 장군의 유언에 따라 6·25전쟁 당시 장진호 전투에 참가한 미군 유해를 발굴하기 위해 북한을 25회 방문한 사연 등이 소개됐다.
군(軍)도 힘을 보탰다. 대구 육군 제5군수지원사령부는 2017년 12월 29일 ‘위트컴 장군실’을 열었다. 이어 부산 유엔평화기념관은 2018년 7월 12일 위트컴 장군의 36주기 추모일을 맞아 2층에 ‘위트컴 장군 상설전시실’을 개관했다.
지난해 6월 위트컴 장군이 별세한 지 40주년을 맞아 국제신문 오상준 총괄본부장(당시 편집국장)이 위트컴 장군 관련 보도와 기고를 정리해 단행본 ‘리차드 위트컴:6·25전쟁 폐허 속에서 핀 인류애’(호밀밭)를 출간했다. 이 책은 위트컴 장군 국민훈장 추서와 조형물 건립 시민위원회 발족의 기폭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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