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AI가 부활시킨 비틀스
스웨덴의 전설적인 팝그룹 아바(ABBA)가 해체 39년 만인 2021년 재결합했다. 70대 노인이 되어 돌아온 네 사람을 많은 팬이 반겼다. 컴백하며 내놓은 신곡은 반나절 만에 조회 수가 100만회를 넘어섰다. 영국 출신 비틀스(Beatles)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시 뭉쳤다. 이달 초 발표한 신곡 ‘나우 앤드 덴’은 신곡인데도 멤버 넷 중 고인이 된 존 레넌과 조지 해리슨까지 참여했다. 소식이 알려지며 단숨에 영국 싱글 차트 1위에 올랐다. 해체 1년 전인 1969년 마지막으로 1위를 한 지 54년 만이다.
▶반세기 전 해체되고 두 명은 고인이 된 비틀스가 마술처럼 신곡을 낼 수 있었던 것은 AI의 음성 복제 기술 덕분이다. ‘나우 앤드 덴’은 당초 앨범 ‘리얼 러브’를 만들 때 함께 수록하려 했지만 존 레넌의 목소리가 피아노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외됐었다. 그런데 AI가 레넌의 목소리를 반복 학습한 뒤 그의 목소리를 피아노 음에서 분리하는 데 성공하며 30대 청년 레넌과 80대인 폴 매카트니가 함께 노래하게 됐다. AI가 현실에는 없는 새로운 비틀스를 창조한 것이다.
▶AI의 음성 복제 기술은 1984년 영화 ‘터미네이터 1′에서 터미네이터를 피해 도망가던 여주인공이 엄마와 통화하는 장면에서 일찌감치 예고됐다. 터미네이터가 엄마의 목소리를 흉내 내 “사랑한다”는 말로 경계심을 푼 뒤 그녀가 숨어 있는 곳을 알아낸다. 지금은 3초 분량의 목소리만 있으면 AI가 이를 학습해 존 레넌을 부활시켜 노래하게 하고 터미네이터처럼 남의 목소리로 대화도 할 수 있다.
▶AI는 외모와 표정도 복원한다. 1970년대 영화 ‘스타워즈’에서 주인공 루크 역을 맡았던 배우 마크 해밀은 2019년 속편에 출연할 때 60대 후반 노인이었다. 그런데 AI가 해밀의 젊은 시절 목소리뿐 아니라 표정까지 학습해 화면 속 해밀을 청년으로 되돌려 놨다. 마냥 반가운 것은 아니다. 할리우드 배우들은 AI 배우가 실제 배우를 대체하는 부작용을 막아야 한다며 지난 7월부터 최근까지 파업을 벌였다.
▶'나우 앤드 덴’은 ‘언제나 내게 돌아왔으면 해/ 가끔은 네가 내 곁에 있었으면 해~’라고 노래한다. 노래가 만들어졌을 당시엔 불가능했던 꿈이었는데 AI가 레넌의 목소리를 부활시키며 현실로 만들었다. AI는 이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마저 허문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부른 노래의 1위 등극이 AI 시대 예술과 불멸의 의미를 묻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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