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시대, 해저 석유탐사 기술은 ‘필요없는’ 기술일까[해저자원 향한 새로운 도전]
미국 몬태나주 어느 사막, 고생물학자 앨런 그랜트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이 분주히 무언가를 찾고 있다. 그때 누군가가 땅에 대고 총을 한 발 쏘니 신기하게도 땅속에 묻혀 있던 백악기 후기 공룡인 벨로키랍토르 뼈가 특수 장비에 부착된 모니터에 형체를 드러낸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1993년 작 <쥬라기공원> 도입부다. 공룡이 등장하는 영화이다 보니 이 장면 또한 영화적 허구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는 탄성파를 이용한 과학적 탐사 방법이자 석유를 찾는 데 가장 많이 쓰이는 기술이기도 하다.
탄소중립이 화두로 떠오르는 이 시대에 웬 석유 탐사 얘기일까. 도로 위에는 전기차가 즐비하고 신재생에너지로 전기를 생산·저장할 수 있는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요즘, 굳이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몰리는 석유를 계속 찾아야 하나 싶다.
하지만 상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미국은 막대한 인프라가 필요한 신재생에너지로 쉽게 전환하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에 성공하고 있다는 독일마저 전체 에너지 소비시장의 20% 정도를 차지하는 전력 부문에서만 신재생에너지로 성과를 냈다.
올해 국제에너지기구(IEA)가 2030년을 정점으로 석유·천연가스 소비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시장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엑손, 셰브론 등 주요 석유 기업들은 석유 시대가 지속될 것에 대비해 시추 기업들을 인수하며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한국도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를 위해 민간을 중심으로 한 해외자원개발을 장려하고는 있다. 하지만 유가 등락에 따라 관련 정책이 오락가락한다.
한국은 1997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국내 최초 석유 탐사선인 탐해 2호를 건조하고서야 독자적인 기술 개발에 나섰다. <쥬라기공원>에 등장한 총처럼 인공 지진파를 만드는 에어건과 디지털 수진기를 이용해 해저 수㎞ 아래를 탐사하는 기술을 개발해왔다.
이를 통해 동해에서 세계 5번째로 가스하이드레이트의 부존 사실을 확인하고 실물을 채취하는 성과도 올렸다. 올해 퇴역하는 탐해 2호에 이어 내년에는 더 발달한 장비로 무장한 탐해 3호가 취역한다. 하드웨어는 갖춘 셈이다.
지금부터 필요한 것은 소프트웨어다. 한국 연구진은 슈퍼컴퓨팅과 인공지능(AI)으로 땅속을 고해상 타임랩스 3D로 구현해 탐사 성공률을 높이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저주파를 발생시켜 지층 형태를 알아내는 방법인 ‘파형역산(FWI)’으로 3차원 지하 구조를 재현하는 기술은 한국이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상업성을 갖춘 해외 기업들의 기술 개발이 빠른 상황에서 한국은 공공 부문에서 관련 기술 개발을 장려하고, 민간 부문이 세계무대에 설 수 있도록 돕는 정책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석유 탐사 기술은 아이러니하게도 탄소중립 달성에도 큰 역할을 한다. 세계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탄소제로를 달성하기 위해 진행하는 ‘이산화탄소 지중 저장(CCS)’ 프로젝트 때문이다. 저장소 탐사와 선정, 모니터링에 사용되는 기술이라는 뜻이다. 대규모 해상 풍력발전단지 건설을 위한 해저 지반 조사에도 쓰인다.
다양성과 융합의 시대에 필요 없는 기술이란 없다. 해저 탐사 기술 개발에 땀 흘려온 연구자들의 노력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되짚어볼 때이다.
김병엽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해저지질에너지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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