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억5천만년 전 고대생물 ‘플레우로시스티티드’, 로봇으로 되살리다

이정호 기자 2023. 11. 12.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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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억5000만년 전 지구 바다의 밑바닥을 기어 다녔던 ‘플레우로시스티티드’를 재현한 로봇. 긴 꼬리에서 추진력을 얻어 움직인다. 미국 카네기멜론대 제공
미국 카네기멜론대 연구진 발표
멸종된 해저동물 기계 형태 재현
신체 통제·움직임·진화 과정 등
화석만으론 알 수 없는 정보 파악

#언뜻 보면 전갈을 닮은 로봇이 자갈이 드문드문 깔린 평지에 배를 대고 엎드려 있다. 신용카드만 한 몸통의 머리 방향에는 더듬이 같은 물체가, 다리 방향에는 꼬리가 달렸다. 전원을 켜자 로봇은 꼬리를 채찍처럼 좌우로 흔들기 시작한다.

이 로봇은 동물을 베껴 만들었다. 하지만 정확히 무엇과 닮았는지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로봇은 지금으로부터 4억5000만년 전, 지구의 바다 밑바닥을 기어 다닌 ‘플레우로시스티티드’라는 이름의 동물을 재현했기 때문이다. 공룡이 2억5000만년 전 탄생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억겁에 가까운 과거에 등장한 동물이다.

플레우로시스티티드는 지금은 멸종했다. 동영상 속 로봇은 화석에 남은 플레우로시스티티드 몸 구조를 첨단 과학기술로 분석해 재현한 것이다. 멸종된 동물을 기계 형태로 ‘환생’시켜 자신의 신체를 어떻게 통제하며 이동했는지를 들여다보는 시대가 열렸다.

‘플레우로시스티티드’ 화석 모습. 화석에서 관찰된 실제 몸길이는 10㎝였다. 미국 카네기멜론대 제공

■ 수억년 넘어 ‘환생’

지난주 미국 카네기멜론대 연구진은 4억5000만년 전 바다 밑바닥을 기어 다녔던 동물인 플레우로시스티티드를 로봇으로 만들어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 최신호에 게재됐다.

연구진이 동영상을 통해 공개한 로봇 길이는 40㎝다. 고생물학계가 과거에 발굴한 화석 속 플레우로시스티티드는 10㎝지만, 모터 등 부품을 넣기 위해 몸집을 키워서 만들었다. 로봇 몸통의 머리 쪽에는 더듬이와 유사하게 생긴 물체가 2개 달렸다. 다리 쪽에는 채찍처럼 생긴 꼬리가 하나 붙어 있다.

동영상을 보면 전원이 들어오자마자 로봇 몸통에 달린 꼬리가 좌우로 요동친다. 로봇이 자신의 배를 바닥에 붙이고 꼬리를 왼쪽과 오른쪽으로 번갈아 흔들 때마다 조금씩 몸통이 전진한다. 선미에 노 하나를 단 보트가 호수에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과 비슷하다.

연구진에 따르면 꼬리 길이가 20㎝일 때 로봇은 가장 빠른 속도(초속 0.4㎝)로 움직였다. 로봇 전체 길이의 절반에 이를 정도로 꼬리가 꽤 긴 것이 신속한 이동에 유리하다는 점을 알아낸 것이다.

■ ‘신축성 꼬리’ 이동 능력 비결

로봇으로 재현된 플레우로시스티티드는 생물학적 분류체계에서 ‘극피동물’에 속한다. 극피동물은 척추가 없고, 해저를 기어 다니며 산다. 불가사리와 성게, 해삼이 현재까지 남아 있는 대표적인 극피동물이다.

현재 바닷속에 사는 극피동물의 움직임을 살피고 싶으면 방법은 간단하다. 해변이나 수족관에 가면 된다. 하지만 현재 살아 있는 개체가 없는 플레우로시스티티드의 움직임은 화석을 보고 유추하는 일만 가능할 뿐이다.

이 대목이 연구진이 플레우로시스티티드를 로봇으로 재현한 이유다. 연구진은 화석에 남은 몸통 구조를 설계도 삼아 로봇을 만든 뒤 화석만 들여다봐서는 알기 어려운 정보, 즉 어떻게 몸을 움직여 이동했는지를 파악한 것이다.

연구진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바탕으로 진짜 플레우로시스티티드 몸에 가깝게 각종 부품을 3차원(3D) 프린터로 입체감 있게 찍어냈다. 고생물학 연구 방법이 과거 자료의 탐색과 발굴에서 현대 과학기술을 이용한 재현과 복원으로 다변화한 것이다.

연구진이 로봇 제작 과정에서 특히 심혈을 기울인 것은 몸통 소재를 선택하는 일이었다. 그중에서도 꼬리에 신경을 썼다. 플레우로시스티티드의 추진력은 꼬리를 흔드는 힘에서 나오는 것으로 분석됐기 때문에 신축성 있고 질긴 소재를 찾았다.

고심 끝에 연구진이 고른 소재는 ‘폴리머’였다. 폴리머는 플라스틱의 일종인데, 합성고무 재료다. 합성고무는 고무나무 수액에서 나오는 라텍스와 성질이 비슷하다. 연구진은 “실제 플레우로시스티티드 꼬리는 강한 근육으로 이뤄져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이번 로봇 기술을 통해 멸종된 동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진화했는지 알아낼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선사시대에 바다에서 육지로 서식지를 넓힌 동물을 로봇으로 재현하는 일에도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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