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 수돗물 좀 꼭꼭 잠가 주세요
30년생 태인 씨, 다음부터 수돗물은 꼭꼭 잠가 주세요. 태인 씨가 수돗물을 잠그지 못할 때마다 나는 정말 많이 속이 상해요 물이 아니라 태인 씨 마음, 태인 씨 몫의 시간이 깊이를 알 수 없는 웅덩이 속으로 자꾸만 안타깝게 끄르륵 끄르륵 빨려 들어가는 것 같기 때문이지요. 그까짓 물값이야 뭔 대수겠어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수돗물은 꼭꼭 잠그셔서 자꾸만 춤을 추는 태인 씨 마음, 태인 씨 몫의 시간 좀 꼭꼭 붙잡아 주실 수는 없는 건가요. 화장실 다녀간 우리 태인 씨, 또 마음을 안 잠그셨네. 태인 씨 센 머리칼처럼 하얀 전등불 밑으로 85년 된 마음이 콸콸.
문계봉(1963~)
시인은 어머니를 ‘태인 씨’라 부른다. ‘어머니’ 안에 갇혀 있던 한 사람의 오롯한 이름을 찾아준다. 태인 씨는 아프다. 아픈 몸이 부자연스럽게 춤을 추다가 수돗물을 잠그지 못한다. 시인이 걱정하는 것은 줄줄 새는 수돗물이 아니라 ‘태인 씨 마음’이다. ‘85년 된 마음’이 콸콸 쏟아지지 않게 시간을 붙잡고 있는 시인의 심장 소리를 따라가 본다.
‘아프다’의 주어로 자주 등장하는 ‘마음’은 세상의 온갖 것을 자석처럼 끌어당긴다. 귀, 눈, 벼랑, 계단, 빛, 온도, 눈물 등을 질질 끌고 다니다가 접다, 상하다, 끌다, 지우다, 썩이다 등을 만나면 송곳처럼 찌르는 말이 되어 가슴 밑바닥을 박박 긁는다. 진흙처럼 눅진하게 응어리진 그 말들을 어서 꺼내지 못한다면 병에 걸린 채 우리는 습지에 갇혀버릴지도 모른다.
셀 수 없이 많은 마음이 있다. 매일매일 무너지는 마음, 지붕이 새는 마음, 거울과 유리처럼 쨍그랑 깨지는 마음, 있다가도 없는, 없다가도 있는 마음이 있다. 사십오억년도 더 넘은 마음들이 있다. 그 차고 넘치는 마음의 총합이 오늘도 어딘가로 맹렬하게 지구를 굴리며 가고 있다.
이설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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