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성금으로 부활한 ‘부산 재건의 아버지’
“리멤버, 제너럴 위트컴” 조형물 제막식
전쟁으로 부모 잃은 아이들 돌보고
부산대·메리놀병원 건립도 도와
“6·25 정전 직후 한국에 온 위트컴 장군은 우리에게 꿈과 용기, 삶의 터전을 만들어준 분이었습니다. 오늘 저 높은 하늘에서 동상 제막식을 바라보며 행복한 표정을 지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11일 오전 부산광역시 남구 평화공원에서 리처드 위트컴(Whitcomb·1894~1982) 미군 준장을 기념하는 조형물 제막식이 열렸다. 20년 넘게 유엔기념공원 묘역 안내를 맡아온 문화해설사 최구식씨가 감격에 떨리는 목소리로 행사 시작을 알렸다.
위트컴 장군은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 땅에 미군 군수사령관으로 부임했다. 전후(戰後) 부산 재건과 전쟁고아 돕기에 전력을 다해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미국인’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특히 그는 1953년 겨울 부산역 인근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3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자 부대 창고를 열어 구호와 지원에 나섰다. 군사 물자를 무단 전용했다는 이유로 군법회의에 회부됐지만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고 당당히 소신을 밝혔다. 그는 미군의 대한(對韓) 원조 프로젝트 190여 개를 수행하며 부산대 캠퍼스, 메리놀병원 건립을 지원했다. 부모 잃은 아이들을 돌봐 ‘전쟁고아의 아버지’로도 불렸다.
지난해 정부가 위트컴 장군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한 것을 계기로 ‘위트컴 장군 조형물 건립을 위한 시민위원회’가 발족했다. 부산 시민 1만8359명이 앞다퉈 성금을 냈고, 건립 추진 꼭 1년 만인 이날 제막 행사가 열렸다. 동상을 가린 흰색 천을 걷어내자 책보를 멘 까까머리 소년, 동생을 업은 소녀 등 다섯 명의 전쟁고아와 함께 걸어가는 위트컴 장군의 모습이 나타났다.
조형물을 제작한 권치규 조각가(성신여대 교수)는 “보통 장군 동상은 기단을 높게 설치해 내려다보는 형태이지만, 위트컴 장군 동상은 야트막한 기단 위에 있다”며 “대한민국의 미래인 아이들과 함께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동상 뒤쪽 검은색 비석 전면에는 장군의 업적을 새겼다. 뒤쪽에는 정성을 보탠 부산 시민들의 이름이 적혔다.
시민위원회 대표 위원을 맡은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부산 남구갑)은 “정부 예산은 단 한 푼도 지원받지 않고, 기업에도 기대지 않은 대한민국 시민운동의 모범 사례”라며 “장군의 동상은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고 했다. 김요섭 부산대 총학생회장은 “청년들이 장군의 뜻을 이어받아 세계에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위트컴 장군의 위대한 헌신으로 잿더미였던 부산이 세계 속에서 빛나는 글로벌 허브 도시로 성장했다”며 “이 조형물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자유가 장군이 남긴 소중한 유산임을 각인시킬 것”이라고 축사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위트컴 장군의 삶은 인류애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며 “부산이 유치하려는 엑스포도 인류애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한 외국인은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 찍으며 “리멤버 유, 제너럴 위트컴(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위트컴 장군)”이라고 했다.
제막식을 마친 참석자들은 유엔기념공원의 위트컴 장군 묘역을 찾아 헌화하고 묵념했다. 6·25 전쟁에 참전한 2300여 안장자 중 장성(將星)급은 위트컴 장군이 유일하다. 장군의 딸인 민태정 위트컴희망재단 이사장은 “아버지는 생전 한미 양국 관계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며 “한국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셨다”고 했다. 그는 “이런 삶이 70년 한미 동맹을 지탱한 하나의 버팀목이 됐을 것”이라며 “우리 젊은이들이 더 튼튼한 한미 관계를 위해 힘을 보태주길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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