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아의 조각보 세상] 약자들의 산소호흡기를 떼는 고용노동부
고평상담실을 폐지하는 것은
밥벌이 위협받는 가난한 여성의
마지막 보루를 무너뜨리는 행위
이름값도 월급값도 못하는 그들
이름도 바꾸고 급여도 삭감하자
“고평상담실에 가기 전 국가가 제공한다는 무료 법률상담소를 찾아가 봤기에 불신이 컸다. 피해를 입은 내가 받았던 무료 법률상담은 인터넷 예약을 통한 30분 내외의 비전문가 상담이었고 최소 며칠에서 한 달 이상 기다려야 했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에 공황장애까지 있는 상태에서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 평일, 점심시간 제외, 주말·공휴일 제외, 담당자가 공석이나 출장, 연차휴가면 불가능해 계속 보류…. 그렇게 사회적 외면을 받아 처절하게 버려지고 포기를 강요당하는 상황에서 도움이 절실한 내가 미친 사람이 되어 그냥 포기하려 할 때 상담실은 달랐다. 병원 치료를 받고 늦게 도착해도 사무실 문을 열고 내가 오기까지 기다렸다. 두려움과 겁을 내며 법정에 서야 할 때도 나를 붙들어 법원에 동행해 주었다. 늦게까지 일하며 김밥 한 줄을 나눠주면서 뭐라도 먹어야 된다고 힘내야 한다며 나를 붙들어줬고 살아야 한다고 더욱 고삐를 잡아챘다.”(서울여성노동자회 고용평등상담실 자료)
“억울해 말문이 막히는 심정을 누가 알아줄까? 고용노동부의 조사관은 아니었다.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왜 더 용감하지 못했는지, 왜 더 현명하지 못했는지 물었다. (…) 조사인지 심문인지 모를 시간을 치르고 나와 고평실 선생님께 연락했다. 그 질문들이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이해해 주는 분은 선생님뿐이었다. (…) 한쪽이 대단한 권력을 쥐고 있는 위압적인 현실 속에 선생님은 유일한 지지대였다. 세상 전체가 가해자의 편에 서서 ‘내 목을 조이고 짓누른다’ 느껴질 때 내게 달린 산소호흡기처럼 느껴졌다.(부산여성회 고평상담실 자료)
고용평등상담실은 ‘남녀고용평등법’ 제23조(상담지원)에 따라 정부가 민간단체에 비용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2023년 현재 전국 19곳에서 38명이 기관당 5000여만원을 지원받으며 일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민간상담실을 폐지하고 전국 8개 지청에 1인의 전담인력을 배치하겠다고 발표하고 내년도 예산을 12억1500만원에서 5억5100만원으로 삭감했다. 고작 6억6400만원을 아끼려고 20여년 지속돼 온 기구를 없애고 민영화를 예찬하는 보수 정부가 민간이 해오던 일을 떠맡겠다니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고평상담실은 모성보호와 일가정양립,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 성차별과 임금체불 등 여성노동자가 일터에서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지원을 수행해 왔다. 사건의 진단부터 해결에 이르는 과정에 필요한 서류 작성, 법률가 자문, 사업장 조정과 법적 소송의 실질적 지원은 물론 심리적 회복까지 필요한 도움을 제공한다. 여기에 여성들이 지닌 소통과 공감, 위로는 덤이지만, 사건 처리 과정 내내 그들의 호흡을 멈추지 않게 하는 산소가 된다.
고평상담실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 중에는 입사 3년이 안 된 초년생들이 많고, 4명 중 1명은 다른 기관을 이용했지만 소용이 없어 이곳까지 찾아온 이들이다. 최근에는 직장 내 성희롱 상담이 가장 많지만, 실제로 일터에서 성희롱은 성희롱만으로 분리되어 일어나지 않는다. 직장 내 인간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괴롭힘과 함께 발생하며 긴 시간 누적되어 진행된다. 초기에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감정적인 폭발과 함께 따돌림과 폭력이 뒤섞인 복잡한 사건으로 확대될 위험이 매우 크다.
능력도 경험도 없는 고용노동부가 느닷없이 여성노동자 피해 상담을 떠맡겠다고 한 데 혹시 다른 이유는 없을까? 이를테면, 여성노동단체들의 정치적 성향 같은 것들이다.
여성노동자의 72.8%가 100인 미만 사업체에서, 3명 중 1명이 10인 미만 사업체에서 일하는 한국사회에서 소규모 영세 사업장 여성노동자들은 갈 곳이 없다. 이들이 마지막으로 의지할 곳이 여성노동단체들이다. 고평상담실을 폐지하는 것은 가장 약자인 여성들의 마지막 산소호흡기를 떼는 행위다. 밥벌이를 위협받는 가난한 여성들에게 정치적 성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예산 삭감이 필요하다면, 고용노동부 장관과 그 아래 고위직들의 급여부터 줄이는 것이 어떨까? 노동, 그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노동자들을 위협하는 일들을 정책이라고 내놓는 부서는 ‘노동부’라는 이름표를 달 자격이 없다. ‘고용부’로 바꾸고 장관부터 임금을 반만 지급하자. 그들이 노동자의 권익 따위는 집어치운 지 꽤 되었으니.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별임금격차 사회에서 힘없는 여성노동자가 의지할 마지막 보루를 무너뜨리는 일을 하고 있으니 이름도 바꾸고 급여도 삭감하자.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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