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의 경제수다방] 서울, 나눌 것인가 키울 것인가
1991년 한국행정학회의 한국행정학보에는 조일홍의 ‘수도권 자치구역 개편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이 실려 있다. 조일홍은 서울의 여러 자치구들이 서울시에서 떨어져 나가고자 하는 욕구가 점점 더 증가할 것이라고 보았다. “자치구가 좀 더 강력한 자치권을 요구하게 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시로의 독립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당시 정부 기구인 행정개혁위원회는 서울의 한가운데인 사대문 안만 서울특별시로 하고, 다른 곳은 인구 300만 정도의 독립도시로 분할하자는 프랑스 파리 스타일을 검토하고 있었다. 조일홍이 검토한 또 다른 안은 구 단위로 서울을 분할하여 25개의 도시로 작게 나누는 것이었다. 논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치구역 개편이 필요하다는 응답자 비율은 59.3%였고, 필요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40.7%였다. 서울시 거주자의 57%, 서울 인근지역 거주자의 77%가 자치구역 개편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이런 학술적 논의는 대통령 후보 시절의 김영삼 캠프 내에서 적극적으로 검토되었다. 대선에서 승리한 당선인 신분으로 서울을 서울시, 강남시, 영등포시 등 4~5개의 도시로 나누는 안을 마련하였다. 당시에는 야당인 민주당이 반대하였고, 실제 행정으로 전환되지는 않았다. 김영삼 후보에게 서울 분할은 군대의 하나회 해체와 금융실명제급으로 중요한 사안이었다.
시간이 흘러 21세기가 되었다. 열린우리당이 집권여당이 되었고, 지방행정체제개편 추진 정책기획단이 만들어졌다. 여기에서 다시 서울 분할 방안이 논의되었다. 서울의 가운데를 중서울시로 두고, 동서남북으로 동서울시, 서서울시, 남서울시, 북서울시, 그렇게 5개의 도시로 서울을 분할하는 게 당시 안이었다. 노무현에게는 비대해진 서울 문제에 대한 정책적 해법이 필요했다. 반면 행정수도 이전을 반대하던 한나라당은 서울 분할에 대해 소극적이었다.
YS 이후 서울 분할 암묵적 합의
진보든 보수든, 서울시를 더 키우면 곤란하고, 수도권 집중을 완화시켜야 한다는 것은 1990년대 이후로 광범위한 합의가 있는 사항이다. 수도권 공장총량제가 수도권정비계획법을 통해 도입된 것은 1994년이다. 넓게 보면 이러한 것들은 “국가는 그 균형있는 개발과 이용을 위하여 필요한 계획을 수립한다”는 헌법 제120조 2항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은 더 이상 비대해지면 안 되고, 서울 집중을 완화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은 해야 한다, 이런 정도가 한국 사회의 합의다. 저출생 시대에 더욱 그렇다. 사회적 합의 방안을 찾지 못해서 그렇지, 서울을 몇 개로 분할해야 한다는 것이 김영삼 이후로 계속해서 논의된 것이다. 서울을 관장하고 있는 서울시장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은 정책이다. 박원순이나 오세훈이나, 대선후보급 거물이다. 서울시장의 눈치를 보느라 행정부에서 정당에 이르기까지 서울 분할을 심도 있게 논의하기가 어렵다.
지금 경기 김포시의 서울시 편입 논의가 갖는 가장 큰 문제는, 지금까지 암묵적으로 한국 사회가 갖고 있던 합의를 일거에 깼다는 점이다. 수도권 집중을 더 이상 강화하지 않고, 서울을 키우지 않는다는 불안한 균형이 깨지게 된다. 생활권에 따라 하남이나 고양 등 많은 경기도민이 서울시에 편입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서울이 커지면, 국토의 불안한 균형이 깨진다.
서울이 커지기 시작하면, 서울의 비대화를 막기 어렵다. 경기도의 핵심 지역들이 서울이 된다. 그러면 경기도도 경제적 손실을 채우기 위해 공장도 더 짓고 이것저것 더 끌어오려고 할 것이다. 못 막는다. 수도권에 더 적극적으로 기업들을 유치하려고 할 것이다. 공장은 짓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각종 혜택을 적극적으로 부여해 기업 본사들을 경기도로 끌어오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된다. 그러면 그 효과는? 공룡 서울, 수도권 블랙홀, 안 그래도 위태로운 지방들의 경제적 소멸을 앞당기게 될 것이다. 결국 다 죽는다.
오랜 약속 깬 대가 참혹할 것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미래는 자기 고향에서 평생 살 수 있는 나라, 지방에서도 삶이 풍요롭고 행복한 나라다. 그래야 지방에도 아이가 태어난다. 서울은 지역 자치를 위해서나, 국토의 균형적 발전을 위해서나, 김영삼이 생각했던 것처럼 몇 개로 나누어지는 게 맞다. 이게 옳지 않아서 못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합의에 도달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집권여당의 당대표라면, 당장의 선거 전술만이 아니라 국가의 장기적 균형과 발전 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집권당의 수권 능력에 대해 의심을 받게 되었다. 진보든 보수든, 한 번쯤은 서울시 분할론을 진지하게 검토했었다. 그게 우리의 전통이다. 서울을 키우자는 무책임한 일을 실제 추진한 집권세력은 한국 정치사에 아직 없었다. 그 암묵적인 약속을 깬 대가는 참혹할 것이다.
우석훈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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