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기다리던 작품… 온 힘 쏟아부을 것”
1953년 초연 후 부조리극 대명사 작품
“이번에 놓치면 평생 못할 것 같아 과욕”
대배우 신구·박근형·박정자 설렘 표출
김학철 “선생님들 사이 껴 긴장감 느껴”
국내 첫 ‘럭키’·‘소년’ 女배우 맡아 눈길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르는데 놓치면 평생 못할 것 같아서 과욕을 부렸다.”(신구·87)
“대학 연극학부 시절부터 어떤 역이든 꼭 하고 싶은 작품이었는데, 젊었을 때 못 잡고 이번에 너무 운 좋게 얻어걸렸다.”(박근형·83)
이날 간담회에는 오 연출과 럭키의 주인 ‘포조’ 역 김학철(63), 실체가 불분명한 ‘고도’의 말을 전하는 ‘소년’ 역 김리안(26)도 동석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아일랜드 출신 작가 사뮈엘 베케트(1906~1989)의 대표작으로 방랑자 고고와 디디가 종잡을 수 없는 대화와 행동을 하며 하염없이 ‘고도’를 기다리는 내용의 부조리극이다. 1953년 프랑스 파리에서 초연된 이후 부조리극의 대명사가 된 이 작품은 1969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여전히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해석으로 공연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극단 ‘산울림’의 임영웅(87) 연출이 1969년 선보인 후 50년 동안 1500회 넘게 공연되며 22만명이 관람했다. 임 연출이 2019년 50주년 기념공연 당시 “새로운 ‘고도’가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고 한 뒤 국내에서도 임영웅 색깔과는 또 다른 느낌의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 오경택 연출은 “임영웅 연출 작품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게 큰 부담이지만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며 “대본에 충실하면서 네 분 선생님을 믿고 간다는 마음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는 신구·박근형·박정자·김학철이 배우로서 쌓아온 시간과 힘이 충돌할 경우 굉장히 다른 느낌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나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네 배우의 연기 경력을 합치면 228년이나 된다. 공연 내내 대타 없이 각자 맡은 배역을 소화해야 하고, 대사량도 만만치 않아 도전과 다름없는 작품이지만 노배우들은 자신감이 넘쳤다.
신구는 “(올 초 출연 제의가 왔을 때) 에스트라공의 무대 동선을 따라갈 수 있을지, 그 많은 대사를 외울 수 있을지 걱정돼 상당히 주저했다”면서도 “내 진을 빼서 전부 토해낸다면 극복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온 힘을 이 작품에 쏟아붓고 있다”며 웃었다.
박근형은 “신구, 박정자 두 분과 눈빛만으로도 통해서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다”며 “지금까지의 나와 다른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학철은 “신구·박근형·박정자 선생님들 사이에 내가 낄 자격이 있나, 망신당하면 어떡할까, 이런 긴장은 처음이었다”면서도 “연극다운 연극 맛이 나는 작품”이라고 거들었다.
국내에선 처음으로 ‘럭키’와 ‘소년’을 여성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도 눈에 띈다. 이 작품에 여성이 출연하는 건 드물다. 베케트가 희곡 속 인물 설정에 따라 여성 출연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는 1988년 네덜란드 극단이 여성에게 배역을 맡기자 소송까지 제기했을 정도다. 하지만 베케트가 작고한 뒤인 1991년, 프랑스 법원은 “여성이 연기해도 베케트의 유산을 훼손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듬해 아비뇽 축제에서 모든 배역을 여성이 맡는 작품이 나왔는데 큰 호평을 받았다. 박정자는 “프로듀서(제작자)와 연출자도 럭키라는 배역에 나를 캐스팅하지 않아서 내가 손을 번쩍 들어 럭키를 하겠다고 했다”며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라 럭키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배우에게 남녀 구분은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 작품은 결국 배우와 관객 모두에게 ‘도대체 고도는 누구인가, 무엇이란 말인가’란 질문을 남긴다.
신구 나름의 해석이 울림을 준다. “실체도 없는 고도를 오늘은 못 보지만 내일은 볼 거라 생각하며 하염없이 기다리는 게 우리가 현재 사는 모습이 아닌가 싶어요. 그게(고도가) 신이든, 자유든, 희망이든 내일은 채워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살지 않나요. 사람이 포기하지 않고 사는 건 희망 때문입니다.” 공연은 내년 2월18일까지.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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