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운항 특화 ‘터보프롭기’ 넘버원… 한국 리저널 항공시장 연다 [밀착취재]

백소용 2023. 11. 1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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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R 佛 툴루즈 본사 르포
에어버스·伊 레오나르도 합작 설립
동체는 伊, 날개는 佛 업체에서 제작
ATR 조립공장 옮겨서 하나로 합체
100여 국가 200여개 항공사에 공급
연료 소모량·CO₂ 배출·외부소음 적어
울릉공항 단거리활주로 이착륙 적합
KTX 미연결 동·서 노선 확장 제시

“이건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제작된 비행기 동체, 저기에 있는 날개는 프랑스 보르도에서 제작된 것입니다.”

격납고에 들어가자 비행기 동체와 날개, 꼬리, 랜딩기어(착륙장치) 등 여러 부분이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었다. 직원 두 명이 이동장치에 비행기 날개 일부분을 싣고 동체로 접근해 수작업으로 조립을 시작하더니 어느새 비행기 형체가 갖춰졌다. 한편에는 토고 항공사 리즈 애비에이션의 78인승 비행기가 내부를 비닐과 테이프 보양재로 꼼꼼하게 감싼 채 완성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이르면 일주일 뒤 항공사에 인도될 새 비행기였다.

지난 7일(현지시간) 방문한 프랑스 툴루즈에 위치한 터보프롭(프로펠러)기 제조사 ATR의 본사 최종조립공장 모습이다. 여러 부품사에서 약 1년4개월에 걸쳐 생산된 각 부분은 육로 차량과 해상 선박을 이용해 이곳까지 옮겨진 뒤 비로소 비행기로 완성된다. 이들 비행기는 전 세계 각국으로 날아가 대형 비행기가 못 가는 도서지역 구석구석까지 승객과 화물을 실어 나르게 된다.
프랑스 툴루즈에 있는 ATR 최종조립공장에 도장 등 마무리 공정을 앞둔 터보프롭기가 서있다. 이곳에서 완성된 터보프롭기들은 전 세계 100여개국에 공급된다. 오른쪽 사진은 ATR 72-600 기종. 백소용 기자·ATR 제공
◆유럽 항공산업 심장에서 터보프롭기 제작

ATR 본사와 생산공장은 모기업인 에어버스 본사 부지인 툴루즈 생 마흐탕 지역에 함께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지역 이름을 따서 ‘에어버스 생 마흐탕’이라고도 불린다. 툴루즈에는 유럽 최대 항공기 제조사인 에어버스 본사를 비롯해 방산업체와 비행기 부품사 등이 모여 있어 유럽 항공우주 산업의 중심지로 꼽힌다.

이 공장은 1936년 설립된 에어버스의 가장 오래된 공장이다. 현재 이곳에서 ATR 직원 500여명이 일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의 여파로 가동을 멈추다시피 했던 조립공장은 현재 서서히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 중이다. 현재 조립 중인 비행기는 20여대인데, 인력이 부족해 조립하지 못하고 세워놓은 비행기도 있었다.

완성된 비행기의 고객 인도를 담당하는 막심 티스네 ATR 인도센터장은 “코로나19 이전에는 연간 70대씩 주문을 받았는데 2020년 10대만 인도했고 조금씩 회복해 올해 약 40대를 주문받았다”고 말했다.

ATR는 1981년 에어버스와 이탈리아 방위산업체 레오나르도의 합작으로 설립돼 터보프롭기를 전문으로 만들고 있다. 전 세계 100여개 국가의 200여개 항공사에 터보프롭기를 공급하며 리저널(지역) 항공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유럽, 동남아 등의 섬 여행 수단으로 활성화된 리저널 항공은 86인승 이하 소형 비행기로 300해리(555㎞) 이하 항로를 오가는 것을 뜻한다.

조립공장에서는 현재 개발 중인 ATR 42-600S 모델의 첫 프로토타입도 확인할 수 있었다. 꼬리 부분에 기존 항공기보다 넓게 만든 방향타를 탑재하고 최신 제동장치를 이용해 800m의 짧은 활주로에서도 이착륙할 수 있다. 우리나라 공항의 활주로는 1200∼4000m다. 비행기가 크고 무거울수록 긴 활주로가 필요하다. 승객 500∼600명을 태우는 초대형 여객기 A380의 경우 활주로 길이는 2600m는 돼야 한다.

최종 검수와 고객 인도가 이뤄지는 딜리버리센터로 가자 여러 비행기가 활주로에 서 있었다. 고객사 확인을 거쳐 문제가 없는 비행기는 이곳에서 바로 비행해 해당 항공사로 가게 된다. 작은 기종이어서 한국까지 가려면 급유를 위해 5번 정도는 스톱오버를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국내에도 리저널 항공 시장 열린다

앞으로 국내에서도 ATR의 터보프롭기와 같은 소형 기종을 이용해 섬을 여행하는 리저널 항공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으로 민간 공항 3800여개 중 약 45%는 리저널 항공사만 취항하고 있을 정도로 보편화했지만 한국은 이제 걸음마 단계다.

우선 2026년 경북 울릉도에 공항이 생길 예정이다. 김포에서 비행기를 타고 1시간 정도면 울릉도에 도착할 수 있다. 지금은 서울에서 울릉도에 갈 때 포항까지 2시간 이상 KTX로 이동한 뒤 다시 배를 타고 4시간 더 가야 한다.

인천 옹진 백령도와 전남 신안 흑산도도 비슷한 시기에 공항을 개항하는 것을 목표로 착공을 추진 중이다. 현재 흑산도로 가기 위해서는 목포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2시간 이상 가야 하고, 백령도도 4시간가량 걸리는 여객선을 타야 갈 수 있다.

지난 5월에는 소형항공기 제조사 엠브레어가 주력 제트기인 E190-E2를 타고 포항경주공항을 이륙해 울릉도 상공을 선회하는 왕복 80여분간의 시범비행에 성공하기도 했다. 울릉공항 활주로 길이인 1200m보다 짧은 거리에서 제트여객기의 이착륙이 가능하고 급유 없이 왕복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엠브레어는 100여명의 비교적 많은 승객을 태우고도 국내 섬을 넘어 동남아까지 운항할 수 있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ATR는 터보프롭기가 근거리에 최적화된 비행 능력과 높은 경제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에 적합한 78인승 ATR 72-600의 경우 동급 제트기보다 연료 소모량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45% 적고 외부 소음 배출량도 3배 적다는 설명이다.

ATR는 이를 바탕으로 KTX로 직선 연결이 안 되는 국내 동서 지역을 잇는 여객 수송과 가까운 중국·일본과의 여객·화물 수송 노선을 신설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 4대의 ATR 항공기가 도입돼 있는데, 앞으로 7년 내 최대 30대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국내 섬 지역 공항 신설을 놓고 투자 대비 수익이 떨어지고 기존 교통수단과 중복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알렉시스 비달 ATR 커머셜 부문 부사장은 “선박과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하면서 섬 등 외진 곳에 있는 지역사회 사람들을 연결할 수 있다”며 “일본 등 다른 주변국과 달리 한국에는 아직 리저널 항공이 없는데 동서 지역 간 섬 노선을 시작으로 리저널 항공 시장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툴루즈=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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