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이면 나오는 비대위·혁신위…성공해서 대통령까지 된 경우도? [대통령의 연설]

문재용 기자(moon.jaeyong@mk.co.kr) 2023. 11. 12.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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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이슈를 몰고 다니는 정치인은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으로 보입니다. 취임 초반에는 역대 최초로 벽안(碧眼)의 당대표급 인사가 탄생한 것이 화제가 됐죠. 이후로 독특한 언행과 과감한 혁신안, 당내 비윤 인사들(이준석·김종인·홍준표)과의 연속회동 등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김은경 전 민주당 혁신위원장을 비롯해 근래의 혁신위·비대위들은 실망스러운 결과만 남긴채 사라진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혁신위·비대위가 등판할 때마다 언급되는 성공사례도 한정적인데요.

아마 독자분들께서도 어렵지 않게 두개의 비대위를 떠올리실 것 같습니다. 대통령의 연설 이번 회차는 그중 한명의 비대위원장을 다뤄보려 합니다. 이 연재물에 등장하는 인물인 만큼 비대위원장으로서 위기에 빠진 당을 살려냈을 뿐 아니라, 나아가 대권까지 거머쥔 정치인이죠.

2012년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의 박근혜 전 대통령
새누리당 창당, 현역의원 25% 공천 탈락, 파격적 인재기용...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취임한 것은 2011년 12월입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는 일에 모든 것을 걸겠다’란 제목의 수락연설문을 통해 “한나라당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국민으로부터 외면을 받게 되었는지 정말 참담한 마음이고,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통감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한나라당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임기말 정권 심판론이 강해지며 지지율이 추락하는 중이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정치생명을 걸고 감행한 무상급식 투표에서 패배한 여파로 사실상 야권 후보였던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게 시장직까지 내준 상태였죠.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의 여파로 당시 홍준표 지도부가 출범 5개월만에 무너지며 박 전 대통령이 등판하게 됩니다.

박 전 대통령은 비대위를 이끌며 2012년 총선에서 현역 의원의 25%를 공천에서 탈락시키고, 김종인·이준석을 기용하는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이후 민주당에서도 맹활약하며 또다른 비대위 성공사례를 남긴 바 있습니다.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부산 사상구 국회의원 후보로 나와 낙선한 손수조 씨(왼쪽)와 이준석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이 그해 매일경제신문이 마련한 \“솔직 토크\”에 참석해 웃으며 손을 맞잡고 있다. <이승환 기자>
새누리당이 태어난 것도 이 시점인데요. 그동안 보수정당이 사용해왔던 파란색 대신 붉은색을 상징색으로 바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앞서 지나치게 보수적인 이미지 탓에 당내 경선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패했던 경험을 되새겨 경제민주화 등 중도친화적인 정책도 많이 내놨는데요. 비대위원장 수락연설에서도 가장 먼저 해결할 과제로 꼽은 것이 중산층 복원과 불평등 구조 혁파였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연설에서 “변화의 시작은, 여야 정쟁 때문에 잠자고 있는 민생 법안과 예산을 챙기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라며 “무너진 중산층을 복원하고, 사회 각 분야의 불평등 구조를 혁파해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습니다”라 강조했습니다.

그 결과 새누리당은 19대 총선에서 152석을 차지하며 과반의석을 점유하게 됩니다. 당시 여권의 독보적 대선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이 총선마저 승리로 이끌자 새누리당은 단일대오를 이뤄 대선준비에 나섰고, 결국 그해 겨울 대선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을 상대로 신승을 거두며 정권연장에 성공합니다.

천막당사로 한나라당 궤멸 위기에서 구한 2004년
박 전 대통령이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한 건 2012년이 처음이 아닌데요. 오히려 2004년의 기억이 더 강렬하게 남아있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다만 이 당시의 직함은 비대위원장이 아닌 정식 당대표였기에 순서상 뒤에 설명하게 됐습니다.

당시 한나라당은 2002년 대선과정에서 비자금을 대형트럭에 가득 담아 운반한 이른바 ‘차떼기’ 파동,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등으로 지지율이 곤두박질 치던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최병렬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사퇴하는 동시에 정계에서 은퇴했고, 박 전 대통령이 당대표직을 이어받아 2004년 총선을 준비하게 됐습니다. 당시 지지율만 보면 한나라당 의석이 80석으로 줄어들 것이란 관측까지 나올 정도의 위기였죠.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04년 한나라당 비대위원장 시절 당 현판을 천막당사로 옮기는 모습
박 전 대통령은 당시 당대표 수락연설에서부터 “내일부터 당사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곧장 천막당사에 자리잡게 됩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먼지가 날리고, 주변 공사장의 굉음이 울리는 열악한 환경이었다고 하는데요. 부정부패 정당이란 오명을 씻기 위한 이같은 결단 덕분에 이어진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121석을 차지하며 기사회생합니다. 박 전 대통령이 ‘선거의 여왕’이란 별칭을 얻을 수 있게된 첫번째 활약상입니다.

이같은 전개과정을 보면 박 전 대통령은 사실상 비대위원장으로서 두번이나 보수정당을 위기에서 구해낸 셈인데요. 현재 여권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급’을 생각해서인지 윤석열 대통령이 주로 일정을 함께하고 인요한 혁신위원장과의 만남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전히 강성보수·경북 지역에서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의 위상을 활용하는 데 집중하는 전략도 읽히는데요. 인 위원장 역시 국민의힘을 탈바꿈시키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는 만큼 박 전 대통령을 만나 선거의 여왕 시절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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