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겨울야구
가장 추웠던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는 삼성과 LG가 맞붙은 2002년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후 처음으로 11월에 시작한 한국시리즈였다. 부산 아시안게임 때문에 정규리그가 일시 중단된 여파였다. 11월 추위는 매서웠다. 더그아웃에 난로가 등장했고, 선수들은 목도리와 핫팩을 챙겨 경기장에 나섰다. 당시 삼성 선수였던 양준혁 해설위원은 “이가 오들오들 떨렸다”고 했다. 관중들도 칼바람 추위에 손이 곱고 얼굴이 상기됐다. 6차전 9회말, 이승엽·마해영의 극적인 홈런으로 승리한 삼성이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뒀는데 “7차전 안 해서 다행”이라고 안도한 팬들도 많았다.
폭우 속에 9차전까지 치른 2004년, 인천 아시안게임으로 일정이 밀린 2014년에도 추웠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11월 중순에야 한국시리즈가 열린 2020·2021년에는 전 경기를 고척돔에서 치러 추위를 피했다. 올해 한국시리즈는 정규 시즌을 늦게 시작하지도, 중간에 멈춘 적도 없는데 가장 늦은 날 시작된 걸로 기록됐다. 여름 장마에 가을비까지 이어져 우천 취소된 경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올해 LG와 KT의 한국시리즈는 비온 후 기온이 급강하해 한파·강풍 특보가 내려진 지난 7일 1차전이 시작되고, ‘입동’인 8일 2차전이 열렸다. 계속 추워져 체감온도가 영하 1~3도까지 내려간 10일 3차전이 치러졌는데, 선수들 입김이 중계 화면에 잡힐 정도의 맹추위였다. 11일 4차전도 쌀쌀한 낮경기였고, 5차전이 예정된 13일 저녁은 체감온도 2~3도로 춥다고 한다. 이쯤 되면 가을야구가 아니라 겨울야구인 셈이다. 지금은 2002년 한국시리즈 때보다도 춥다. 한국보다 시즌 경기 수가 많은 미·일 프로야구는 이달 초 일찌감치 가을야구를 마쳤는데 한국만 겨울야구를 하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는 내년 시즌 개막일을 일주일 앞당기고 시즌 초부터 더블헤더를 편성하기로 했다. 기후변화로, 해마다 비로 막히는 경기가 늘어날 걸 대비한 것이다. 추위에 몸이 굳어 다치고 실수하는 선수들이 속출하는 겨울야구는 바람직하지 않다. 날씨도 경기의 일부라는 건 듣기 좋은 소리일 뿐이다. 관중들은 강추위가 아니라 호쾌한 플레이와 짜릿한 명승부에 몸을 떨어야 한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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