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축구’가 안 먹히는 이유
[한겨레 프리즘]
[한겨레 프리즘] 이승준 | 오픈데스크팀장
김포시 서울 편입, 공매도 금지, ‘물가 담당관’ 지정, 종이컵 사용 금지 철회….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여당과 정부가 연일 정책 의제들을 쏟아냈다. 총선이라는 골대를 향해 앞만 보며 달려가는 축구 선수들을 연상시킨다.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다”(윤석열 대통령)라며 시대착오적 이념 전쟁을 벌이는 것보다는 낫지 싶었다. 사람들의 오래된 욕망을 건드리는 이슈들이라 어느 정도 파괴력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과거 국민의힘 계열 정당들이 ‘욕망의 정치’로 재미 본 사례들도 떠올랐다.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여론이 궁금했다. 특히 개인의 욕망과 결부된 김포시 서울 편입(부동산)과 공매도(주식)와 관련한 반응을 살펴봤다. 생각보다 ‘욕망의 불’이 잘 붙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08년 18대 총선 때 한나라당의 뉴타운 공약을 떠올리게 하는 김포 서울 편입은 ‘총선용 정책’ ‘국면 전환용’이라는 냉정한 평가가 많았다. 실현 가능성도, 실행 의지도 없을 전형적인 총선용 전략이라는 박한 평가였다. 대통령과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이들은 찬성 의사를 보이면서도 여론의 추이를 신경 쓰는 눈치다.
실제 9~10일 공개된 여론조사 결과는 이러한 여론 지형을 보여준다. 9일 공개된 전국지표조사(1001명 조사, 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 ±3.1%포인트)는 김포 서울 편입은 ‘현실성을 고려하지 않은 선거용 제안’이라는 응답이 68%였다. 10일 한국갤럽의 여론조사도 부정평가가 절반을 넘었다.
공매도는 한국 개미 투자자들이 문제 삼아온 사안이다. 공매도 금지 첫날인 지난 6일 코스피는 2300대에서 2500대로 뛰고, 일부 주식 커뮤니티 등에서 ‘윤석열 만세’ 등 지지 여론으로 뜨거웠다. 그러나 이후 주식시장이 출렁이고, 10일 장중 한때 2400선이 붕괴하며 주요 종목 주가가 급락하자 찬바람이 분다. ‘개미에겐 결국 좋다’며 지켜보자는 여론이 있지만 ‘공매도 금지를 선거 전날 하지 그랬나’같이 여당과 정부를 꼬집는 글도 꾸준히 올라온다.
여당과 정부의 최근 정책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의 여론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왜 여론은 냉랭할까. 정치 불신은 최고조인데, 정부 여당이 풀어야 할 세부적인 문제들은 손을 대지 않은 채 당장 눈길 끌 만한 ‘헤드라인’만 던져대고 있기 때문 아닐까.
예를 들어 김포 서울 편입을 차갑게 바라보는 여론에는 ‘지옥철’ 김포골드라인 개선,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D), 서울지하철 5호선 김포·검단 연장 사업 등 실제 출퇴근 교통 문제를 해결할 대책은 왜 손대지 않고 있냐는 분노가 서려 있다. 공매도 금지도 그렇다. 개인 투자자들은 외국인·기관에 유리한 공매도를 바로잡고 불법 ‘무차입 공매도’를 막는 제도적 개선책을 오랫동안 요구해왔는데, 이에 관한 자세한 설명 없이 공매도 금지가 튀어나왔다. ‘지난주에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되고 금융감독원장이 임명된 거냐’며 ‘지금까지 뭐 했냐’는 냉소가 흐른다.
사실 이번에 내놓은 정책들은 이해관계자들 의견 수렴과 소통, 정책의 일관성과 실효성 등을 하나하나 따지는 ‘빌드업’을 하며 추진해도 쉽지 않은 것들이다. 과거보다 공동체 내부의 이해관계도, 사회 체계도 더 복잡해졌기 때문에 빌드업은 필수다.
하지만 여당과 정부의 행보는 중간 과정은 생략한 채 골대 근처로 우선 뻥 차놓고 보는 롱볼축구, 이른바 ‘뻥축구’를 연상하게 한다. 공을 찰 때야 속 시원하지만, 골이 골대로 들어갈 가능성은 작다. 걸출한 공격수를 보유하고 조직력이 탄탄한 팀에는 하나의 전략이지만, 그렇지 못한 팀에는 경기를 망칠 가능성이 큰 도박에 불과하다. 10여년 전 이명박 정부 출신들이 주전으로 뛰다 보니 새 운동장에 적응을 못 하는 걸까. 뻥축구를 남발하는 축구에 팬들이 등을 돌리듯, 뻥축구에만 기대는 정치에 유권자들의 불신은 커져간다.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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