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끝나지 않는 '악몽' 언제쯤 깨어날까

김재근 선임기자 2023. 11. 1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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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전세사기 실상과 대책
피해액 2508억… 선구제 후구상권 청구 '절실'
부동산 정보 비대칭성 고착… 등기 의무화 요구
대전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사기범들에 대한 금융기관의 무분별한 대출을 규탄하는 항의집회를 벌이고 있다. 사진=대전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

대전 전세사기가 계속 확산하고 있다.

최근 유성경찰서는 연구개발특구 청년 연구원들을 상대로 전세사기를 벌인 A씨 등을 검찰에 송치했다. 이들은 주택 15채와 오피스텔 40개의 선순위보증금을 허위로 알려주고 131명에게 전세금 150억원을 편취했다.

지난달 구속된 B씨 사건은 역대급으로 계속 진행형이다. B씨 일당은 본인과 부인, 지인, 부동산법인 명의로 200여채의 건물을 구입, 전세사기를 벌였다. 현재까지 드러난 게 600여억원이고, 총 2500억-30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피해자들이 대전전세사기피해자대책위원회를 조직, 대응에 나섰다. 현재까지 대책위가 확인한 전세사기 피해건물은 229채, 가구수는 최소 2563가구, 피해액은 2508억원(추정)에 이른다. 일각에서는 대전지역 전체 피해액이 5000억원 대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한다.

대전 전세사기 피해자 대부분이 다가구주택 세입자이다. 사진=김재근 선임기자

◇피해자 갈수록 늘어나… 5000억원대 예상도

정부에서 전세사기피해자특별법을 마련했지만 별로 도움이 안된다. 이 법은 전세사기 피해주택에 대한 경매의 유예·정지, 경매절차에서 우선매수권 제공, 국가와 지자체의 금융지원 등을 담고 있다.

국토부가 정한 '전세사기 피해자'는 대항력을 갖추고 확정일자를 받은 임차인, 수사 개시 등 전세사기 의도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등 6가지 요건을 모두 갖춰야 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전세사기 의도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등의 기준이 모호하다. 실제 대전에서 200여채의 전세사기를 벌인 사건의 경우 일부는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사건화됐지만, 다른 건물에 사는 세입자들은 아직 보증금을 반환받을 시기가 안돼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피해자들에게 경매 시 우선 매수권을 부여했지만 대부분이 20-30대로 돈이 없다.

김 모씨는 "빌린 전세대출금을 갚을 길도 막막한데 어떻게 경매자금을 마련하느냐?"고 반문했다.

가장 큰 문제는 대전지역 피해자의 95%가 다가구주택 세입자라는 점이다. 다가구는 건축법상 단독주택으로, 집주인(임대인)이 1명인 건물에 여러 세대가 거주하는 형태로 세대별 개별등기가 불가능하다. 전세사기로 부도가 나서 경매에 나올 경우 여려 명이 돈을 모아 건물을 통째로 사야 한다.

◇다가구 피해자들 공동으로 건물 통째 매입?

전세사기 피해자 김모씨는 "세입자들이 모두 돈도 없고 처한 형편도 다른데 어떻게 갹출하여 경매 건물을 사느냐?"며 "현실성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대전지역 피해자들은 특별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 다가구주택에 한해 다세대로 바꿔 개별등기를 하거나 공동등기를 하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이외에도 근저당 채권이 대부업체로 이관돼 발생하는 2차 피해 방지, 최우선변제금 만큼의 주거비 지원, 디딤돌대출 금리인하 및 요건 완화도 원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선(先)구제 후(後)구상권 청구이다. 먼저 공공에서 전세보증금 반환채권을 매입하여 피해자를 구제하고 나중에 구상권을 행사하여 돈을 회수하라는 것이다. 정부는 과거 금융이나 조선, 해운, 항공업계 위기 때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최근에는 건설업계에 25조원의 PF대출 보증을 제공했다. 기업은 지원하면서 위기에 처한 주거 취약계층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여론이 적지 않다. 도시주택기금으로 LH가 피해주택을 매입하여 싸게 임대하거나, 피해자들이 매입할 수 있도록 지원(대출)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전세사기는 등기제도의 허술에서 비롯된 '예견된 재난'이다. 다가구주택은 건물 전체의 전세보증금이 얼마나 되는지 집주인 외에는 알 수가 없다. 세입자가 임대차 계약을 하기 전에 전체 선순위보증금을 알아보려면 집주인의 동의서와 신분증 사본을 갖고 등기소나 동사무소에 가야 알 수 있다. 전입신고+확정일자 제도가 있지만 최근 전세사기에서 보듯 집주인이나 공인중개사가 선순위보증금을 속여도 확인할 길이 없다. '갑'(집주인)은 전체 보증금 규모를 알지만 '을'(세입자)은 계약을 한 뒤에야 알 수 있다. 정보의 비대칭, 불평등, 불투명 구조가 고착돼 있는 셈이다.

◇전세등기 의무화 무료화 적극 검토해야

전세등기를 의무화하고 수수료를 무료화할 필요가 있다. 모든 전세 계약을 등기부에 올리고 세입자들이 이것만 보면 사전에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세 세입자 대부분이 청년, 사회초년생, 신혼부부, 노인 등 주거약자인 만큼 복지 차원에서 수수료를 무료화하거나 파격적으로 낮춰주면 된다.

주택공급 제도도 현실에 맞게 바꿔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1인가구가 34.5%, 대전은 38.5%에 이른다. 1인가구가 급증했지만 전용면적 20(6평)~40m²(12평)의 초소형이나 소형아파트 공급은 매우 미흡하다. 20-30대 청년들이 주거환경도 열악하고 전세사기 사각지대인 다가구로 밀려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공공이나 민간아파트 건설시 국민주택(전용면적 85㎡ 이하)보다는 더 작은 아파트 공급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전세사기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피해 당사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지울 수가 없다. 다가구의 등기부등본을 떼어 봐도 전체 보증금 규모를 알 수가 없다. 전입신고를 하고 확정일자를 받아도 소용이 없다. 아파트도 중대형만 공급하기 때문에 1인가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주거는 모든 국민이 누려야 할 기본권 중의 하나이다.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주거불안'이다. 20-30대 청년층과 1인가구의 주거안정은 국가적 시대적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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