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거꾸로 돌린 그날 밤, 그 죄인들···‘서울의 봄’[리뷰]

최민지 기자 2023. 11. 12.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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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 12·12 쿠데타의 9시간…22일 개봉
전두광·노태건 등 이름 바꾸고 허구 가미
황정민·정우성 등 배우 호연…자막으로 이해 도움
‘볼품 없는 악인들’ 박제·고문 등 폭력성 줄여
신군부의 핵심인 보안사령관 ‘전두광’(황정민)은 육군참모총장이 자신을 탐탁치 않아하며 동해안으로 인사를 내려 하자 반란을 계획한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1979년 12월12일 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총성이 울린다. 진원지는 육군참모총장 공관. 간헐적인 총성은 20분 넘게 이어졌지만 인근 주민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 채 몸을 떨었다. 9시간 뒤, 세상은 뒤집혔다.

22일 개봉하는 <서울의 봄>은 ‘역사가 스포일러’인 영화이지만 결코 팔짱 끼고 볼 수 없는 작품이다. 2023년 안락한 극장의 관객은 숨 막히는 44년 전 12월12일의 밤으로 기어코 ‘밀어넣어진다’.

영화는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나는 데서 출발한다. 보안사령관 ‘전두광’(황정민)은 계엄법에 따라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된다. 민주화를 향한 기대가 고조되는 가운데 전두광은 군내 사조직 하나회를 이용해 세를 불려간다. 육군참모총장 ‘정상호’(이성민)는 전두광을 견제하려 한다. 정상호는 강직한 군인 ‘이태신’(정우성)을 수도경비사령관에 임명하고, 전두광의 지방 발령을 계획한다. 참모총장의 생각을 눈치챈 전두광은 반란을 계획한다.

영화는 익히 잘 알려진 역사적 사건 ‘12·12 사태’를 시간 순서대로, 뚝심 있게 그려나간다. 전두광 보안사령관과 이태신 수도경비사령관을 핵심 축으로 반란을 꾀하는 세력과 이를 막으려는 세력의 치열한 9시간을 따라간다. 설득과 겁박, 폭력으로 공수가 수시로 뒤바뀌는 전개는 결말이 정해진 이야기임에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배우들의 빼어난 연기는 영화를 이끄는 가장 큰 힘이다. 황정민은 권력에 눈이 멀어 반란을 주도하는 인물 전두광을 연기했다. 머리숱이 듬성듬성한 헤어스타일로 ‘파격 변신’을 했다. 정우성은 반란을 막으려 애쓰는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을 안정적으로 연기한다. 육군참모총장 정상호 역의 이성민, 9사단장이자 전두광의 친구 노태건 역의 박해준, 이태신과 함께 끝까지 저항하는 헌병감 ‘김준엽’ 역의 김성균 등 훌륭한 배우들의 호연도 빛난다.

<서울의 봄>은 영화적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역사적 사건을 단순한 볼거리로 소비하지 않는다. 측근들에게 반란에 가담할 것을 설득하는 전두광의 웅변은 분명 카리스마적이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아끼는 부하와 길거리 노점을 차로 밀고 지나가는 다음 장면에서 그의 명분은 곤두박질친다. 특히 반란 가담자들이 수세에 몰리자 혈연과 지연, 학연을 총동원해 전화를 돌리는 장면에서는 이 끔찍한 역사가 얼마나 ‘K스러우며’ 볼품없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정우성은 ‘전두광’(황정민)에 맞서는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을 연기한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메가폰을 잡은 김성수 감독은 19세 때 한남동에서 총성을 들으며 떨었던 주민 중 하나였다. 그날의 진실을 10여년이 흘러서야 알게 된 그는 “어떻게 나라의 운명이 이렇게 쉽게 바뀌는가” 의문을 품었고, 이는 <서울의 봄>으로 이어졌다. 그는 지난 9일 시사회에서 말했다. “처음엔 역사적 기록을 샅샅이 찾아봤지만 각색 작업을 하면서는 실제 기록을 밀어놓고 저 스스로도 헷갈릴 정도로 재밌는 이야기에 집중했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뼈대로 하되 허구를 가미했다는 의미다. 전두광, 노태건 등 실존 인물의 이름을 조금씩 바꾼 것도 논란을 비껴가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그러나 영화 말미 반란 주동자들이 성공을 기념하며 사진을 찍는 장면에선 연출자의 태도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카메라는 웃음을 만면에 띄운 신군부세력의 얼굴을 하나하나 비추며 이들이 ‘역사의 패배자’임을 확인한다. 요즘 말로 ‘박제’다.

2020년대 관객과 호흡하려는 연출자의 노력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전작 <아수라>가 지나치게 폭력적이라는 지적을 의식한 듯, 이 시기를 다룬 영화가 흔히 등장시키는 고문 장면은 간접적으로 처리된다. 공수가 수시로 뒤바뀌는 상황을 설명하는 자막은 역사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러닝타임 141분. 12세 이상 관람가.

‘노태건’(박해준)은 전두광의 친구이자 반란군의 2인자다. 우유부단한 성격이지만 전방 부대인 9사단을 서울로 불러들이는 데 기여하며 반란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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